세계일보

검색

고졸 취준생 “차별과 취업난서 고졸(苦卒)하고 싶어요” [S 스토리]

관련이슈 S 스토리 , 세계뉴스룸

입력 : 2020-11-29 10:00:00 수정 : 2023-12-10 15:33:1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고졸 10명 중 3명만 취업
취업률 70% 상회 특성화고
2019년 취업률 55%로 추락
일반계고 포함하면 30%로 뚝

코로나로 취업난 가중
2019년 고졸 실업 12만7000명
대졸 이상은 3만6000명
고졸노동자가 3.5배 더 심각

‘고졸’도 행복한 세상
대졸자와 같은 업무해도
덜 받는 게 당연한 현실
차별인식 개선 우선해야

“고졸도 차별 없이 동등하게 일하게 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특성화고를 졸업한 곽찬호(25)씨는 7년째 취업 준비 중이다. 여태껏 면접을 본 회사는 셀 수 없이 많다. 단순히 고졸이라는 이유로 면접 기회를 잡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곽씨는 현재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고 있다. 매달 180만원이 채 되지 않는 급여는 월세와 생활비로 쓰고 나면 동나기 일쑤다. 곽씨는 “특별한 대우를 바라는 게 아니다.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곳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 직업인 양성을 위해 만들어진 특성화고 졸업생들이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고 있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한 이들도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하거나 ‘고졸 출신’이라는 오래된 편견과 싸워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취업난의 근본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취업 불안은 비단 졸업생만의 문제는 아니다. 상업계고 1학년인 정예진(16)양은 벌써 취업 걱정이 앞선다. 이 시기에 예년 같으면 3학년 선배의 절반가량은 취업에 성공했을 테지만, 올해는 3명만이 직장을 구했다. 이마저도 비정규직 일자리다. 정양은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할 수 있다는 말에 특성화고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본인에게도 머지않아 닥칠 현실이 어두워 보이기만 한다. 학교에서는 ‘너희는 취업하는 기계다’라고 말하는 교사들 때문에 압박감이 심하다. 정양은 “학교에는 각자가 이루고 싶은 꿈을 품고 입학한 학생들이 많다. 어려운 현실 때문에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며 “나중의 후배를 위해서라도 정부가 해결책을 내놨으면 한다”고 촉구했다.

 

◆‘고졸 취업’ 안 돼 대학 가는 학생들

한때 취업률이 70%를 웃돌던 특성화고 졸업생 및 재학생들은 유례없는 취업난에 직면했다. 최근 3년간 취업률은 꾸준히 감소하다 지난해에는 50%대까지 주저앉았다. 이에 취업을 포기하고 진학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고졸 인재 양성이라는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7일 국가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지난해 특성화고 졸업생의 취업률은 54.6%로 나타났다. 70%대를 유지하던 취업률은 2017년 74.9%를 정점으로 2018년(65.1%)부터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했다.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등 직업계고등학교로 범위를 넓히면 취업률은 30% 이하로 감소한다.

교육부가 최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청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7년 전국 직업계고등학교 졸업생 중 50.4%(10만9051명 중 5만4908명)가 취업에 성공했는데 2018년에는 42.8%, 2019년에는 33.3%(10만103명 중 3만3295명)로 취업률이 급감했다.

특히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전국 576개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률 조사결과를 같은 방식으로 계산하면 지난 1∼2월 졸업한 8만9998명 중 취업자는 2만4938명(27.7%)에 불과했다. 취업률 감소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까지 더해져 상황이 악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취업을 포기하고 대학 진학을 노리는 학생들은 늘었다. 2017년 32.8%였던 특성화고 졸업생의 진학률은 2018년 36.0%, 2019년 42.5%로 증가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서울 지역 특성화고에서 일반고로 ‘진로 변경 전학’을 한 학생도 648명으로 일반고에서 특성화고로 전학한 학생(154명)의 4배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는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낫다는 서울의 특성화고 절반 이상이 올해 신입생 미달 사태를 겪었다. 올해 서울 지역 특성화고 70곳 중 42곳의 입학 정원이 미달한 것이다.

◆정부 믿고 입학했는데… “고졸 취업은 정부 책임”

“고졸 일자리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에서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악화하는 취업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고졸 노동자들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 다리에 모여 이같이 외쳤다.

이들은 문재인정부가 고졸 취업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고도 부실한 정책을 펴 취업난이 악화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당장 내년 2월 졸업하는 학생이 8만명에 달한다며 고졸취업급여를 지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특성화고 재학생을 위해 현장실습비·취업지원비 등으로 쓰일 고졸 취업활성화지원금 제도를 만들고, 지역별 취업지원센터를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이날 발언대에 오른 최서현 고졸일자리보장운동본부 실천단장은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와중에 지난해 대비 고졸 실업자는 12만7000명이 늘었고, 대졸 이상은 3만6000명이 늘었다. 고졸 노동자들은 3.5배로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졸 노동자로 살아가도 차별받지 않고, 먹고사는 데 문제 되지 않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마땅한 책임이자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고졸취업 지원 확대’를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지정한 채 관련 정책을 펴왔다. 공공기관과 기업의 고졸채용을 늘리도록 유도하고 국비유학이나 해외인턴을 확대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 정부들어 특성화고 취업률이 급감하고,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 등에서도 고졸 출신 비중이 하락세를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가 공기업과 공공기관 등에 고졸 채용을 확대하도록 했지만, 권고 수준에 그쳤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는 기관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정부는 뒤늦게 고졸취업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지난해 초 교육부는 국가직 고졸채용 비율을 2018년 7.1% 수준이던 것을 2022년 20%까지 늘리고, 지방직 기술계고 출신 9급 채용도 같은 기간 20%에서 30%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졸·대졸 차별 해소하고 임금 격차 줄어야”

전문가들은 고졸 취업난 해소와 함께 고졸 노동자에 대한 차별 해소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신난초 특성화고졸업생노조 정책팀장은 “고등학교에서 전문교육을 진행하면 현장으로 실력 있는 학생을 바로 배출할 수 있다고 정부는 홍보해왔다”면서 “하지만 현실에서는 고졸이라는 이유로 업무와 직급, 승진에 있어서 대졸과의 차별이 당연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고형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는 “특성화고에서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음에도 현장에서는 학력이 낮다는 이유로 ‘환경미화’ 같은 전공 분야와 상관없는 단순업무를 맡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현장(사업장)에서 보편적인 인권교육과 노동교육을 실시해 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졸 취업난 해소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교육학과)는 “국내 일자리의 절대적인 수는 부족하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상대적으로 저임금을 지급하고 근무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 취업에 사람이 몰리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이윤을 독식하지 않도록 정부가 규제하고, 중소기업에서도 노력과 실력에 따른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졸 취업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취업을 꺼리는) 업무 강도가 높은 일자리·직무에 대해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특정 직업이나 고졸 출신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도 개선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