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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집값·편 가르기에 코로나까지… 71만명 우울증 고통 [연중기획-피로사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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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19 06:00:00 수정 : 2020-11-18 20: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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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삶 더 커진 ‘마음의 상처’

팬데믹 후 5개월간 진료 전년比 7.1% ↑
“사회적 고립감 큰 노인층 30∼40% 늘어”
19∼44세 여성 환자도 무려 21.6% 급증
남과 비교·불안한 미래에 스트레스 가중

韓 ‘자살률 세계 1위’ 불명예 근본 원인
극단 내몰릴 때까지 진료 기피 큰 문제
병 스스로 인정하고 적극 치료만이 해법
사회도 극단성 줄여 국민 편안하게 해야

 

“병을 병이라고 생각을 잘 못 하기도 하고. 우울증인데 우울증인 걸 모르기도 하고. 이 정도 수준이면 우울증인데 그냥 남들도 다 이러고 사는데 뭐 그냥 그렇게 인식하는 게 문제이기도 하고…(참여자2)”

 

-덕성여대 심리학과 박사과정 조영임, 교수 주은선의 ‘30대 한국 성인남성의 우울증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2020.6)’에서 발췌-

 

우울증은 피로사회의 그림자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부자는 부자대로 가난한 이는 가난한 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사이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난 우울증은 고민과 걱정으로 모두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야말로 마음의 평화를 갉아먹는 현대 사회에 짙게 깔린 어둠이다. ‘코로나 블루’에 심지어 부동산값 폭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극심한 진영대결 등도 국민 우울증 증세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최근 부쩍 증가 현상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건 그만큼 우울증이 중한 상태라는 얘기다. 특히나 올해는 우울증에 고통받는 국민이 크게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질병코드 F32,F33)이 대다수인 기분 장애(질병코드 F30∼F39)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된 올해 3월부터 자료가 집계된 7월까지 약 71만명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6만명에 비해 7.1% 증가한 규모다.

 

게다가 아직 집계 안 된 최근 상황은 더 심각하다는 게 현장 분위기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인한 환자 증가가 3월까지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6∼7월부터 부쩍 늘었다. 특히 노인 환자가 30∼40% 늘었다”며 “상담 이후 괜찮아졌다고 하는 분들도 최근 다시 찾아왔다”고 우려했다. 이런 노인 환자 급증은 코로나19에 고령층이 갖는 불안감이 커서다. 젊은 층에 비해 외부와 소통할 창구가 적다 보니 사회적 고립감도 더 크다. 신 교수는 “노인정 등에서 비슷한 연배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데, 코로나 이후 모든 것이 중단되면서 온종일 집에만 머문다는 게 노인들 하소연”이라며 “반면 젊은 사람들은 소셜미디어 등으로 소통을 하니 상대적으로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젊은이들의 우울증 상담도 크게 늘었다. 특히 여성들이 많다. 건보공단 분석에선 19~44세 여성 우울증이 21.6%나 증가했다. 여성 연예인 자살 등 여성이 호소하는 고통이 제대로 치유되지 않는 상황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근원적 문제 들여다봐야

 

‘코로나 블루’ 때문에 우울증 환자가 많아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이는 새로운 요인에 불과하다. 우울증 방역 최일선에선 감염원을 보다 폭넓게 바라본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인데 특히 한국은 증가속도가 급격하다”고 말했다. 그는 “환경적인 요인들이 문제다. 직장, 취업 등을 비롯해 정치환경 등. 경제적인 문제도 심각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문제도 한국 사회 우울증 근원이 됐다. “특히 부동산, 집값의 급격한 상승 등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줍니다. 한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나뉜 것도 문제거든요. 소셜미디어 등을 보면 서로 자극적인 용어만 사용합니다. 정치, 사회 등에서도 서로 합의가 없고, 여유가 없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고, 이러한 자극은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줍니다.”

신용욱 교수도 남과 비교하는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우울증 주범으로 꼽았다. “예전에는 먹고 사는 것만 걱정하고, 돈을 버는 데 급급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먹고 사는 지가 중요하다 보니 남들과 비교하는 삶이 일상이 됐어요. 타인보다 내가 얼마나 잘 사는지 상대적으로 행복을 찾다가 오히려 우울해집니다.”

 

신 교수는 “불안한 미래도 우울증 증가 이유”라며 “예전에는 열차를 타듯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을 가고, 졸업하면 직장을 가지고, 결혼하는 삶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마치 열차를 타다가 갑자기 내리는 것처럼. 대학을 나왔다고 취직이 다 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방황하고, 이들의 부모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녀들의 불안한 미래에 걱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우울증, 극복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길은 스스로 자기 상태를 깨닫고 인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원인에 따른 해법도 찾을 수 있다. 중증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 2년에 걸쳐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으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는 30대 직장인 A씨는 “우울증을 인정하는 것을 어려워 말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은 가장 극단적 상태로 내몰린 다음에야 병원을 찾는다”며 “쉬어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듣지 않다가 뒤늦게 쉼의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크게 병세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객관화하며 알아가고 배운 게 많았다. 덕분에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뉴스1

강민철 차심리상담센터장은 “우울증이 찾아오면 일단은 약 처방을 받아 스트레스 상황을 완화한 후 상담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며 “예를 들어 가정 불화 때문에 우울증이 왔다면 약을 먹으면 상태는 좋아지겠지만 그렇다고 불화가 없어지는 건 아니니 ‘이 문제가 대체 어디서 왔고, 어떻게 상황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 상담이 도움된다”고 설명했다.

 

공동체의 사회적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권준수 교수는 “개인은 복식호흡이나 요가, 명상 등으로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긴장도를 낮추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노력을 해야 하고, 사회는 극단적인 경향을 줄여야 한다. 경제적인 안정, 정치적인 안정으로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준·김예진·이복진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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