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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미칼럼] ‘분열된 집’ 세우는 건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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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1-11 00:19:48 수정 : 2020-11-11 00: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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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회복력 보여줄 통합 정치 유산
국민이 편가르기 정치 심판할 것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승리를 거머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첫 연설에서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때 떠오른 사진이 있다. ‘심각한 발걸음(Serious Steps)’이란 제목의 흑백 사진이다. 1961년 4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전임 대통령이 오솔길을 걷는 뒷모습을 찍었다. 이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AP통신 폴 바티스 기자는 “고개를 숙인 채 길을 따라 걸어가는 그들이 매우 외로워 보였다”고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일촉즉발 상황에서 소속 정당이 다른 전·현직 대통령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유감스럽게도 바이든 당선인과 트럼프 대통령이 한자리에서 국가 현안을 논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100년 넘는 승복의 전통을 깬 트럼프가 끝내 바이든을 미 합중국 대통령으로 인정할지조차 의문이다. 재임 기간 내내 민주당 세력과 이민자 등을 적대시해 유례없는 ‘분열의 대통령’이란 딱지가 붙었던 그는 현직 대통령을 존중하며 힘을 실어줬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 문화를 바꿔버릴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힘을 과시한 극성 트럼프 지지층을 언덕 삼아 심각한 미국 사회의 균열을 헤집어놓을 공산이 크다.

황정미 편집인

그래도 미국의 회복력을 믿고 싶다. “반대 진영을 적으로 대하는 일을 멈추고,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바이든의 약속은 미국민뿐 아니라 위기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36년간 상원의원 활동과 8년 간 부통령 시절 보여준 협치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많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 밥상머리에서 정치를 배웠다는 그는 “약속은 지켜야만 하며, 정치에 참여하려면 통합이라는 최소비용이 필요하다”는 걸 평생 원칙으로 삼았다고 했다.

공화당 텃밭인 애리조나를 바이든에 선사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유산도 조명 받을 만하다. 살아생전 트럼프와 불화했던 탓에 부인의 바이든 지지 선언을 ‘정치적 보복’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는 보기 드문 초당적 정치인이었다. 공화당 인사 중 기후변화, 인종차별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전사’였다. 메케인은 국민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에서 “우리는 서로 공통점이 훨씬 많고 ‘우리 모두가 이 나라를 사랑한다’는 전제만 인정한다면 미국은 지금껏 그래왔듯이 전보다 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썼다. 2008년 버락 오바마 당선인에게 “우리가 둘 다 사랑하는 이 나라의 차기 대통령에 선출된 것을 축하한다”는 매케인의 승복 메시지가 다시 SNS에 회자되고 있다.

선거 기간 바이든은 남북전쟁 격전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를 찾았다. 그 자리에서 “분열된 집은 바로 설 수 없다”는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의 명연설을 상기시켰다. 링컨은 1863년 수만명의 사상자를 낸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난 뒤 전사자를 위한 묘지 봉헌식에 참석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도록 우리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바이든은 승리 연설에서도 미 합중국을 지켜낸 링컨을 소환했다.

“지금은 치유할 때”라는 바이든 말이 유효한 건 미국만이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같은 국민이 맞는지 싶을 정도로 갈라져 있다. 어떤 자리든 정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된 지 오래다.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을 적으로 여기는 집권 세력 책임이 크다. 국회에서 “(8·15 광화문) 집회 주동자들은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라고 외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은 문재인정부 인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문 대통령 약속은 허언이 됐다.

편가르기 정치에 상처받은 국민 마음을 치유하는 건 자신들 잘못에 대한 진정한 사과, 비판과 이견에 대한 관용이다. 하지만 권력이 최종 목적인 집권 세력에 그런 기대는 난망이다. 조국 사태, 윤미향 사태 때 ‘적폐’ ‘토착왜구’로 상대를 몰아붙인 적대적 프레임은 여전히 작동 중이다. 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 침몰하지 않도록 ‘평형수’ 역할을 하는 건 늘 국민이었다. 조롱과 경멸, 증오의 트럼프 정치를 멈추게 한 것 역시 미국민이다. “탄환이 아니라 투표로 정권을 세워야 한다. 자유인이라면 그걸 증명해야 한다”는 링컨의 말처럼.

 

황정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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