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동산시장에 일찍이 보지 못한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전세를 구하려고 줄서기·제비뽑기·면접을 하고 기존 세입자는 집을 비워주는 대가로 위로금을 요구한다. 새 임대차법 시행 후 전세매물의 씨가 마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셋값은 치솟고 집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발만 동동 구른다. 가을 이사철에 접어들면서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전세매물 실종 사태는 수도권 곳곳으로 번졌다. 과천·광명·분당·평촌 등 서울 인근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서 전세매물을 찾기 힘들다. 광명역 인근 59㎡ 아파트 전셋값은 임대차법 개정 이후 한 달에 1억원씩 올라 7월 초 3억5100만원에서 최근 6억4000만원에 이르렀다. 서울 가양동 아파트에서는 아홉 팀이 줄 서서 집을 둘러본 후 다섯 팀이 가위바위보로 세입자를 정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예는 주택시장의 파행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전세 난민’이 될 처지에 놓인 홍 부총리가 1가구 2주택자 논란을 피하려고 지난 8월 매매계약을 한 경기도 의왕 집의 매각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세입자가 “더 살겠다”며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전세 든 서울 마포 아파트도 비워줘야 할 판이다. 임대차법 개정을 주도한 홍 부총리 자신이 전세 난민에다 집도 처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부총리가 그 지경이라면 얼마나 많은 서민이 애를 태울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홍 부총리는 그제 “제도가 정착되면 기존 임차인의 주거안정 효과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전세난이 수도권 전역으로 번지는 판에 또 희망고문을 하겠다는 건가. 경실련이 지난 30년간 서울 아파트가격을 분석한 결과 서울 강남 아파트는 30평 기준으로 문재인정부에서만 7억6000만원 뛰어 역대 정부 중 가장 많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만 봐도 부동산정책의 참담한 실패는 한눈에 드러난다.
집값·전셋값 폭등은 시장을 외면한 채 규제로만 집값을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땜질 규제’로 대응한 결과 가격은 뛰고 세제마저 누더기로 변했다. 세무사는 부동산세금 계산을 포기하고, 국세청은 ‘백문백답’ 안내서까지 만들었다. 초유의 블랙코미디다. 부동산 시장 기능을 되살리고 기존 규제정책을 전면 수술해야 한다. 지난 3년반의 실패를 반성하지 않고 “안정된다”는 말만 반복하면 서민의 고통만 더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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