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분 망각한 경솔한 발언 잇따라
양국 관계 위해 좌시해선 안 될 것

이수혁 주미대사가 그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70년 전에 한국이 미국을 선택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국을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고 했다. “앞으로도 미국을 사랑할 수 있어야, 우리 국익이 돼야 미국을 선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한·미동맹의 변화와 미래를 언급한 것이라지만, 한·미동맹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대미외교의 최전선에 있는 주미대사의 말이 맞는지 귀를 의심하게 된다.
한·미는 1950년 6·25전쟁 때부터 북한의 군사위협에 함께 대처해 왔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한 한·미동맹은 지난 70년간 우리나라의 안보와 경제 번영의 기반이었다. 이러한 동맹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주미대사가 동맹 파기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발언을 한 건 위험한 처사다. 미국 국무부는 “70년 역사의 한·미동맹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고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이 대사가 지난 6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나라”라고 했을 때도 미국은 “한국은 수십년 전 민주주의를 받아들였을 때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했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대사가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한반도 종전선언과 관련해 “북한만 동의한다면 미국은 아무런 이견이 없다”고 밝힌 것도 경솔하다. 이 대사는 “미 고위 관리와 접촉한 결과”라고 설명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미국은 비핵화 진전이 없이는 종전선언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종전선언은 북한 비핵화 협상의 유효한 카드이기도 하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 대사가 논란이 될 발언을 이어가는 건 북·중에 경도된 듯한 청와대에 코드를 맞추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첨예한 미·중 갈등으로 국제사회가 혼란스럽다. 코앞에 다가온 미 대선 결과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도 가늠하기 어렵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 또한 우려되는 상황이다. 주미대사의 책무가 막중하다.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지 않도록 묘안을 짜내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으로 삐걱거리는 한·미 관계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 대사는 외려 부적절한 발언으로 주재국을 자극하고 한국의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외교관의 본분을 망각한 무책임한 행동이다. 이 대사를 그대로 놔둬서는 안 된다. 미국이 그의 말을 문재인정부 입장으로 받아들이면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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