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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정보 보호법 뒤에 비겁하게 숨지 말자 [알아야 보이는 법(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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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12 13:00:00 수정 : 2023-11-26 23:4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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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관의 강압 수사를 공익제보 한 변호사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된 사건이 최근 있었다.

 

당사자인 A변호사는 대형 화재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되어 조사를 받던 외국인 노동자의 변호인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B경찰관이 이 노동자를 9시간째 신문하면서 윽박지르거나 자백을 강요하는 등 인권침해 소지가 발생했다. A변호사는 경찰서에서 이 같은 조사 장면을 녹화한 영상을 정보공개 청구로 입수한 뒤 언론사에 제보했다. 이 영상이 대서특필 되자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경찰서에 주의 조치를 내리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자 B경찰관은 A변호사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언론사가 방영한 뉴스 영상을 보면 B경찰관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가, 녹음된 음성은 변조가 각각 되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볼 수 없도록 편집되어 있다. 다만 A변호사가 언론사에 제보한 영상 원본에서는 모자이크나 음성 변조가 되어 있지 않아서 B경찰관을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A변호사가 제공한 영상 원본은 개인정보, 언론사가 편집하여 방영한 영상은 비(非)개인정보에 각각 해당한다. 고소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서는 이런 이유를 들어 언론사는 불기소 의견으로, A변호사는 기소 의견으로 각각 검찰에 송치했다. 언론사는 모자이크 처리 등 편집을 했으니 괜찮지만, 영상 원본을 제공한 A변호사는 B경찰관의 개인정보를 침해했다고 본 듯하다.

 

이 사안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다루는 데는 찬성할 수 없다. 일단 A변호사가 개인정보보호법상 ‘개인정보 처리자’인지도 의문이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당방위’에 해당할 소지가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개인정보 호법의 ‘보호법익’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개인정보는 왜 보호하는가. 초창기 개인정보 보호는 ‘정부 권력에 의한 개인 감찰’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민간 영역, 특히 기업과 소비자 관계에까지 확장되면서 정보 주체가 자기에 대한 정보를 능동적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으로 진화되었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이다. 

 

그렇다고 ‘나’에 대한 정보라는 이유만으로 내가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다른 사람이 내 정보를 알 권리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통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 누군가 “나에 대한 정보 일체를 잊어 달라”고 한다면 이것은 현실적으로 관철 불가능한 요구이다. 나에 대한 정보를 이미 인식하여 버린 타인의 ‘기억할 수 있는 권리’ 또한 보장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타인의 권리와 나의 권리를 비교형량 하여 나의 법익이 더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는 범위에서만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 이 점에서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은 생명권이나 신체권, 인격권과 같은 절대적인 천부인권과는 다르다. 헌법재판소가 다룬 열 손가락 지문날인제도와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사건, 대법원이 다룬 법률 포탈 사이트 로마켓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명단 공개, 종합 법률정보 서비스 업체 로앤비 사건 등은 모두 법익형량의 관점에서 개인정보 규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견해를 견지해오고 있다.

 

공익제보 변호사에게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건 이번 사건은 개인정보 보호 범위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평가된다. A변호사의 제보행위로서 얻어지는 공익은 가시적인 반면, B경찰관이 침해당한 법익은 ‘A변호사로부터 원본 영상을 받은 언론사가 만약 모자이크 처리 및 음성 변조를 해주지 않았더라면 내 신상이 까발려졌을 가능성이 있었겠구나’라는 불안감에 그쳤다. 전자의 법익이 당연히 더 우월하다.

 

사실 개인정보보호법은 오·남용되기 쉽다. “개인정보 탓에 공개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대기가 좋기 때문이다.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이 정보공개 청구를 반려하면서 내세운 사유 중 26%는 ’개인 사생활 침해 우려’로, 정보공개법에서 정한 9개 비공개 사유 중 가장 빈번하게 제시된다고 한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정부를 감시하는 시민의 눈을 가리는 가리개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개인정보를 왜, 어떻게, 얼마나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뿌리내려야 한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개인정보보호법 뒤에 비겁하게 숨지 않기를 바란다. 

 

전승재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해커 출신 변호사가 해부한 해킹 판결’ 저자) seungjae.jeon@barunla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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