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기고] 30년 지기 체코와의 만남을 기다리며

관련이슈 기고

입력 : 2020-10-08 22:59:02 수정 : 2020-10-08 22:59: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일인당 맥주 소비 1위국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는 어디서 초연(初演)됐을까? 체코다. 사실 한국에서는 체코보다 프라하를 말해야 더 알아준다. 필자도 지난해 말 대사 발령을 받고 주위 사람들에게 의식적으로 “프라하로 가게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라하 하면 칸의 여왕 전도연 주연 ‘프라하의 연인’을 빼놓을 수 없다. 사랑의 테마와 딱 맞는 동화마을 프라하를 한국인들에게 진하게 각인시켜 줬다.

 

우리가 체코와 수교한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추진된 북방외교의 흐름 속에 우리가 수교한 국가 중 하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체코의 의미는 남다르다. 체코는 면적이 한반도의 3분의 1, 인구 1000만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다. 역사적 시련을 겪으며 형성된 국민정서, 제조업·기술 중심 및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는 체코를 다시 보게 한다. 특히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에서 비롯된 근현대사, 그런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민족 자립 의지, 언어와 문화적 정체성은 우리와 놀랄 만큼 닮아 있다.

김태진 주체코 대한민국대사

독일과 러시아를 양쪽에 둔 체코는 2차대전의 도화선이 된 뮌헨협정으로 나치의 첫 희생양이 됐다. 1946년 독립 후에도 1989년 벨벳혁명을 거쳐 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되기까지 약 40년간 구소련 영향 아래서 억압받았다. 16~20세기 초 합스부르크 왕조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시절에는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을 경험하기도 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체코인들이 자기 문화에 높은 자긍심을 갖게 한 원천이 됐다. 학교 음악수업 시간에 국민악파의 아버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이나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신세계 교향곡’을 들어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아르누보의 거장인 알폰스 무하가 슬라브민족의 역사를 그린 20개의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체코인들의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1968년 당시 강압적 정치체제 하에서 민주화와 자유를 갈망했다는 점에서 ‘프라하의 봄’은 우리의 1987년 6월 항쟁과 묘하게 닮았다. 체코의 유명작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탄생하는 배경이 된 점에서 고통의 역사를 문화적 결정체로 승화시킨 일례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체코는 자유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미증유 위기에 대처하는 성숙된 시민의식이 닮았다. 우리 언론에 소개됐듯, 체코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유럽에서 가장 처음으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다. 시중에 마스크가 부족한 상황에서 시민들이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이웃과 나누며 시민사회의 단합된 노력을 보여줬다. 최근 유럽 전체가 코로나19 재확산을 겪고 있고 체코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두 번째 국가 비상사태 선포 등을 통해 극복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체코와 친구가 된 지 30년이 된 올해, 여러 의미 있는 행사와 고위급 교류를 통해 축하하지 못하는 점이 참 아쉽다. 다행히 어려운 시기에도 체코와 보건 협력뿐 아니라 재외국민 귀환, 기업인 예외입국 등 서로에게 필요한 일들을 챙겨주는 아주 중요한 파트너인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루빨리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돼 많은 우리 국민이 도시 전체가 포토존인 백탑(百塔)의 도시 프라하를 직접 와 감상할 수 있길 기대한다.

 

김태진 주체코 대한민국대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