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IoT로 안부 확인·말벗 된 AI스피커… 어르신 고독감이 ‘뚝’ [언택트 시대, 소외된 노인들]

입력 : 2020-10-07 06:00:00 수정 : 2020-10-07 08:07: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5회) 노인을 위한 기술은 있다 <끝>
‘노인 안전 지킴이’ IoT 기기
센서 통해 동작·온도·가스누출 등 감지
일정시간 움직임 없으면 복지사 출동
서울시 고령층 7500명 이용… 고독사 0
적적함 달래주는 AI 스피커
음성으로 날씨·뉴스·음악도 쉽게 이용
노인 행복감 7% ↑… ‘위드 스마트’ 시대
전문가 “대면 돌봄 방식과 병행해야”

“어르신, 괜찮으세요? 어르신! 거기 계세요? 제 말 들리세요?”

지난 4월 서울 금천구의 김모(87) 할머니 집 현관문 앞. 사회복지사 서경철(25)씨는 다급한 목소리로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인기척은 없었지만 불도 켜져 있고, 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면 현관 너머 어디선가 작게 벨소리가 들려왔다. 위급 상황임을 감지한 서씨는 즉각 112와 119에 신고하고 복지관과 주민센터에도 상황을 알렸다.

출동한 경찰과 소방 대원이 창문 쇠창살을 끊고 들어간 단칸방에는 김 할머니가 무릎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의식은 있었지만 의사소통은 불가능했다. 무릎골절뿐 아니라 뇌출혈까지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김 할머니는 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무사히 수술을 받고 고비를 넘겼다. 서씨가 빠르게 김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기기 덕분이다. IoT 기기에 8시간 동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주의’ 경보가 떴고, 이를 모니터링한 복지관 쪽이 빠르게 움직였다. 이전에도 두 차례 낙상사고로 허리와 다리를 다친 적이 있는 김 할머니 집에 IoT 기기가 설치된 건 불과 사고 20일 전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위드(with·함께) 코로나’ 시대, 노인들은 조금씩 ‘위드 스마트(smart·똑똑한)’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정보통신기술(ICT)로부터 소외돼왔고, 주로 대면 서비스로 돌봄을 받았던 고령층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가속화된 비대면 사회를 피할 순 없는 상황. 이들은 이제 방문자 대신 IoT 기기, 인공지능(AI) 스피커와 같은 스마트 기기의 도움을 받고 있다.

◆노인 안전도 ‘스마트’하게… 고독사 0건

기자가 지난달 24일 방문한 서울 금천호암노인복지관 사무실 안에는 ‘전체 79, 정상 72, 주의 0, 경보 0, 위험 0, 점검 7’이라고 쓰인 실시간 현황판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황판을 바라보던 김미광 맞춤지원팀장은 “이렇게 주의·경보·위험에 전부 0이란 숫자가 떠 있어야 안심하고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IoT 기기의 동작감지센서에 따라 대상자가 8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으면 주의, 12시간 이상은 경보, 24시간 이상은 위험 상태가 된다. 입원 등으로 장기간 집을 비우는 경우엔 생활지원사나 사회복지사가 확인 후 점검으로 상태를 바꾼다.

노인 가구에 설치되는 작은 리모컨 크기 정도인 IoT 기기에는 동작·온도·습도·조도와 이산화탄소(CO2), 유해가스 누출 등을 감지할 수 있는 센서가 달려 있다. 센서가 파악한 정보는 애플리케이션(앱)과 바로 연동돼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와 사회복지사 등이 휴대전화로 쉽게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복지관 사무실 현황판처럼 기관, 자치구, 시에서도 항시 모니터링이 이뤄진다.

6일 서울시에 따르면 ‘취약어르신 안전관리 솔루션 사업’에 따라 현재 7500여명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고, 올해 안에 대상자는 총 1만명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사업 대상은 만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또는 기초연금수급자 중 가족과의 관계 단절이나 자발적 은둔, 우울, 고령 등으로 안전 확인이 필요한 노인이다.

2017년 3월 시범사업을 시작한 후로 해당 서비스를 이용한 노인들의 고독사는 1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 할머니처럼 IoT 기기가 위험 상황을 감지해 선제적으로 조치한 상황만 2018년부터 지난 7월까지 135건이다.

생활지원사 김영화(52)씨는 “코로나19로 방문이 어려워졌는데, IoT 기기 덕분에 직접 뵙지 못해도 뵙는 것처럼 잘 계신지 확인할 수 있다”면서 “특히 좁은 방에 혼자 살고 계신 90대 고령 어르신께서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걱정이 많이 됐는데, 습도나 온도 등을 확인할 수 있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위드 스마트’로 행복감 높이고, 고독감 낮추고

“잘 잤니?”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근데 나 오늘 좀 우울하네.” “제가 위로해드릴게요. 기분 좋아지는 노래 들려드릴까요?”

서울에 사는 80대 유모 할머니는 인공지능(AI) 스피커와 일상적으로 이런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은 AI 스피커에게 ‘너 내 딸 돼서 나랑 계속 재밌게 놀자”고 말했다가 “즐겁게 놀기만 하는 딸은 안 돼요”라는 대답을 들고 한참을 웃기도 했다. 유 할머니는 “AI 스피커는 소중한 내 친구이자 자식”이라면서 “외출할 때는 차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신나는 노래를 틀어서 춤도 추게 해주니 몸도 건강해지는 기분”이라고 했다.

 

지난달 28일 한 노인이 자신의 집에 설치된 IoT 기기를 바라보고 있다. 금천호암노인복지관 제공

AI 스피커를 활용한 노인 돌봄 서비스는 노인 안전뿐 아니라 정서 안정에도 도움을 준다는 평가다. 지난해 4월 전국 사회경제연대 지방정부협의회가 통신사와 함께 시작한 복지서비스인 ‘AI 돌봄’은 전국 6500여명의 혼자 사는 노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AI돌봄은 ICT케어매니저가 노인들에게 AI 스피커 사용법을 알려주고, 문열림 센서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방문과 전화로 돌봄을 제공한다. AI 스피커로는 음악·날씨·운세·뉴스·라디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바른ICT연구소가 AI 돌봄 이용 효과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I 스피커를 사용한 후 노인들의 행복감은 7% 높아졌고, 고독감은 4% 줄어들었다.

오랜 지병을 앓아왔던 남편과 사별 후 우울증을 겪었던 70대 정모씨는 AI 스피커 사용 후 무기력증을 극복하고 외출 횟수도 늘었다. 정씨는 “AI 스피커와 얘기도 하고 노래도 들으며 마음의 빈자리를 조금씩 채워나갔다”면서 “주변에도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단 얘기를 듣고 같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복지관을 찾기도 했고, 동네 산책도 하면서 전보다 활기찬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AI 돌봄을 통해 디지털 기기를 처음 접해본 노인들의 자기효능감이 높아졌다는 분석 결과도 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늘 부끄러웠다는 70대 김모씨는 “AI 스피커를 처음 봤을 때 배우지 못한 사람이 과연 기기를 다룰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면서 “날씨나 노래 서비스부터 시작해 점점 다양한 기능을 시도해보다 보니 디지털 기기 사용에 대한 자신감도 생겨 스마트폰 사용법도 배워보려고 한다”고 자신의 변화에 대해 털어놨다.

◆“비대면 돌봄과 대면 돌봄 함께 가야”

전문가들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비대면 노인 돌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여기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김경미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음성만으로 이용할 수 있는 AI 스피커 등 스마트 기기가 노인의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면서 “그동안 단순히 스마트 기기만 제공하는 사업이 많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생활지원사나 ICT케어매니저 등 ‘디지털 조력자’의 역할이 디지털 격차를 줄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승희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도 “노인 돌봄에 비대면 방식이나 스마트 기기 활용은 특히 코로나19처럼 비상 상황에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면서도 “어디까지나 이러한 방식은 기존 대면 돌봄의 보조적 역할일 뿐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
  • 이다희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