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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 어르신도 매일 보는 영상… ‘실버세대 e-놀이터’로 부상 [언택트 시대, 소외된 노인들]

입력 : 2020-10-06 06:00:00 수정 : 2020-10-06 07: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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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노인과 유튜브라는 바다
유튜브 시청, 연령대 중 50대 이상 최다
코로나 여파로 작년보다 2배가량 늘어
트로트 열풍 견인… 영상 공유 적극적
60대 스마트폰 과의존 비율 증가 추세
가짜뉴스 등에 노출… 이념 편향 우려

#1 “요새는 솔직히 뉴스는 신뢰가 안 가. 옛날엔 뉴스에만 의존했는데 유튜브는 거기서 말 않는 걸 알려주니까


지난달 29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미용실에서 만난 조온길(80)씨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는 구독자가 20만명이 넘는 한 보수 성향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조씨에게 유튜브는 방송이나 신문이 보도하지 않는 ‘진실’을 이야기하는 곳이다. 조씨의 유튜브 사랑은 가족들이 걱정할 정도다. 하루 2∼3시간 정도 유튜브를 본다는 그에게 한집에 사는 아들은 ‘시력이 안 좋아지니 그만 보시라’는 말을 매일같이 한다. 조씨는 “젊어서는 시간이 없었지만 세상이 하도 불안하고 그래서 유튜브 뉴스를 열심히 보려고 한다”며 “유튜브는 컴퓨터도 쓸 줄 모르는 우리 세대에게 세상 돌아가는 걸 바르게 전하는 곳이다”라고 힘줘 말했다.

 

#2 “송가인의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머리와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바로 검색을 해보고 팬카페도 가입하고 활동하고 있답니다.


서울에 사는 윤준용(64)씨는 요즘 트로트 가수 송가인의 노래를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있다. 송가인과 관련한 유튜브 영상은 보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으로 재생 목록을 만들어 ‘무한재생’하고 있다.

노래방에서 자주 부르는 노래는 있어도 한 가수를 좋아해 본 적도 없다는 그는 지난해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서 송가인을 알게 된 뒤로 온라인 팬 카페에도 수시로 드나들고 있다. 전국의 공사 현장을 다니며 일하는 그는 “좋아하는 송가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작업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오랜 객지 생활의 시름까지도 다 해소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중장년층이 유튜브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사용에 익숙하지 않았던 이들은 영상에 접근하기 쉽고 취향에 맞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유튜브의 매력에 빠졌다. 스마트폰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우려를 낳을 정도로 유튜브는 노인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었다.

◆‘50대 이상’이 유튜브 가장 많이 본다

유튜브가 노인을 사로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조사한 지난해 4월 한 달 국내 유튜브 시청자 연령대 현황을 보면, 유튜브를 가장 많이 시청하는 연령대는 10·20대의 젊은층이 아니라 50대 이상이었다. 전국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사용자 3만3000명을 조사한 결과, 조사기간 50대 이상의 유튜브 사용시간은 101억분으로 10대(89억분)와 20대(81억분)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도 조사(51억분)에서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1인 평균 시청시간은 50대 이상이 1045분으로 10대(1895분), 20대(1625분)보다 짧긴 했지만 30대(988분)와 40대(781분)보다는 길었다.

장기화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중장년층의 스마트폰 사용 역시 늘어난 만큼, 유튜브 이용 시간도 함께 늘어났을 것으로 관측된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이 전국 만 49세 이상 회원 1205명에게 디지털 서비스 이용 현황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56.3%가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을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고 답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처음 사용하게 된 디지털 서비스가 있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38.5%는 유튜브 등 영상 서비스라고 답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 콘텐츠는 그동안 젊은 사람의 취향 위주로 제작되다 보니 중장년층이 소외되는 경향이 있었다”며 “유튜브는 개인별 맞춤 영상을 내보내 이분들도 선호하는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없이는 못살아’… 과의존에 이념 양극화 우려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노인층임에도 유독 유튜브만은 이용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과의존을 걱정해야 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지난 2월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내놓은 ‘2019년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의 스마트폰 ‘과의존’ 비율은 14.9%를 기록했다. 2016년 11.7%, 2017년 12.9%, 2018년 14.2%에서 증가 추세를 이어갔다. 과의존은 스마트폰 사용 정도를 스스로 조절하기 어려워 일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태다.

 

여기에 유튜브를 통한 뉴스 소비가 정치적 편향성을 강화할 것이라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사용자가 시청한 영상과 ‘좋아요’ 선택, 시청시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맞춤 영상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은 정보 검색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노인이 유튜브에 더욱 빠져들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유사한 성향의 콘텐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확증편향이 강화되고 이념적인 양극화를 부추기는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하재근 평론가는 “정치적으로도 선호하는 목소리만 찾다 보니 한쪽으로 경도되기 쉬운 구조”라며 “이런 특성을 이용해 개인 미디어가 사실관계를 엄격하게 따지기보다 가짜뉴스를 통해 시청자를 현혹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공영방송이나 지상파가 정권에 따라 영향을 받아 왔다”며 “보수 정부 시절 트위터를 중심으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이 몰렸던 것과 반대로 지금은 이전 정부를 지지하던 고령의 보수층이 유튜브라는 매체로 이동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한 노인”

문화적 측면에서 노인의 유튜브 시청은 수동적인 소비에만 머무르지 않고 진화하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나온다.

윤중용씨의 경우처럼 최근 세대를 불문한 트로트 열풍의 시발점은 노인층이었다. 임영웅, 송가인 등 유명 트로트 가수의 팬카페에서는 아이돌 팬덤(열성팬)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해 관련한 것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행위)을 중장년층이 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해당 가수의 TV 방영분이 유튜브에 올라오면 이 주소를 공유하거나, 가수의 음원 순위를 올리기 위해 특정 시간에 맞춰 가수의 곡을 듣는 등의 적극적인 행동을 펼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노인이 다수가 돼가는 사회에서 이들이 중요한 소비층으로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노인의 하위문화가 형성되고 세력화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간단한 기기 사용법을 몰라 정보매체에서 배제된 노인들이 여전히 많다”며 “사회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디지털 문해 교육 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손주 재롱 담고 싶어”… 시청자에서 창작자로 변신

 

평범한 유튜브 시청자였던 노인들 중 일부는 제작자로 변모하고 있다.

 

동년배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부터 평생 쌓아온 전문영역의 노하우를 담은 콘텐츠까지 제작하며 유튜브의 ‘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뜻하는 청년 신조어)로 자리매김 중이다.

 

자신을 ‘얼리어답터’(남들보다 빨리 신제품을 구매해 사용하는 소비자)이자 ‘투머치토커’(말을 많이하는 사람)로 소개한 이남기(64)씨는 3년차 유튜버다. 어려서부터 기계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은퇴 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등의 기기 사용법 등을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남기씨

그가 본격적인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IT(정보기술)지원단 강사로 활동한 것이 계기였다. 기업체 자문 같은 역할을 기대했던 이씨에게 맡겨진 특명은 복지관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스마트폰 사용법 강의였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웠지만 여러 지역의 복지관을 다닐수록 제 일을 찾은 것 같았다.

 

손주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이들은 이씨의 강의를 듣기 위해 복지관을 찾는다. 이씨는 “화면을 보면서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집에 가서 복습한다고 필기에만 열중하는 분들이 많았다”며 “돌아서면 사용법을 잊어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메신저로 영상을 만들어 보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지난달부터 재단에서 진행하는 유튜버스쿨 수업을 받고 있다. 콘텐츠 기획과 영상 촬영, 편집 등 유튜브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이 진행되는 곳이다. 이전까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영상을 찍어 올렸던 그는 앞으로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한 단계 진화한 영상을 올릴 계획이다.

 

이씨는 “내 또래나 나이 드신 분들은 배우고 싶은 열정은 가득하지만 기회가 없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도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눠서 그분들과 사회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김금녀씨

이씨보다 한 해 먼저 유튜버스쿨을 졸업한 김금녀(66)씨는 1000명 이상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여행사에서 30년 넘게 통역안내사로 일한 김씨는 그의 경력을 유튜브 영상에 십분 활용하고 있다. 그는 남편과 함께 다니는 캠핑카 여행을 추억으로만 간직하는 데서 나아가 여행지의 정보와 감상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처음 남편에게 캠핑카를 산다고 했을 때는 반대했지만, 막상 캠핑카를 이용해보니 나쁘지 않았다. 여행지의 풍경을 생생하게 영상에 담기에는 캠핑카가 제격이었다. 그렇게 강화도, 주문진, 부산, 제주도까지 전국 팔방을 다녔다.

 

김씨는 “여행지 영상을 올리다 보면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면서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같은 시니어(노년층)만이 아니라 젊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댓글도 많이 단다”며 “세대를 초월해서 소통할 수 있는 문이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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