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최갑수의맛깊은인생] 부지런히 먹어두고 하나쯤 사두는 일밖에는

관련이슈 최갑수의맛깊은인생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20-09-29 21:08:56 수정 : 2020-09-29 21:08:53

인쇄 메일 url 공유 - +

제천 명동에 ‘송학반장’(松鶴飯莊)이라는 화상 중화요리집이 있다. 65년 된 노포다. 제천 시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다. ‘송학반점’으로도 부르는데 등록 당시 공무원의 착각 때문에 두 상호가 혼용되고 있다. 예전에 제천에서는 가장 큰 중국집이었는데 그래서 이름에 크다는 뜻의 ‘장’ 자를 붙였다고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커다란 어항이다. 옛날 화교가 운영하던 중국집에는 꼭 어항이 있었는데 어항 속에는 대부분 관상용 비단잉어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울면, 기스면도 붙어 있다.

이 집의 대표메뉴는 깐풍갈비다. 튀긴 돼지갈비 위에 소스를 얹어낸 요리다. 탕수육과 비슷한데 마늘 맛이 강하게 난다. 달지 않아 식초를 섞은 간장에 찍어 먹으면 좋다. 작고한 고 기고훈옹이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지금 송학반장은 아들 기수봉씨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허락을 받고 주방을 살짝 엿보았다. 입구에 커다란 나무 도마가 있었다. 바가지 하나만큼 움푹 패어 있어서 얼마나 사용했는지 여쭈니 고작 8개월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돼지갈비를 손질하다 보니 그렇단다. 칼로 뼈를 내리쳐 잘게 자르다 보니 도마가 많이 파인다는 설명이었다. 주방 안쪽에 아이 키만 한 도마가 있었는데 몇십 년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돼지갈비와 짜장면을 시켰다. 면은 소다를 첨가하지 않아 흰색을 띠고 있었다. 소스가 찐득하지 않고 달지 않아 좋았다. 기억 속에 처음 먹었던 짜장면 값이 400원이다. 목욕탕도 어린이는 400원이었는데, 천 원짜리 한 장을 들고 목욕도 하고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송학반장 짜장면을 먹는 순간 어릴 적 먹던 400원짜리 짜장면이 떠올랐다.

왕만두도 맛있다. 어른 주먹만 하다. 한국식 만두보다는 중국의 ‘바오즈’(包子)에 가깝다. 뭉텅뭉텅 썰어낸 고기와 부추가 들어 있다. 한 입 베어물면 입 속에 육향이 가득찬다. 간은 조금 심심한 편이다.

제천에는 갈대와 수수로 빗자루를 만드는 집이 아직 남아 있다. ‘광덕빗자루공예사’ 이동균 명인은 68년째 빗자루 하나하나를 일일이 손으로 만들고 있다. 어릴 적 방과 마당을 쓸던 그 수수빗자루인데 하루에 하나 정도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송학반장은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중국요리가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돼지갈비는 인근의 다른 중국집 몇 곳에서 팔고 있다고 한다. 훗날 송학반장이 문을 닫으면 진짜 ‘원조’ 집이 사라지는 셈이다. 광덕빗자루공예사도 이동균 명인에서 대가 끊길 확률이 높다. 빗자루를 팔아서는 생활하기 어려워 대를 이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힘들고 돈이 되지 않는 일을 보존이라는 명분만 앞세워 억지로 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아쉬움이 생기는 것도 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부지런히 먹어두고 하나쯤 사두는 일밖에는.

최갑수 여행작가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최지우 '완벽한 미모'
  • 전지현 '눈부신 등장'
  • 츄 '상큼 하트'
  • 강지영 '우아한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