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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데이터 표준 놓고 줄세우기… IT강국 한국 ‘진퇴양난’ [한반도 인사이트]

입력 : 2020-10-03 08:00:00 수정 : 2020-10-01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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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 기술패권 경쟁 격화
美 “中으로부터 네트워크 지키겠다”
동맹·우방국에 ‘反화웨이’ 동참 요구
英·加 등 영어권 5개국 사실상 참여
中도 “글로벌 데이터 보안 구축” 맞불
한국에 참여 압박… 선택의 기로에 서

미·중 간 기술경쟁, 그중에서도 5G를 필두로 한 데이터 표준 갈등이 외교 갈등의 중심부로 들어오고 있다. 미국은 지난달 5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데이터와 네트워크를 지키겠다”며 ‘클린 네트워크’ 정책을 발표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에 맞서 지난 8일 베이징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데이터 안보에 관한 글로벌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왕 부장은 “일방적으로 ‘클린’이라는 구실로 다른 나라를 압박하고 ‘안보’ 핑계로 타국 첨단기업에 대해 글로벌 사냥을 일삼고 있다”며 미국을 비판했다. 미·중 외교장관들이 데이터 표준 갈등의 선봉에 선 것이다. 데이터가 안보와 필연적으로 연결된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데이터 표준과 관련한 미·중 갈등이 특히 한국에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다수의 정보기술(IT) 기업을 보유한 IT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전통적 동맹 관계가 견고하게 작용하는 안보 분야와 달리 IT 분야에서 미·중의 압박은 훨씬 직접적이다. 내달 폼페이오 장관과 왕 부장이 연이어 방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이 방한하면 데이터 표준 문제는 빠질 수 없는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을 둘러싼 미·중의 압박

클린 네트워크는 ‘반(反)화웨이 연합’으로 요약된다. 미국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핵심 동맹·우방국을 대상으로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촉구하고 있다. 중국 또한 반(反)미국 성격이 강한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한국이 함께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최근 한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 함께 글로벌 데이터 보안을 구축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화웨이 제재는 이미 국내 기업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버트 스트레이어 미 국무부 사이버·국제통신정보정책 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7월 화상 브리핑에서 “우리는 LG유플러스 같은 기업들에 믿을 수 없는 공급업체에서 믿을 수 있는 업체로 옮기라고 촉구한다”며 “이는 심각한 안보 사안”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미 화웨이에 대한 지난 9월 미국 정부의 공급 제재 조치로 화웨이에 메모리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다.

구체화하지는 않았지만, 중국 역시 한국이 명시적으로 미국 중심 체제를 선택한다면 실망감을 표시하거나 보복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 표준은 전통적 안보 분야처럼 한·미 동맹, 북핵 문제가 우선 적용되는 분야는 아니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28일 전화통화에서 “기술 표준과 관련된 미·중 갈등은 명확한 실체가 있다는 점에서 안보 분야의 다른 압박보다 훨씬 직접적”이라고 설명했다.

◆“일시 현상 아냐”… 선택의 시간이 온다

정부는 ‘개별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7월 정례브리핑에서 화웨이 관련 미국의 국내 기업 제재에 대해 “민간 부문 장비 도입은 기업이 결정할 사안”이라면서 명시적 언급을 삼갔다.

하지만 미국 대선이 끝나고 새 정권이 들어선 다음에는 선택을 마냥 미루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중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든 보안과 관련된 데이터 표준 문제에 대해선 중국에 양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너무 빨리 선택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늦지도 않게 질서에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지영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5월 발간한 ‘미·중 기술패권경쟁의 의미’ 보고서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술 분야의) 미·중 패권전쟁은 미국의 정치적인 셈법에 의해 일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패권경쟁은 기술패권에 따른 새로운 질서가 세워질 때까지 길고 더욱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시방편으로 모면하거나, 이른바 ‘줄타기’를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사실상 미국 질서 선택하겠지만… 피해 최소화 과제

전문가들은 보안과 밀접하게 연결된 IT의 특성상 경제와 안보의 분리는 어렵다며 한국의 사실상 선택은 미국 중심의 질서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미국의 클린 네트워크에 대부분의 IT 선진국이 참여하면서 한국이 이들로부터 분리되는 선택을 하기가 어렵다. 대만이 지난 8월 공식적으로 참여를 선언했고, 영국·호주·뉴질랜드·캐나다는 미국과 함께 영어권 5개국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스’를 결성해 화웨이를 제재하고 있어 이 네트워크에 사실상 참여 의사를 밝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클린 네트워크의 출발점인 2019년 프라하 안보회의에 참여한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30여개국도 결국 미국 중심의 질서에 함께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중국은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일대일로 수혜국 등을 1차 대상국으로 데이터 이니셔티브를 발족해 이에 대항하고 있다. 미국 질서보다 참여하는 국가가 적지만, 중국 자체의 시장이 커서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며 앞으로 이 영향력은 점점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세계무역기구(WTO) 분석에 따르면 2000년 당시 미국, 일본과 밀접하게 엮여 있던 한국의 IT 분야 밸류체인은 2017년 이미 중국 쪽으로 상당 부분 이전됐다. 한국이 미국 중심의 질서에 참여하더라도 중국의 보복이나 미·중 기술패권 경쟁에 따른 피해를 어떻게 줄일지가 최대 과제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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