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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산티아고 순례길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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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8 22:00:20 수정 : 2020-09-18 22: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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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서 각자 살아가던 사람들이
신앙이나 영성 또는 건강을 위해
무작정 한 달 이상 걸을 수 있는 길
지구촌 문화의 다양성 체험은 덤

한가위 명절이 보름도 채 남지 않았다. 어느새 가을 한복판으로 다가서는 느낌이 든다. 날씨가 이렇다는 것은 걷기에 딱 좋은 계절이 왔다는 말도 된다. 코로나 시대가 아니었다면, 우리의 옛 선조들이 그랬듯 천천히 걷는 걸음걸이에 흥을 담아 자연을 느끼고 견문을 넓히기 딱 좋은 계절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마도 이맘때 즈음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일명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안타깝게도 이제 ‘걷기의 끝판왕’ 여행은 코로나 시대에서는 더 이상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한때 커다란 유행으로 번지며 너도나도 나를 찾아가는 힐링의 여행이라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과연 언제쯤 다시 가능해질 수 있을까.

황우창 음악평론가

사람들은 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기독교 문화의 꽃으로 이야기하지만, 여행이라는 관점만으로 놓고 보자면 딱히 종교와 관계없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글쓴이가 이 길을 걸었던 때도 찬바람이 서서히 불던 이맘때였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9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낮에도 섭씨 35도를 훨씬 넘어가고, 밤에는 서늘하다 못해 새벽녘 바람이 꽤 추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 각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신앙이나 영성, 또는 건강을 위해 무작정 한 달 이상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걸을 때는 홀로 걷지만, 어느 순간 국적과 인종, 문화와 관습이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곳이 이 순례길이다. 당연히 최우선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끼리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순례길 위에서 살아가는 현지인들을 존중해야 하며, 순례자들끼리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따뜻한 마음씨를 나누는 일은 나중의 일이다. 글쓴이가 그 길을 걷기로 작정한 이유는, 서로 다른 문화와 관습, 언어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 장소의 특정한 길을 걷는 이유가 뭘까 궁금해서였다. 낯선 길에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 서로 친교를 가진다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도 같지만, 존중의 덕목을 지키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통해서는 의외로 꽤 쉬운 일이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신체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약간의 준비만 미리 해 놓고 떠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꽤 유익한 길이다. 예를 들어 서구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는 기독교 문화와 그리스 신화에 관해 약간의 사전 지식을 담고 걷는다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문화 정보를 순례자는 길 위에서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묵묵히 걸어가며 만나는 스페인 산골 작은 마을의 성당이, 크고 작고 간에 마을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동서남북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든지, 오래된 마을일수록 성당보다 더 높은 건물은 없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또한 장례문화 가운데, 성당 옆에는 묘지가 항상 자리를 잡고 있어서 유족들이나 후손들이 언제든 쉽게 찾아가 고인을 기릴 수 있다는 스페인 사람들 또는 유럽 사람들의 문화를 읽는 쏠쏠한 재미도 선사한다. 그리고 결론은 이렇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천 년 넘는 세월 속에서 유럽 기독교 문화의 집대성이라는 사실.

이처럼 오랜 세월을 거치며 문화를 집대성한 담론들은 꽤 많다. 서구 유럽 문화를 기준으로 볼 때 앞서 언급한 기독교 문화가 그렇고, 그리스 신화도 그중 하나이다. 또한 와인의 역사는 식음료의 역사이자 문화의 집대성이기도 하다. 음악으로 한정을 지어 생각해보자면 그 나라의 역사와 관습, 그리고 정서를 읽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그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가 그렇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애국가가 되겠지만, 20세기 신생 공화국들 일부를 제외한다면 세계 여러 나라들의 국가들은 그 나라의 상징처럼 된 민요나 특정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가 대부분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이여 아프리카를 축복하소서’라든지 프랑스의 ‘라 마르세예즈’를 생각해보면 된다. 음의 고저장단은 그들의 정서에 가장 부합하는 길이와 빠르기, 그리고 높낮이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에서 역사를 읽는 일, 각자의 조국에 관한 자부심을 나누며 왁자지껄 떠들고 웃으며 함께 나눌 수 있는 순간.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소중하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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