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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코로나가 들춰낸 공교육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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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9 09:00:00 수정 : 2020-09-18 20: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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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초등학교 5학년인 첫째는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저희끼리 회의실을 열고 친구에게 문자메시지로 아이디와 암호를 보내 초대한다. 학교도 못 가고 외출도 못 해 몇 개월째 못 만난 친구들과 온라인상에서나마 얼굴 보며 수다를 떨고, 함께 숙제도 한다. 아이들 스스로 ‘슬기로운 위드(with) 코로나’를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안쓰럽다.

 

제 컴퓨터도 없고 이메일 계정도 올해 처음 만든 아이가 줌을 놀이터처럼 쓰고, 구글 독스로 숙제까지 하게 된 건 순전히 학원 덕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갑자기 휴업하게 된 학원 중 일부는 폐업했고, 살아남은 학원들은 1∼3주 준비 기간을 거쳐 쌍방향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첫째의 영어학원도 2주 정도 쉬더니 구글클래스와 웨벡스(WEBEX)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고, 뒤이어 수학학원도 줌으로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시험도 봤다. 처음 해보는 쌍방향 수업에 부모도 헤맸지만 한두 번 접속을 도와주니 아이들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온라인 수업체제에 적응했다.

김수미 국제부장

쌍방향 온라인 수업도 명암은 있다. 처음으로 집에서 아이의 수업을 지켜본 부모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고도 한다. 아이가 ‘학원 전기세 내주러 다니는 것은 아닌가’ 했던 의구심을 현실로 마주했다거나, 명성만 듣고 보낸 학원 강사의 실력에 실망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래도 학원의 실시간 온라인 수업으로라도 구멍 난 학습을 메우는데 위안으로 삼는다.

 

사교육 업계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뒷짐 지고 있던 공교육은 밑바닥을 적나라게 드러냈다. 공립 초등학교의 경우 두 달 넘게 주 1∼2회 등교한 것을 제외하고 1학기 내내 원격수업을 했다. 2학기 개학 직전 코로나가 재확산하자 또다시 개학을 미루고 원격수업에 들어갔다. 

 

코로나가 일상을 바꾼 지 8개월이 넘었는데 공립학교들이 여전히 EBS 방송과 유튜브 링크로 수업을 때우겠다고 하니 눌러왔던 학부모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1시간이라도 쌍방향 수업을 해달라’는 청원이 잇따랐다.

 

학교의 일방향 온라인 수업인 e학습터는 사실상 ‘유튜브로 하는 자율학습’이나 다름없어 개인차가 클 수 밖에 없다. 아이들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등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동영상을 틀어놓고 게임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애써 막아놨던 유튜브를 학교수업 때문에 보기 시작하면서 유튜브에 무분별하게 노출될 수 있다는 걱정이 가장 큰 것 같다. 부모가 옆에서 내내 관리해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지난 3월부터 봉쇄령이 내려진 미국에서는 곧바로 쌍방향 수업을 시작했다. 미국 교사들도 충분한 준비 없이 시작된 쌍방향 수업에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여름방학 동안 교사 대상 연수 등을 받으며 2학기부터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은 특히 수업뿐 아니라 주 1∼2회 교사와 아이들의 온라인 1대 1 상담에 만족한다고 전했다. 5∼10분 짧은 시간 동안 일상적인 대화일지라도 아이들에게 관심받고 있다는 위안과 소속감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국내 사립학교들도 3월부터 체육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쌍방향 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사립학교 역시 초반에는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화하는 수업 내용과 철저한 관리에 “비싼 등록금 내고 온라인 수업이 웬 말이냐”던 부모들도 만족감을 표하고 있다.

 

청원의 영향인지 공립학교들도 지난주부터 주 1회 줌 수업을 시작했지만, 30∼40분간 출석체크하고 자기소개하는 수준이다. 이러니 사립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부모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고, 학원마저 못(안) 보낸 경우 교육 격차가 더 벌어질까 봐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이들은 짧게나마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은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안부를 전한 것만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외롭고 답답했을지 안타깝고 씁쓸했다. 

 

사립학교와 사교육업체들이 위드 코로나에 대비해 온라인 교육에 공을 들이는 동안 공교육 선생님은, 학교는, 교육청은, 교육부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세계 최고 인터넷 속도와 보급률을 유튜브 링크 수업에만 쓰기엔 너무 아깝지 않은가.

 

코로나가 한국(부모)의 교육열이 왜 유독 높고, 사교육 시장은 왜 그렇게 발달했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준 것 같아 씁쓸하다. 공교육이 몰락한다면 코로나 때문도, 사교육 과열 때문도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은 공교육 주체들이 자초했다.   

 

김수미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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