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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딸의 아버지, 이웃 3명에 새 삶 선물하고 떠나다 [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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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5 23:00:00 수정 : 2020-11-13 14: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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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하이선’ 때 지붕에서 추락해 ‘뇌사’ 판정
연명치료 싫어한 의사 존중해 장기 기증 결심
장녀 “아빠의 따뜻한 성품도 같이 전해지길…”
장기 기증으로 3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난 고(故) 오성만씨.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누가 받을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따뜻한 성품까지 같이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장기 기증을 통해 3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고 떠난 오성만(67)씨의 큰딸이 아버지를 추모하며 한 말이다. 아버지의 장기뿐만 아니라 성품까지 오래도록 보존되고 또 기억되길 바라는 딸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제10호 태풍 ‘하이선’이 경북 동해안을 강타한 지난 7일 포항에서 목장을 운영하는 오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목장 축사 지붕 위로 올라갔다. 최대 풍속이 초속 40m에 이르는 강풍 때문에 지붕 일부가 파손된 것을 보고 수리하기 위해서였다.

 

바람 세기가 초속 40m가량 되면 성인 남성도 날려보내는 수준이다. 오씨도 그만 강풍을 견디다 못해 지붕에서 추락했다.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차가 오씨를 싣고 바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려 시내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로 옮겨진 오씨를 상대로 의료진이 긴급 수술을 실시하고 이후에도 긴장 속에서 치료를 이어갔으나 머리를 크게 다친 환자는 그만 뇌사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의사 소견을 접한 가족은 큰 슬픔에 빠졌다. 칠순을 앞둔 오씨는 평소 입버릇처럼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를 살리는 기증이 아름다운 마지막 길”이라고 말하곤 했다. 뉴스나 드라마 등에 뇌사 상태 환자의 연명치료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난 저런 것 하기 싫다”고도 했다. 결국 가족은 오씨의 생전 바람을 이뤄드리는 뜻에서 장기 기증을 결심했다.

 

고(故) 오성만씨의 젊은 시절 모습. 트럼펫을 좋아했던 오씨는 목장 운영으로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교회에서 트럼펫을 연주하곤 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지난 11일 오씨는 간장과 좌우 신장을 기증해 3명한테 새 삶을 선사하고 온 가족의 배웅 속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가족은 고인의 뜻을 기리는 차원에서 국가가 지급한 장례지원금마저 어려운 이웃에 기부하기로 했다.

 

오씨는 1951년 포항시 남구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슬하에 세 딸을 뒀다. 목사인 아버지를 도와 7개의 교회를 직접 지을 만큼 건축에 관심이 많았지만 정작 자신의 길은 목회나 건축이 아닌 축산업에서 찾았다. 40년 이상 젖소를 키우는 목장을 운영하며 틈틈이 교회에서 트럼펫도 연주했다. 가족은 “항상 본인보다 남을 위해 베푸는 삶을 사신 분”이라며 “활동적이고 감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회상한다.

 

가족에게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였고 주변 지인들에게는 누구나 인정하는 희생과 헌신의 상징 같은 존재였다. 젊은 시절 목장과 농사일을 병행하기 위해 날마다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고된 노동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좀 더 고생해서 딸들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고 키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고 빙그레 웃었다.

 

고인의 큰딸은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항상 희생하신 모습이 고맙고, 인생의 본보기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마지막 삶까지 타인을 위해 희생한 멋진 아빠로 기억할게요. 저희도 자식으로서 아빠와 닮아가는 그런 삶을 살겠습니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조원현 원장은 “숭고한 생명 나눔을 실천해주신 기증자와 기증자 가족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많은 국민이 힘들어하고 있는 이때 아름다운 나눔 이야기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준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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