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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이책만은꼭] 고기가 아니라 인간다운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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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9-14 22:40:38 수정 : 2020-09-14 22: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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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시설에서 물건처럼 취급받는 현실
돌봄은 편의보다 삶의 질 우선 고려해야

요양병원 현장을 다룬 한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을 봤다. 처참하고 끔찍했다. 서비스 요금을 지불한 노예수용소 같았다. 나이 들고 병들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삶이 순탄치 않을 것임은 짐작했다. 하지만 정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솜뭉치 몇 개가 들어갈 정도의 욕창을 보니, 돌봄을 받는 요양이 아니라 무도한 가혹행위로 보일 정도였다.

더욱이 병원은 항정신병약을 평균 환자 1인당 하루 한 알 이상 투약했다. 이 약들은 환자를 하루 종일 졸게 만들고, 인간 정신의 자율성을 파괴하는 작용을 한다. 돌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돌보지 않으려고 약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여긴엔 요양도 없고 치료도 없었다. 숨 쉬는 고기에 대한 처리만 있을 뿐이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에서 아툴 가완디는 “아름다운 죽음은 없으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고 말한다. 죽음은 평등하다. 돈이 있든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인간은 무조건 죽는다. 노인들이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보다 죽음의 과정이다. 자기 삶을 직접 통제하지 못하고 타인한테 맡기는 데 따른 상실감과 무력감이다.

노인은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려고 떠밀리듯 요양원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남이 정한 규칙에 따라 집단생활을 하면 인간은 우울해진다. 누군가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시키면 씻고, 먹으라 하면 먹고, 더욱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는데 즐거울 수는 없다. 감옥에 갇힌 기분일 게 틀림없다.

모두 이 엄연함을 알기에 오늘날 우리 마음에는 인생 마지막을 둘러싼 질문이 메아리치는 중이다. 요양시설에 수용돼 물건처럼 취급될 것인가, 아니면 인생 마지막 날까지 존엄과 독립을 유지하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 삶의 형식을 택할 때 우리가 지킬 원칙이 있다고 말한다. 돌봄은 친인의 편의보다 당사자의 삶의 질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명이라는 생리적 욕구만 해결하는 요양원 등의 기계적·통제적·집단적 서비스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 인간 존엄을 유지하려면 돌봄 받는 사람의 사생활을 보장하고 일상의 마디마다 선택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체이스메모리얼 요양원은 반려 동식물 기르기를 허용하고 어린아이와 만남을 제공했다. 항정신성약의 처방이 62% 줄어들고 사망률도 15% 감소했다.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안전보다 인간다운 활력이 치유에 더 도움이 된다.

자율성을 잃으면 행복도 사라진다. 저자는 노인에게 자기 집과 비슷한 독립생활을 보장하면서 돌봄도 제공하는 ‘어시스디트 리빙’과 좋은 삶을 살면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호스피스센터’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환자가 정말 바라는 것은 자기 인생 이야기를 의미 있게 마무리할 시간이다. 연명장치에 연결된 채 화학물질에 취한 좀비 상태로 마지막을 보내려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고통을 줄이고 불편을 덜어주는 완화 치료를 제공하면서 끝까지 자기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인간적이다. 미국의 한 보험사 실례를 보면, 연명치료보다 호스피스 쪽이 환자도 오래 살고 가족들 우울증도 줄어들었다. 전체 의료비용도 감소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좋은 죽음’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고기로 숨 쉬는 하루가 아니라 나로서 살아가는 하루를 보장하는 것,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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