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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몸살 앓는 지구촌, 문화예술 ‘치유의 힘’으로 극복 기원”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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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8-25 19:25:52 수정 : 2020-08-25 19: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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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지금은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어려워요.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 금방 해결될 일을 이메일이나 전화로 대체하다 보니 자꾸 오해가 생기는 겁니다. 세계 곳곳의 작가들도, 저희 감독들도 서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탓에 발이 묶여서 가지도 오지도 못하니…. 특히 설치작품 등은 작가와의 사전 교감이나 소통이 매우 중요하거든요. 만나서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면 쉽게 진행될 일들이 지금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고 있어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저 묵묵히 해내며 이 또한 이겨내야죠.”

코로나19로 수많은 국제행사들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광주비엔날레를 이끄는 김선정 대표이사 역시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는 특유의 인내와 끈기로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매듭을 하나씩 풀어나가고 있다. 그야말로 ‘소리없이 강한’ 스타일. 햇볕이 쨍쨍하더니 소나기를 퍼붓던 지난 금요일(21일) 서울 인사동 광주비엔날레 서울사무국에서 아이스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원래 9월 개최 예정이던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코로나19 때문에 내년 2월로 늦춰졌다고 들었다. 준비에 차질은 없는가.

“역병이 전 세계로 확산한 상황에서, 대규모 국제 미술 행사인 광주비엔날레의 세계적 위상과 수준 높은 전시를 고려해 불가피하게 연기했다. 모든 일정에 대한 로드맵을 재수립하고 지난 26년 동안 축적된 광주비엔날레만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시를 마련 중이다. 독일 베를린과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각각 활동 중인 데프네 아야스, 나타샤 진발라 두 예술감독이 지속적인 화상회의를 통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행사 연기로 예기치 못한 일들도 생겨날 텐데.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새로운 작품들을 많이 제작하려 하는데, 코로나19가 가로막아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러 들어오질 못하고 있다. 한 여성 작가는 제주해녀들의 숨비 소리를 모아서 작업할 예정이지만 임신이 변수로 작용할 듯싶다. 각종 퍼포먼스와 라이브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기획되어 있다. 만약 작가들이 개막식 때까지도 못 오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도 논의 중이다. 반드시 현장에 와서 감상해야만 하는 작품들도 많아서 이를 영상으로 접하는 관객에겐 어떻게 느낌을 전할지, 현장과의 감정 격차(갭)를 줄이는 방법도 고민한다.”

―코로나19가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가.

“코로나 이전은 가속화 시기였던 것 같다. 그저 마구 달리다 보니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쳇바퀴처럼 돌던 것들이 멈췄다. 이제야 좀 자신에 대한, 작품에 대한, 전시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생긴 것 같다. 한편으론, 코로나19가 오히려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다 준 셈이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한 달에 두세 번씩 해외 심사를 위해 비행기에서만 이틀을 쓰고 있을 텐데, 그런 시간이 사라졌다. 작가들 가운데 ‘고립’되어서 작품에 몰두하기가 더 낫다는 이도 있다. 어찌 생각하면 정말 귀한 시간이라는 생각도 든다. 국내 작은 전시장이나 갤러리가 주목받게 된 것도 의미가 크다. 국공립미술관보다 거리두기 관람도 유리하고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어 더 잘되는 것 같다. 작은 화랑에도 좋은 컬렉션이 많은데, 전엔 그런 곳에 갈 여유가 없었다. 지금은 소규모 화랑과 젊은 작가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코로나19의 힘든 시기를 오히려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자체가 꽤나 비대해졌지 않은가. 쓸데없는 것들을 줄이고 슬림하게, 자신을 돌아볼 때인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도 그런 시기라 생각한다. 5·18도 중요한 창립 요소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알리기는 했지만, 정작 우리 안에서 광주비엔날레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 작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그들을 돌보고, 아카이브도 다시 정리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안을 살피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2년마다 개최하다 보니 너무 급하게 지속해오면서 우리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 같아, 한 축으로는 그런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탓에 국제행사를 치르기가 무척 힘든 상황”이라면서도 “이를 반전의 기회로 삼아 스스로 광주비엔날레를 돌아보고, 글로벌과 로컬을 함께 챙기면서 우리 내부의 인식차, 우리 세대 간의 갭 등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말한다. 이재문 기자

―로컬에도 집중한다는 것은 반길 일이다. 우리 스스로 한국미술을 알아주지 않아 개탄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이런 우려에 부응하는 계기도 되겠다.

“그간 글로벌만 너무 중시했는데 로컬에도 무게중심을 둘 호기라 생각한다. 2018년 비엔날레 때 시작된 프로젝트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들이 광주를 방문해 지역성을 바탕으로 신작을 만들어내는 ‘GB커미션’이다. 외국 작가와 지역이 연계된다는 점이 의미 깊다. 내년 비엔날레에서는 GB커미션 코너를 통해 레바논 작가 타레크 아투이가 음악을 전공하며 습득한 영감과 지식을 바탕으로 실험적 악기와 퍼포먼스가 포함된 신작을 선보인다. 광주·호남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장인들과 협업을 하는데 도예가, 삼베 장인, 농악과 판소리 등 전통 음악인, 악기 장인 등이다. 수제종이를 만드는 전주 한지원도 함께한다. 그간 현지 관객보다 외국인의 시선에 대해 더 많은 배려를 해온 게 사실이다. 이제 본래 관객도 챙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해외 눈치만 보는 세태에서 벗어나 우리 내부의 인식차, 우리 세대 간의 갭, 잊혀진 과거 등을 다시 점검하고 정리·발굴할 때인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의 역사와 의미를 정리한다면.

“광주비엔날레는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상처를 지닌 광주의 민주·인권·평화 정신을 문화예술로 승화하기 위해 1995년 첫발을 내디뎠다. 동시대 시각예술 플랫폼으로서 현대미술의 담론을 생산하고, 광주정신을 지구촌 공동체에 널리 전파하고 있다. 첫해 163만명이 다녀가면서 현대미술의 씨앗을 틔운 뒤 시각문화 현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오면서 어느덧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자리매김했다. 독일의 ‘카셀도큐멘타’는 나치정권하에 자행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반성과 자각에서 출발했다. 이처럼 예술은 사람과 도시를 치유하고 역사를 반추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요셉 보이스가 2차 대전 당시 파괴된 카셀을 회복하고자 1982년 카셀도큐멘타에서 떡갈나무 7000그루 심기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실천한 사례 또한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강력한 치유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다. 광주비엔날레 또한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이주, 난민, 분단, 빈부 격차 등의 다양한 사회 이슈를 시각예술로 환기시키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지구촌이 힘들고 어렵다. 문화예술이 지닌 치유의 힘을 빌려 모두가 연대해 극복하길 바란다.”

―서울, 대만, 독일, 아르헨티나에서 동시 개최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 ‘메이투데이(MaytoDay)’ 전시 상황은 어떤가.

“메이투데이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을 받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4, 5월 서울과 쾰른, 타이베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됐을 것이다. 황첸훙이 기획한 타이베이 전시 ‘오월 공―감: 민주중적중류’는 예정대로 지난 5월 1일 개막했다. 우테 메타 바우어가 기획한 ‘민주주의의 봄’은 서울에서 6월에 열려 호평을 받았다. 7월 9일 오픈한 최빛나 큐레이터의 ‘광주시간’은 쾰른에서 9월 29일까지 열리게 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려던 ‘미래의 신화’ 전은 코로나19로 결국 내년으로 연기됐다. 해외 전시 3개, 서울까지 4개 전시회를 광주비엔날레에서 마련한 것이다. 오는 9월 25일 4개국 전시의 서사를 모아 광주에서 다시 하나의 전시로 재편해 공개할 것이다. 이 전시가 내년 베니스건축비엔날레에서 특별전 형태로 열린다. 그때는 코로나19 상황이 나아지길 바란다.”

―‘메이투데이’의 하이라이트이자 마무리라 할 수 있는 광주 전시는.

“9월 25일부터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 5관과 민주평화교류원 옛 도청본관회의실, 옛 국군광주병원 등에서 펼쳐질 계획이다. 5·18 때 사람들을 치료해주던 곳이었지만 이후 30년 동안 방치되어온 옛 국군광주병원에서는 직접 방문해 둘러보고 영감을 받은 해외작가들이 작업을 벌이는 중이다. 2018년 광주를 찾은 바 있는 마이크 넬슨, 카데르 아티아의 작품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영상, 설치작업을 추가로 공개할 것이다.”

―치유와 회복을 말하는 광주비엔날레와 코로나19 상황이 겹쳐 내년 비엔날레의 주제가 더 부각될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치유와 극복에 대한 내용이 많아 관객들이 더 크게 공감할 듯싶다. 예년엔 비엔날레 전시장 밖에서 표를 사서 1관부터 둘러보는 방식이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제일 큰 전시장인 1관 자체를 무료 개방할 예정이다.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는 2021년 2월26일부터 5월9일까지 73일간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이란 주제를 내걸고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양림산에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광주극장 등에서 열린다.

 

대담=김신성 문화체육부장

 

정리=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김선정 대표는 ●1965년 서울 출생(55) ●서울예고 ●이화여대 서양화과 ●미국 크랜브룩 아카데미 석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 교수 ●제51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제6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 비엔날레 전시 총감독 ●제9회 광주비엔날레 공동감독 ●카셀도큐멘타 큐레토리얼팀 에이전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예술감독 ●아트선재센터 관장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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