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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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지산(屯芝山). 서울 남산의 지맥이 한강으로 흘러내리는 곳에 있는 작은 구릉이다. 높이 65m. 동빙고와 서빙고는 그 아래에 있다. 장빙군(藏氷裙). 그들은 한겨울 한강에서 채취한 얼음을 두 얼음창고에 보관하고 관리했다. 그들에게 ‘치마 군(裙)’ 자를 붙인 것은 늘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빙고의 얼음은 어디에 썼을까. 동빙고의 얼음은 나라의 제사용으로, 서빙고의 얼음은 궁궐과 관리들의 여름나기에 쓰였다. 반빙(頒氷). 임금이 백관에게 얼음을 나눠주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얼음은 권력자만 먹었을까. 아니다. 병자와 죄수에게도 나눠줬다.

세종실록 1434년(세종 16년) 6월11일. 예조에서 글을 올린다. “동·서 활인원에서 열병을 앓는 이들이 한더위를 당하였사오니, 얼음을 내려주옵소서.” 세종은 즉시 시행할 것을 명한다. 서빙고의 장빙군들은 얼음을 활인원으로 실어 날랐다. 얼음 한 덩이에도 백성을 생각하는 뜻이 담겨 있다.

47년 만에 가장 긴 장마가 끝나자 무더위가 찾아들었다. 햇살이 따갑다. 입추가 지난 뒤 시작된 늦더위다. 긴 장마에 벼 알곡이 제대로 여물지 노심초사했을 농심. 반가운 햇살이요, 더위다. ‘이제 더우면 얼마나 더울까.’ 혹 그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가마 더위는 방방곡곡을 데운다. 대구·포항 섭씨 38도, 강릉 36도, 대전·전주 35도, 서울 34도…. 아스팔트 거리에 서면 수은주는 50도를 넘나든다. ‘늦더위가 더 무섭다’는 말도 있다.

열대야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한밤중에도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곳이 수두룩하다. 이런 때면 어김없이 해변 모래사장과 강변 둔치에 돗자리를 편 사람들이 즐비했다. 올해는 다르다. 코로나19가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공포가 번진다. 피난처가 되어버린 집들은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기조차 한다.

마음을 시원하게 뻥 뚫어줄 일은 없을까. 신문을 펴고, TV를 켜면 짜증 나는 뉴스만 요란하다. 사라진 책임 정치, 실정(失政)과 사실을 은폐하는 잔꾀 정치….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떨어진다. 백성에게 얼음 한 덩이를 나눠주는 마음은 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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