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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한국사의 ‘화려한 흔적’… 국보·보물 多 모였다

입력 : 2020-07-27 23:00:00 수정 : 2020-07-27 2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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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물 납시었네…’ 공동 특별전
2017∼2019년 지정 157건 중 83건 한자리
국보, 보물은 한국사의 가장 찬란한 흔적이며 문화재 정책의 핵심이자 정점이다. 치열한 기록정신의 산물인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

국보, 보물은 한국사 5000년 세월을 증언하는 가장 의미있고 화려한 흔적이다. 등급을 매긴다는 것 자체가 어렵고 체계에서 벗어난 문화재가 적지 않지만 각각의 가치에 차이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예술성, 학술성, 역사성이 막대한 문화재가 국보, 보물의 영예를 안으며 가장 엄격한 관리와 융숭한 대접의 대상이 된다.

문화재청, 국립중앙박물관 공동기획의 ‘새 보물 납시었네-新(신)국보보물전 2017~2019’은 국보, 보물의 의미를 되새기고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전시회다. 문화재의 정점인 국보, 보물에 어떤 유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해지고, 그것을 관리하는 소장가, 소장처의 역할과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는 것도 각별한 경험이 될 듯하다. 2017∼2019년 3년간 지정된 국보와 보물 157건 중 83건 196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역사의 시작, 기록유산

전시회의 1부는 기록유산으로 채웠다. 한국 고대사를 정리한 삼국사기(국보 322-1호)와 삼국유사(〃 306-3호)에서 시작한다. 이어지는 전시품은 유네스코가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면서도 포괄적인 역사기록물로서 독창적이고 대체불가능하다”고 평가한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판본이다. 조선 최초의 공신교서인 ‘이제 개국공신교서’(〃 324호), 통일신라기 문인들과 관련된 시를 선별해 조선초에 간행한 ‘협주명현십초시’(보물 1926호) 등도 관람객과 만난다.

기록유산은 한국사의 시작이다. 5000년의 세월을 구체적이고 풍부하게 담은 한국사의 씨줄과 날줄이기 때문이다. 특히 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왕조 내내 작성되면서도 역사 서술의 핵심인 객관성,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긴장감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놀랍다. 잘 알려져 있듯 실록의 편찬은 해당 시대의 임금이 죽은 후 임시관청을 설립해 조직적으로 진행됐고, 편찬 이후에는 임금조차도 보지 못하도록 했다. 기록의 대상인 권력자의 간섭을 원천적으로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실록이 겪은 파란만장한 사건 자체도 하나의 역사다. 국보 제151-3호인 오대산사고본이 대표적인 사례다. 오대산사고본이 일본으로 반출된 것은 1914년. 조선총독부가 도쿄제국대학에 기증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사실상의 불법반출이었다. 일본에서 1923년 9월 간토대지진을 만나 대부분 소실돼 74권만 전하다 2006년 도쿄대가 서울대에 ‘기증’(?)하면서 근 100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두 대학의 학술교류를 명분삼았으나 당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유출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환수운동이 본격화되자 도쿄대가 부랴부랴 돌려준 것이었다.

신윤복의 걸작인 ‘미인도’

◆‘위대한 컬렉터’ 간송이 안겨준 안복(眼福)

예술성의 기준에서 보면 2부 전시품들이 독보적이다. 정선, 김홍도, 신윤복, 심사정, 김정희 등 조선 최고 예술가들의 작품이 많다. 여기에 모인 전시품의 상당수가 간송미술관 소장품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2007∼2009년 간송미술관의 22점이 보물로 지정됐다.

사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폐쇄적이라고 할 만큼 소장품의 지정이나 전시에 소극적이었다. 한 전문가는 “몇년 전만 해도 ‘감히 누가 간송컬렉션을 평가하나’는 식의 태도였다”며 “좋게 말하면 자부심이고, 나쁘게 보면 배타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최근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간송미술관의 불상 두 점이 경매에 나온 것이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진 배경에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러나 운영 사정이 어려워지고, 미술관을 이끄는 인물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지정문화재가 되면 국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보존, 관리가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또 문화재의 전시, 활용이 이전보다 강조되는 흐름에 부응할 수 있다. 보화각을 벗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전시회를 열고, 1997년 이후 지정되는 소장품이 없다가 2016년에 문화재청과 업무협약을 맺어 37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뒤 22점을 보물로 지정한 것이 변화의 뚜렷한 사례다. 문화재청 박희웅 과장은 “지정을 통해 소장품의 공공성이 높아지면 전시회 개최, 외부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공개에 적극적이게 된다”며 “간송미술관이 이번에 지정된 소장품으로 자체 기획전을 준비했는데 특별전을 위해 양보를 했다”고 전했다.

간송미술관의 적극적인 참여로 관람객들의 안복이 커졌다. 심상정의 가로 8m의 대작 ‘촉잔도권’(보물 1986호)을 비슷한 크기의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202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와 나란히 볼 수 있는 건 특별한 경험이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 1970호)는 “자연과 교감하는 섬세한 감수성을 표현한 걸작”이다. ‘미인도’(〃 1973호)는 “신윤복이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조선시대 여인 초상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의 ‘난맹첩’(〃 1983호)은 조선시대 문인들이 추구했던 학문과 예술이 일치된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간송미술관의 서화류는 환경변화에 민감한 특성 때문에 3주 단위로 교체전시되므로,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세부 전시일정을 확인한 뒤 관람일을 정하는 게 좋다.

백제 공예의 성취를 보여주는 미륵사지 사리장엄구. 문화재청·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압도적 존재감, 불교문화재

고대국가의 공인 후 불교는 1000년 동안 한국인의 정신과 생활, 제도 등을 결정적으로 규정한 종교이자 사상이며 도덕이었다. 이런 영향력이 물질문화로 표현되었고, 현전하는 문화재의 상당수가 불교와 관련된 것임은 당연한 일이다. 국보, 보물을 포함해 국가가 정한 4906건(2019년 기준)의 지정·등록문화재 중 불교문화재는 1548건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2017∼2019년 국보, 보물로 지정된 157건 중에는 절반에 가까운 45%를 차지한다.

‘염원을 담다’를 주제로 한 전시회의 3부는 불교문화재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건 21세기 발굴의 가장 뚜렷한 성과로 언급되는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보물 1991호)이다. 백제 불교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일급자료임은 물론 문헌의 내용과 상반되는 글이 새겨져 있다.

2009년 출토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미륵사가 백제 귀족 사택적덕의 딸인 왕비가 주도해 미륵사를 세웠다는 내용을 전한다. ‘서동요’ 설화의 주인공인 신라 출신 선화공주와 관련된 삼국유사의 미륵사 창건설화와는 다르다. 박물관 허형욱 학예연구관은 “문헌 기록과 실물 간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던져주었다”며 “백제 말기 금속공예의 뛰어난 기술과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소개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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