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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사랑의 비극… ‘드라마발레’ 관객 사로잡다

입력 : 2020-07-27 02:00:00 수정 : 2020-07-28 14: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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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의 ‘오네긴’ 막 내려
오만한 청년과 순수한 여인 사랑 이야기
30명 등장 2막 파티 장면 내공 잘 보여줘

2막 마지막 ‘비극적 결투’ 발레 매력 정점
코로나19 이후 발레 전막 공연 큰 의미
엇갈린 사랑의 격정과 회한을 담은 드라마발레 ‘오네긴’.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과 이동탁이 각각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 속 순수한 영혼의 아가씨 타티아나와 오만한 귀족청년 오네긴을 맡아 연극 무대 같은 연기를 무용과 함께 펼쳐보이고 있다.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여인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았던 남자가 오랜 시간 후에는 사랑을 갈구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은 여인은 단호하게 그가 바친 연서를 찢어버린다. 그리곤 오른팔을 힘차게 뻗어 검지로 문을 가리킨다. 그러나 남자가 떠난 후 여인은 끝내 이뤄지지 못한 사랑의 회한(悔恨)에 결국 무너진다. 3막에 걸친 드라마 끝에 정적이 찾아온 객석에는 이내 무대에서 넘어온 격정이 흘러넘친다.

유니버설발레단은 ‘오네긴’으로 지난 18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충무아트센터에서 드라마발레의 정수를 보여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그 어느 예술보다 혹독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무용계가 아직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뜨거운 무대였다.

오만한 청년 귀족 ‘오네긴’과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인 ‘오네긴’은 천재 안무가 존 크랑코의 대표작. 러시아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 삼아 작곡가 쿠르트-하인트 슈톨제가 차이콥스키의 여러 작품을 편곡해 만든 음악을 배경으로 탄생했다.

이 작품은 안무가의 유지(遺旨)를 지키는 존 크랑코 재단의 캐스팅 참여 및 연출 등 까다로운 기준을 충족시키는 발레단만이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까다로운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1965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세계 초연 후 2001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영국 로열발레단, 2009년 파리오페라발레단 등 정상급 발레단이 속속 자신들의 레퍼토리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선 2009년 유니버설발레단이 아시아에선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무대에 올렸다. 마지막 공연 후 3년 만인 이번 무대에서 유니버설발레단은 35년 역사를 쌓아온 자신들의 역량과 내공을 남김없이 보여줬다.

남녀 주인공 만남과 비극의 씨앗이 뿌려지는 1막에서 가장 돋보이는 장면은 역시 거울 파드되(2인무)였다. ‘거울 속에서 자신의 미래 연인을 만난다’는 환상에 빠진 타티아나가 꿈속 오네긴과 춤을 추며 혼자만의 사랑을 키우는 장면이다. 24일 공연에선 강미선 수석무용수가 오네긴을 맡은 이동탁 수석무용수와 완벽에 가까운 호흡으로 절정의 기량을 선보였다.

국내 초연 때부터 빠짐없이 ‘오네긴’ 여주인공을 맡아온 강미선의 타티아나 연기는 이번이 다섯 번째. 그래서 다른 클래식발레와 달리 드라마발레로서 여러 등장인물 간 복잡한 감정 흐름이 교차해 자칫 혼란스러울 수 있는 ‘오네긴’ 무대 위에서 강미선은 한순간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극을 이끌어갔다. 특히 거울 파드되에서 강미선이 원숙한 기교로 발끝에서 만들어낸 곡선의 아름다움은 인상적이었다.

모두 30명이 등장하는 2막 파티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내공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타티아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하객들이 다양한 춤을 선보이는 가운데 엇갈린 사랑이 시작되고 무모한 장난과 오해가 명예와 목숨을 건 결투로 이어진다. 오네긴과 타티아나, 타티아나 여동생인 올가와 그녀의 약혼자이자 오네긴 친구인 렌스키, 그리고 훗날 타티아나와 결혼하는 그레민 공작이 무도회장 곳곳에서 놓치면 안 되는 드라마를 만들어간다. 마치 실제 무도회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2막 마지막 비극적인 결투 장면과 엇갈린 사랑의 회한이 격정적으로 펼쳐지는 3막에선 드라마 발레로서 ‘오네긴’이 가진 매력이 정점에 달한다. 왕자나 공주도, 마법사나 백조도 없는 ‘오네긴’은 귀족이라지만 결국 어긋난 사랑에 어쩔 도리 없는 보통 사람들 이야기다. 옛사랑 앞에 무릎 꿇는 주인공 오네긴을 맡은 이동탁의 입체적 연기와 상대역이 믿고 춤을 펼칠 수 있는 그의 든든함이 돋보였다.

단언하기 어렵지만 주요국 공연장이 거의 모두 폐쇄된 상황인 만큼 ‘오네긴’은 유니버설발레단만이 아니라 세계 무용계에서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개막한 발레 전막 공연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은 매 공연 때마다 막 오르기 직전 무대에서 ‘오네긴’의 드라마 발레로서 특징 등을 설명하며 객석과 거리를 좁혔다. 발레단장이 공연장을 내내 지키며 관객 누구와도 반갑게 인사하고 사진 촬영에 기꺼이 응해주는 모습 역시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풍경으로 굳어지고 있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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