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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20세기 두 지성의 ‘격렬한 논쟁’

입력 : 2020-07-19 20:17:34 수정 : 2020-07-19 20: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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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연극 ‘라스트 세션’
무신론의 기반 다진 프로이트와 유신론자인 루이스의 ‘가상 만남’
‘대원로’ 신구·‘첫 연극’ 이상윤 호흡… 남명렬·이석준과 번갈아 배역 맡아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 답을 구하다 보면 더 큰 난제 앞에 선다. 신은 존재하는가. 누구는 무심할 수도 있지만 지성사회의 영원한 논쟁거리다. 지금은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가 무신론 최전선에 서 있지만 20세기 초 인간을 신으로부터 해방하는 데 앞장서며 무신론 기반을 다진 건 정신세계의 위대한 탐색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그는 종교와 신앙을 일종의 정신적 강박증세로 여겼다. “신이란 단지 사람들이 만든 개념이다. 하나님은 폭군적인 아버지를 투영한 것에 불과하다”는 프로이트 주장은 그의 정신분석 이론과 함께 서구 지성계를 뒤흔들었다.

연극 ‘라스트 세션’은 왜 신의 존재를 부정했는지 죽음을 앞둔 말년의 프로이트를 무대에 직접 소환한 작품이다. 프로이트 맞은편에는 영국 옥스퍼드대학 영문학교수 C S 루이스가 등장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을 투영한 ‘나니아연대기’로 유명한 루이스는 애초 프로이트 주장을 근거로 무신론을 펼쳤던 지성이었으나 성경에서 신을 발견한 후 프로이트 주장을 공박하는 대표적 유신론자가 됐다.

프로이트와 루이스, 단 두 명이 등장하는 이 연극은 유대인을 공격하는 나치를 피해 오스트리아에서 망명한 프로이트의 런던 서재에서 시작한다. 지독한 말기 구강암에 고통받는 프로이트 앞에 얼마 전 그를 비판하는 책을 쓴 루이스가 들어선다. 나이 차가 40년에 달하는 두 지성이 실제 만났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같은 시대 런던에서 각각 무신론과 유신론을 펼쳤던 두 지성이 실제 만났다면 벌였을 법한 신과 인생, 그리고 성(性)에 대한 논쟁이 펼쳐진다. “마치 펜싱 경기를 보는 것 같다”는 찬사를 들었다는 연극 속 프로이트 대 루이스 공방전은 이런 식이다.

“쾌락은 하나님의 속삭임처럼 들리지만 고통은 확성기처럼 들리는 거죠.(루이스)” “그러면 내 구강암은 하나님의 목소리겠구먼. 오늘 내가 ‘믿습니다’하고 외치면 내 암세포는 아주 기뻐하면서 다 사라지겠구먼. 할렐루야!(프로이트)”

“진정한 행복은 순간의 쾌락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통해서만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닫게 하고 싶으신 거죠.(루이스)” “그 오만함이란. 인간이 고작 사과 한 알 먹었다고 신이 격분해? 그래 놓고 또 자기 아들을 보내 잔혹하게 죽여서 인간을 구원한다고?(프로이트)”

20세기 무신론의 시금석을 놓은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무신론에서 신앙을 갖게 된 영문학자 C S 루이스가 벌인 가상의 논쟁을 무대에 올린 연극 ‘라스트 세션’. 프로이트 역을 맡은 국민배우 신구가 루이스 역으로 연극무대에 본격 데뷔한 배우 이상윤과 신과 인생, 사랑 등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파크컴퍼니 제공

‘전쟁’과 ‘죽음’은 이 연극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루이스가 프로이트 서재에 들어선 날은 1939년 9월 3일. 이틀 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심하고 영화 ‘킹스 스피치’로 유명한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라디오로 대국민 연설을 한 선전포고일이다. 프로이트의 서재 역시 전쟁의 공포로 가득 찬다. 시간 약속에 엄격했던 프로이트와의 약속에 루이스는 전쟁 피란 행렬 때문에 지각한다. 둘은 대화 중에 공습 사이렌에 놀라 허둥지둥 방독면을 쓰고 책상 아래로 죽음을 피해 숨는다. 참전군인이었던 루이스는 옛 전쟁터 참혹한 기억에서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이트가 켠 라디오에선 조지 6세가 무수히 많은 죽음을 예감하며 신의 가호를 비는 것으로 연설이 마무리된다. 구강암으로 수십년 고통받다 죽음이 임박한 프로이트는 존엄사를 택할 뜻을 밝힌다. 이처럼 ‘전쟁’과 ‘죽음’이라는 누구나 절대자를 갈구할 수밖에 없는 극한상황은 끝내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 프로이트의 의지를 부각시킨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하버드대 정신과교수였던 아맨드 M 니콜라이의 교양서 ‘루이스 대 프로이트’가 원작인 셈이다. 니콜라이는 미국 주요 의대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정신의학 교과서를 집필한 정신과 교육의 한 획을 그은 인물. 그는 무려 25년간 하버드 대학생에게 명강의로 손꼽힌 자신의 프로이트 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정반대 입장에 선 두 사상가가 남긴 수천통의 편지와 저술 등을 철저히 활용해 마치 프로이트가 논증을 펼치면 루이스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형식으로 둘이 함께 강단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이 책을 다시 역사적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데 탁월한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희곡으로 만들어 2009년 초연한 작품이 ‘라스트 세션’이다.

국내 초연에서 프로이트 역은 신구와 남명렬, 루이스 역은 이석준과 이상윤이 돌아가며 맡는다. 지난 16일 낮 공연에선 이번 작품을 위해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 7㎏을 감량한 신구 연기에 이제 막 TV극장에서 연극 무대로 진출한 이상윤이 호흡 맞췄다. 휴식 없이 90분 동안 마치 격렬한 펜싱을 하듯 논쟁을 이끌어가야 하는 어려운 배역을 맡아 투혼을 보여준 대원로배우에게 객석은 갈채를 보냈다. 다만 그가 그려낸 말년의 정신분석 창시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은 선연했으나 사유의 세계는 충분히 와 닿지 못했다. 서울 대학로에서 9월 13일까지.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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