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15일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진상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 은폐 의혹이 제기된 서울시가 주도하는 만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서울시는 이날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비서에 대해서도 ‘피해자’대신 ‘피해호소 직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박 시장 지지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여성단체, 인권전문가, 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형태로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진상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피해자의 도움 요청이 내부에서 묵살된 의혹이나 박 시장에게 고소 사실이 보고된 정황 등 질문들에 대해 “민관합동조사단이 판단할 것”이라고 언급을 아꼈다.
시는 기자회견 과정에서 박 시장을 고소한 직원을 ‘피해 호소 여성’이라고 지칭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해당 직원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점에서 박 시장의 혐의가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뜻이 내포돼 박 시장의 지지층 입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이라는 것이다.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이에 대해 “내부에 공식적으로 접수가 되고 (조사 등이) 진행되는 시점에 ‘피해자’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명했다. 해당 직원이 아직 내부에 피해를 접수하지 않아 ‘피해 호소 여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설명이다.
서울시가 외부 전문가와 함께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시 소속 부서와 함께 조사가 이뤄지는 이상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서울시장 권한대행도 박 시장의 비서실장 경력이 있는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맡고 있다. 황 대변인은 이같은 우려에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조사단을 운영하는 만큼 그분들 판단에 의해 조사할 것”이라고 답 했지만 뚜렷한 대안은 아니었다.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서울시가 (민관조사단을 통해) 진상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지만 서울시는 이미 여러 차례 피해자의 호소를 묵살하며 직간접적으로 가해를 준 정황이 드러났다”며 “서울시 자체 진상조사를 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공무상 기밀 누설에 관해서도 서울시청에서 누군가 연락을 받은 정황이 있기 때문에 서울시가 진상조사의 주체가 되면 안 된다”며 “이미 사건 묵인과 은폐 의혹을 받는 상황에서 서울시에 진상조사를 맡기면 자신들의 책임을 부정하는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수사기관과 달리 서울시 차원의 민관조사단에게는 ‘강제조사’ 권한이 없어 진상조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성추행 은폐 의혹이나 박 시장의 고소사실 전달 정황 등 파악을 위해서는 통신이나 휴대폰 기록 등 증거가 확보돼야 하지만 이는 민관조사단 권한 밖의 사안이라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도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서울시 민관조사단의 진상조사에 공을 돌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피해자 입장에서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당으로서는 고인의 부재로 인해 현실적으로 진상조사가 어렵다”며 “서울시가 사건 경위를 철저히 밝혀주길 간곡히 부탁한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도 이날 “서울시가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발표했다”며 “차분히 조사결과를 지켜볼 때”라고 관련 답변을 아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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