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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가속→급제동 ‘극과극 최저임금 인상률’… 혼란만 키웠다

입력 : 2020-07-15 06:00:00 수정 : 2020-07-15 09: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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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저 ‘1%대 인상률’… 2021년 최저임금 8720원
“코로나 위기속 일자리 유지 중요”… 최대 408만명 영향
文 정부 4년 평균 인상률 7.7%, 박근혜 정부 7.4%와 수준 비슷
최대 408만명에 적용 2021년도 최저임금 시급이 올해보다 130원 오른 8720원으로 결정된 가운데 14일 서울시내의 한 편의점에서 직원이 진열된 상품을 정리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최저임금 인상률만 보면 역대 최저다. 다만 최저임금 규모가 커졌다. 예전에는 야구공이었는데 지금은 농구공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정부 측 공익위원 중 간사를 맡은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역대 최저인 1.5%로 결정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최저임금 수준에 따라 같은 금액이 인상돼도 인상률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액은 130원인데, 같은 금액이 인상된 1991년도에는 인상률이 18.8%에 달했다.

◆‘극과 극’ 인상률이 논란 키웠다

문재인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은 극과 극을 달렸다. 2018∼2019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선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2020∼2021년도 심의에선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부 출범 당시 노동존중사회와 소득주도성장을 내세우며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지만, 현 정부 4년간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7.7%)과 박근혜정부(2014∼2017년) 연평균 인상률(7.4%)은 크게 다르지 않다.

널뛰는 인상률은 오히려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란을 키웠다. 인상률 급가속 기간인 2018∼2019년도에는 인건비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중심으로 불만이 확산했고, 저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사이 이른바 ‘을과 을’ 갈등구도가 형성됐다.

 

급제동 기간엔 노정 갈등이 심화했다. 정부는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풀었고, 노사 균형을 맞추기 위해 경영계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요청을 받아들였다. 2020년도 최저임금 심의에서는 역대 세 번째로 낮은 2.87% 인상률을 결정한 데 이어 이번 심의에서 ‘1%대 인상률’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현 정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도 사실상 힘든 상황이다. 당초 공약은 올해까지 1만원으로 올리는 것이었지만, 지난해 심의에서 이미 좌초됐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 최저임금이 1만원이 되려면 내년 심의에서 인상률이 14.7%가 돼야 하는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최저임금 공약을 지키기 어렵게 됐다”며 두 차례 대국민 사과를 한 바 있다.

◆“임금 작아도 일자리 유지 먼저”

역대 최저 인상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고용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권 교수는 이날 최저임금 의결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에서 소득도 중요하지만, 일자리가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고 판단했다”고 답했다. 임금을 적게 받더라도 우선은 기존 일자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권 교수는 “최저임금이 기대 이상으로 올랐을 경우 초래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일자리 감축 효과, 그것이 노동자 생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최저 인상률 결정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보다)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9대7로 최저임금 최종 의결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이 14일 새벽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2021년도 최저임금을 최종 의결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1.5% 오른 8720원으로 결정됐다.
세종=뉴시스

실제 정부는 코로나19 정국 이후 ‘일자리 유지’를 핵심 대응책으로 내세워 왔다. 경제 불확실성이 고조되면 기업이 가장 먼저 조정하는 비용이 노동력인데, 특히 코로나19 정국에선 특수고용노동자(특고)·영세 자영업자·프리랜서 등 고용 취약계층의 타격이 컸다. 정규직이 대량 해고됐던 국제통화기구(IMF) 외환위기 정국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번 심의를 주도한 공익위원들도 이 같은 부분에 주목해 IMF 당시 인상률(1998년 9월∼1999년 8월, 2.7%)보다 1.2%포인트 낮은 1.5% 인상률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이 고용시장,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해서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이번에 의결된 최저임금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는 최대 408만명에 이른다.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 결과를 토대로 내년도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 규모는 최대 19.8%에 이른다.

 

◆밤샘협상 ‘막전막후’

이번 최저임금 심의도 막바지까지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전년보다 2주 늦은 6월 중순에서야 첫 전원회의를 가진 최저임금위는 법정 심의기한인 지난달 29일을 넘긴 지난 1일 노사가 최초 요구안을 제출했다. 노동계 1만원(+16.4%), 경영계 8410원(-2.1%)으로 시작한 협상은 전날 2차 수정안 제출에서 경영계가 또다시 ‘-1.0%’의 마이너스안을 제시하면서 노동계의 반발로 파행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추천 근로자 위원 4명은 경영계의 연이은 삭감안 제출에 반발해 전날 8차 회의부터 심의를 거부했다.

8차 전원회의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한 노사는 밤샘협상으로 날을 넘겨 9차 회의로 차수가 자동 변경됐다. 노사 인식 간극을 확인한 공익위원들은 심의촉진구간으로 ‘8620(+0.35%)∼9110원(+6.1%)’을 제시했고, 노사는 각각 구간 상한선과 하한선을 2차 수정안으로 제출하며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결국 공익위원들은 8720원(+1.5%)을 공익위원안으로 제출해 표결에 부쳤다. 인상률에 반발해 한노총 근로자위원 5명은 전원 퇴장했고, ‘삭감 혹은 동결’ 입장을 고수했던 사용자위원 측에서도 2명이 퇴장해 총 17명(공익위원 9명, 사용자위원 7명)이 남았다. 공익위원안은 그대로 표결에 부쳐졌고, 찬성 9명에 반대 7명으로 가결됐다.

 

이동호 한국노총 사무총장(가운데)과 소속위원들이 14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에서 열린 제9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들의 1.5% 인상안 제시에 반발, 집단 퇴장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勞 “역대 최소 아닌 최악” 使 “최소한 동결했어야”

 

14일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1.5%(130원)로 확정되자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반발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은 이날 성명을 발표하고 “코로나19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있다는 대내외적인 평가와 비교하면 1.5% 인상은 수치스러울 만큼 참담한, 역대 ‘최저’가 아니라 역대 ‘최악’의 수치”라고 비판했다.

 

공익위원들의 결정에 대해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 숫자를 공익위원들이 내놓았다는 데서 그 참담함은 형용할 수 없다”고 혹평했다. 이어 “이들은 1.5%의 근거에 대해 물가상승률, 경제성장률 등을 이유로 내놓았지만 모든 것이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한노총은 “한노총 위원들은 이번 참사를 접하면서 전원 위원직을 사퇴했다. 공익위원들의 거취에 대한 판단 여부는 그들의 마지막 양심에 맡긴다”며 공익위원들의 사퇴를 촉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이날 논평에서 “역대 최저 인상률이다. 너무 실망스럽다”며 “매년 반복되는 사용자의 경제위기 논리와 최저임금 삭감과 동결안 제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리그는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최저임금제도 자체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우리는 최저임금 노동자위원 사퇴 등 모든 것을 내려놓는 방안을 포함해 최저임금제도 개혁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병수 소상공인연합회 부회장(가운데)은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에 대해 “아쉽지만 수용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경영·경제계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코로나19로 어려워진 경제상황 속에 최저임금 인상은 큰 부담이라는 반응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최저임금 인상률 1.5%가 비록 역대 최저치이긴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된 상황과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우리 경제의 역성장 가시화,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이 빚으로 버티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동결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사 사이에서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이 결정적인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는 구조의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며 최저임금 결정체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많은 경제주체들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의 ‘동결’을 최소한으로 바라고 있었다”며 “결국 1.5%를 인상한 8720원으로 결정된 게 아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극심한 경제난과 최근 3년간 32.8%에 달하는 급격한 인상률을 감안할 때, 1.5%의 추가적인 최저임금 인상은 생존을 위할 것”이라며 “청년층, 임시·일용직 근로자 등의 취업난과 고용불안도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동수·권구성 기자 d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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