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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섬광과 함께 정면에 날아든 ‘판스프링’…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날의 악몽

입력 : 2020-06-27 11:00:00 수정 : 2020-10-26 14:3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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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인근에서 사고 발생 / 선행차량 밟고 지나간 ‘판스프링’ 날아와 유리창 깨 / 사고 차량 운전자는 심각한 정신적 피해에 운전도 어려워
지난 19일 오후 10시20분쯤,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인근을 달리던 A씨는 앞선 차량이 밟고 지나간 판스프링이 날아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빨간 동그라미)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속 시간은 9시56분이나, 이는 실제와 24분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A씨 제공

 

“그때 조금만 각도가 틀어져 날아왔다면…지금처럼 통화를 하고 있지는 못했겠죠.”

 

전화 너머 들린 목소리는 담담하면서도, 아찔했던 그날의 순간을 생각했던 이유에서인지 다소 떨리기까지 했다.

 

그럴만했다. 일주일이 지났어도 사고 순간만 떠올리면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게 되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도 잔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고에서 비롯한 정신적 상처는 그의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떠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한밤중 고속도로를 달리다 앞차가 튕긴 ‘판스프링’에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30대 운전자 A씨와의 26일 통화를 토대로 그가 겪은 사고를 재구성했다.

 

흘린 사람의 신원 확인이 어렵고 무고한 사람만 희생되는 탓에 ‘도로 위의 저승사자’로 불리는 판스프링. ‘가해자가 없는 사고’이기도 한 이 사례를 공개함으로써, 운전자들의 안전의식과 함께 특히 화물차주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A씨는 거듭 강조했다.

 

지난 19일 오후 10시20분쯤,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인근을 달리던 A씨는 앞선 차량이 밟고 지나간 판스프링이 날아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 속 시간은 9시56분이나, 이는 실제와 24분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블랙박스 영상을 GIF파일로 변환. A씨 제공

 

◆섬광과 함께 날아온 판스프링…달리던 차량 유리창도 박살냈다

 

경기도에 사는 A씨는 지난 19일 오후 10시20분쯤, 대구에 사는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기 위해 자신의 차를 몰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블랙박스에는 오후 9시56분으로 나왔지만, 이는 실제 시간과 24분 정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정표에 구미 나들목(IC) 출구 안내 표시가 나왔으니, 아마 그 이전 어디쯤이었을 듯 싶다. 1차로로 달리던 A씨 앞에 2차로에서 달리던 티볼리로 보이는 차량이 깜빡이를 켜고 끼어들었다.

 

저 앞에 차가 들어섰을 즈음, 갑자기 선행차량 오른쪽 뒷바퀴에서 섬광이 번쩍이더니 ‘탕’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A씨의 차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유리창을 깨고 뒷좌석에 날아든 게 판스프링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A씨는 갑작스러운 사고 충격으로 정신이 멍해진 상태에서 얼마간을 더 달렸다.

 

지난 19일 오후 10시20분쯤,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인근을 달리던 A씨는 앞선 차량이 밟고 지나간 판스프링이 날아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 제공

 

◆블랙박스 확인하려니 두려움 덮쳐…선행차량 운전자 사고 인지 추정

 

칠곡휴게소에 도착한 A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부를 둘러본 뒤, 유리창을 깬 물체가 판스프링이었음을 깨달았다.

 

판스프링은 화물차 바퀴에 가해지는 충격 완화를 위해 차체 밑에 부착하는 부품인데, A씨의 설명을 따르자면 이날 날아든 건 크기도 작고 어쩐지 잘라낸 흔적이 남아 있어서, 누군가 적재함 문이 덜컹 거리는 걸 막고자 고의로 잘라 끼워 넣은 후 달리던 중 도로에 떨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유리창이 깨지는 바람에 안으로 날아든 유리가루는 A씨의 머리, 얼굴, 어깨뿐만 아니라 차량 안의 의자까지 덮쳤다. 조금이라도 판스프링이 각도를 틀어 날아왔다면, 그의 말대로 통화조차 불가능한 더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지도 모를 일이다.

 

A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고속도로순찰대가 휴게소에 도착할 때까지도 “블랙박스 영상을 미리 확인해보라”는 경찰의 말에 응하지 못했다고 한다. 앞선 사고 충격이 워낙 컸던 탓에 익숙한 자기 차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웠기 때문이다.

 

순찰대와 함께 영상을 본 그는 사고 당시 판스프링을 밟은 차에 브레이크 등이 들어오고, 1차로에서 옆차로로 빠지는 모습 등을 토대로 해당 차량의 운전자도 ‘밟은 충격’을 인지했을 거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 차량의 운전자는 차를 멈추지도 않았고, 경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현장을 떠나 일종의 ‘도주’를 한 것 같다고 그는 주장했다.

 

지난 19일 오후 10시20분쯤,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 인근을 달리던 A씨는 앞선 차량이 밟고 지나간 판스프링이 날아와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아찔한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으나, 일주일이 지나도 사고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A씨 제공

 

◆CCTV 영상 확인이 어렵다는 경찰…“그때 신뢰를 잃은 것 같다”

 

이틀 정도 지났을까. 경찰 연락을 받은 A씨는 더 힘이 빠졌다.

 

경찰이 사고 시간보다 20분 정도 앞당긴 오후 10시부터 구미 나들목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들을 확인했지만, 어디서도 그가 언급한 티볼리와 유사한 차량을 확인할 수 없는 등 조사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A씨는 “(사고로) 경찰을 대한 일이 처음이지만, (조사에) 다소 소극적인 것처럼 느껴졌다”며 “‘제가 죽었어도 이렇게 하실 거냐’고 (경찰에) 묻자 대답을 못하시더라”고 말했다. 이어 “직접 말씀드리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경찰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 같다”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여전히 경찰의 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탓에 A씨는 이와 별개로 직접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해줄 사설 업체까지 알아볼 생각도 있다고 한다.

 

자칫 A씨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판스프링은 경기도의 한 공업사에서 수리 중인 그의 차량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향후 사고 처리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보관 중이라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사고 후 고속도로를 달리는 A씨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GIF파일로 변환. A씨 제공

 

◆“판스프링 떨어진 건 ‘실수’가 아닐 것…‘살인마’ 될 수 있다”

 

A씨는 경찰과 함께 영상을 확인하던 중, 칠곡휴게소에서 만난 어느 화물차주의 도움도 언급했다.

 

A씨 차량 근처를 지나던 어떤 차주가 “이거 그거 때문이네”라고 하더니, 자기 차에 설치된 판스프링을 보여줬다는 거다. 해당 차주는 “용접을 하지 않으면 (적재함에서 빠진다는 걸) 기사들이 다 안다”며 “(단단히 고정하려면) 줄이라도 묶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A씨는 화물차주의 말을 토대로 고속도로에 떨어진 판스프링은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었을 거라는 데 무게를 뒀다. 그는 “알면서 안 하는 거는 실수가 아니다”라며 “죄 없는 누군가를 피해자로 만드는 ‘살인마’가 될 수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아울러 “화물차 판스프링 불법 사용을 단속하지 않는 당국에도 문제가 있다”며 “(사고 후)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이전에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8년 1월, 판스프링에 예비신랑이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가족을 태우고 중부고속도로를 달리던 이 남성은 앞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길이 40㎝·무게 2.5㎏ 판스프링에 크게 다쳐 결국 숨졌다.

 

수사에 나선 경찰이 사고 현장 양방향을 지난 차량 1만여대를 일일이 분석, 사고 발생 75일 만에 판스프링 밟은 관광버스 운전자를 검거했지만 이 운전자는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사고 발생 시간이 오후 8시쯤으로 앞에 떨어진 판스프링을 단번에 알아보기 어려운 데다가, 발견하더라도 갑자기 운전대를 틀어 피하기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판스프링 떨어뜨린 차주도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A씨는 사고 충격이 어느 정도 덜어지면, 한국도로공사에 철저한 고속도로 관리를 주문하는 동시에 향후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기관의 규제와 단속 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글을 국민신문고 등에 올릴 생각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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