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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환 통일연구원장 “南·北·美 신뢰 아직 남아… 냉각기 후 정상간 화상회담 추진을”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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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3 19:05:49 수정 : 2020-06-23 19: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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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北美 하노이회담 ‘노딜’로 사태 촉발 / 北, 경제제재 장기화로 내부 상황 악화 / 美 겨냥 전략도발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 판문점 선언서 평화·비핵화 첫 명문화 / 南·北·美 정상 리더십 걸린 문제이기도 / 파기 땐 김정은 국방위원장도 타격 입어 / 김여정 제1부부장 대남사업 ‘배드캅’役 / 김영철 등 군부 출신 강경파 영향도 커 / 北도 사태 관망하고 대응 고민 중일 것

자타가 인정하는 북한문제 전문가인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위태위태한 최근의 남북관계에 대해 “남·북·미 정상들의 신뢰는 완전히 멀어진 건 아니다”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아직은 기회가 남아 있다고 진단했다. 고 원장은 그러면서 “할 수 있는 건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방지하면서 냉각기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악화일로다. 지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에서 시작돼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에 이어 조만간 실행될 북한의 대남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 등 심리전까지 내달릴 조짐이다.

고유환 통일연구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을 배경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남북 간 합의문이 사문화되는 악순환을 이제는 끊어야 한다”고 남북 모두에 제안했다. 하상윤 기자

고 원장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 통일연구원장 집무실에서 이뤄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영구폐기와 상응조치의 교환을 실무선에서 어느 정도 합의해 지난해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났는데 결과적으로 ‘노딜’로 끝났다”며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난 게 이번 사태의 시작점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은 코로나19 변수가 있어서 대면 특사파견이나 정상회담은 어렵다. 화상으로 남북이나 남·북·미, 북·미 정상회담을 지금이라도 추진해봐야 한다”며 냉각기를 거친 뒤 화상으로 남북이나 남·북·미, 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제언했다. 다음은 고 원장과의 일문일답.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다음 행동도 예고했는데.

“북한이 이번에 말을 하고 행동으로 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빨랐다. 원래 김 제1부부장의 첫 담화는 조건이 많이 붙었고 남측의 태도에 따라서 좀 여유를 갖겠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담화가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공개되면서 내부 캠페인이 너무 세게 벌어지니까 자체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떠밀린 것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인민의 분노를 잠재우려면 속 시원한 걸 하나 보여줘야 하는데 약속한 대로 터뜨린 것이다. 북측에서는 자기들이 과거에도 냉각탑 폭파도 하고, 핵실험장도 폭파하고 그런 차원으로 볼 수도 있는 건데 우리나 국제사회에서 볼 때는 핵실험 이상의 충격이었다. 워낙 큰 카드였기 때문에 더 큰 추가 카드가 나오기 쉽지 않다. 사태를 관망하고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향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 등장 등 도발 가능성도 거론된다.

“미국을 겨냥한 전략도발은 지금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만약 지금 이 국면에 미국을 자극하는 전략도발을 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력사용을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에 모든 신경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먹잇감이 되는 걸 제공할 정도로 북한이 무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력시위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전략도발은 안 할 것으로 본다.”

-현 사태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진단하는지.

“판문점선언이 이전 선언과 획기적으로 다른 점은 비핵화 관련 내용을 남북 합의에 담았다는 것이다. 북한이 평화체제와 관련되는 내용을 앞에 집어넣고 우리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뒤에 넣었다. 평화와 비핵의 교환 협상을 단계별 동시행동에 따라서 하자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판문점선언과 이에 뒤따른 6·12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의 기본정신은 평화와 비핵의 교환이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라고 이름 붙었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한반도 평화비핵프로세스’이다. 북한은 앞(평화체제)에 방점을 찍었는데 미국과 한국은 뒤(비핵화)에다가 방점을 뒀다. 영변 핵시설에 대한 영구폐기와 상응조치의 교환을 실무선에서 어느 정도 합의해 지난해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이 만났는데 존 볼턴 등 미국 관료들의 반대로 결과적으로 ‘노딜’로 끝났다. 지금 이런 불행의 시작점이다.”

-북한이 제기한 대북전단 문제는.

“판문점선언에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하지 않는다고 약속했다. 9·19 군사합의에서도 그 내용이 재확인됐다. 그럼 지켜야 한다. 특별법 얘기도 있는데 문재인 대통령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 그거다. 지난 17일 문 대통령과 원로들의 오찬 간담회에서도 대통령께서 ‘전단에 미온적이었다. 인정한다. 사전에 잘했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할 수 있는 건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방지하면서 냉각기를 갖는 것이다. 정상들의 신뢰는 아직은 완전히 멀어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그래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남·북·미 정상들이 리더십을 걸고 시작한 문제다. 각각의 주관적인 목표나 의도는 달라도 이익의 공유점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결실을 내려고 할 것이다. 북도 모든 판을 다 깨버리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리더십에도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냉각기를 갖고 톱다운 방식을 시도해보자는 것인가.

“지금은 코로나19 변수가 있어서 대면 특사파견이나 정상회담은 어렵다. 화상으로 남북이나 남·북·미, 북·미 정상회담을 지금이라도 추진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화상회담은 언제라도 마음먹으면 이른 시일 안에 할 수 있다. 지금 국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 중재자로 나서주면 좋을 것 같다.”

-북한의 내부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가.

“제재 압박과 코로나19로 인한 셀프봉쇄에 따르는 내부 문제가 좀 큰 것 같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김 위원장이 지난 7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에서 대남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평양 주민의 살림살이를 얘기했다. 이를 거꾸로 하면 평양 주민들의 생활도 좀 어렵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지난 2월 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당 조직지도부장 이만건과 농업담당 당 부위원장 박태덕 두 명을 해임했다. 조직과 경제 부문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경제문제를 해결해서 효율성을 발휘하고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하자는 큰 방향이 틀어지니까 문제가 된 것이다.”

-최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남사업을 주도하고 있는데 위상이 올라간 것인가.

“김 제1부부장은 백두혈통이니까 북한에서는 절대적 영향력이 있다. 김 위원장이 있는데 그렇게 나서는 것도 정상은 아니지만 역할분담이라는 차원에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굿캅’을, 김 제1부부장은 ‘배드캅’을 해서 풀어보겠다는 구도에서 나온 것일 수 있다. 또 하나의 추측은 강경파의 영향이다. 지금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이 주도하고 있다. 대남사업의 총괄이 김여정이라고 공개했고 김영철과 김여정 이름이 같이 나왔다. ‘대적사업’을 언급한 건 김영철의 구상일 수 있다. 김영철 라인인 리선권은 지난 1월 외무상으로 갔는데 강경 군부 출신들이 대남과 외교를 강경노선으로 하면서 김여정을 내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정부가 개별관광, 철도연결, 방역협력 등 여러 협력사업 추진 의지를 밝혔다.

“그것도 문 대통령이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철도 부분은 어느 정도 한·미 간에도 합의가 됐던 것이다. 북한은 우리가 미국이 다 막아서 안 된다고만 하고 한 게 뭐가 있냐고 하는데 사실 남북철도협력, 도로, 인프라는 당장 제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미국과의 협의가 있었다. 안 알려진 상태에서 이번 사태가 터진 것이다.”

-남북 간 합의문이 사문화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왜 통일은 염원할수록 멀어지고 북핵 문제는 해결하려고 노력할수록 고도화되나. 북한과의 합의문은 만들어놓으면 예외 없이 사문화된다.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통일연구원장으로 온 이유를 거기서 찾는다. 원점에서 근본적으로 불가역적인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 4월 원장으로 취임했는데 통일연구원을 어떤 조직으로 이끌고 싶은지.

“와서 보니까 국책연구기관으로서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다만 그동안 조직 구성원들의 소통을 통해서 활력을 끌어내지 못한 게 문제인 것 같다. 개혁이나 혁신이란 말은 쓰고 싶지 않고 ‘제자리 찾기’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기존에는 정권에 따라 일부 사람만 활용해서 전체적인 역량을 뽑아내지 못했다. 경제 분야 국책연구기관과 비교하면 임금과 인센티브 제도가 불리하게 규정돼 있어서 바로잡을 필요도 있다.”

-오랜 기간 학계에 몸담다가 통일연구원에 왔다. 10년 후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동국대에) 북한학과가 생길 때 첫 교수로 부임해 북한학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학자로서 해보니까 통일, 핵문제, 남북합의 모두 해결이 안 됐다. 남은 기간 국책기관에서도 노력해보겠다. 세 가지 문제가 10년 후에라도 풀리면 좋겠다.”

 

대담=김용출 외교안보부장

정리=백소용 기자

 

고유환 원장은…

 

●경북 문경(1957년) ●동국대 정치학 학사·석사·박사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정책기획위원회 평화번영분과위원장, 위원(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기획조정분과위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장 역임 ●통일연구원 원장(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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