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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증한 눈, 언제나 우리 가족 지켜보리라 믿어” [S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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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3 06:00:00 수정 : 2020-11-13 14: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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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에 새 삶 선물하고 떠난 남편 향한 사부곡(思夫曲)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난 고(故) 신선현씨의 생전 모습.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제공

“애들은 내가 잘 키워낼 테니 하늘에서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 당신이 기증한 눈이 다른 사람 몸에 남아 우릴 지켜봐 줄 거라 믿어.”

 

남편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며 부인 A씨는 이렇게 속으로 되뇌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큰딸은 엄마 손을 꼭 잡고서 “이 다음에 아빠 얼굴 이쁘게 잘 그려줄게”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뇌사 후 장기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선사한 신선현(34)씨는 그렇게 지상에서 맺은 짧은 인연을 뒤로 한 채 영면에 들었다.

 

22일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따르면 전남 순천에 살았던 신씨는 지난 3일 업무 도중 교통사고를 당했다. 119를 통해 곧바로 병원 응급실에 이송됐으나 머리를 크게 다친 그는 안타깝게도 뇌사 판정을 받았다.

 

신씨 가족은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회복을 기다렸다. 하지만 의료진은 “뇌사에 준하는 상태로 회복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조심스럽게 “장기기증을 고려해 볼 수도 있겠다”고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남편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것을 보며 A씨는 기증을 결심했다.

 

“두 딸들에게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린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어요.”

 

운송업에 종사하던 신씨가 평소 입버릇처럼 A씨한테 ‘만약 내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될 만큼 다치면 장기기증을 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해 온 점도 A씨의 결단을 거들었다.

 

결국 신씨는 지난 16일 심장, 간장, 신장(좌·우), 안구(좌·우)를 기증하여 6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났다.

 

전남 여수에서 1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신씨는 사업과 운송업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다. 밝고 활발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두 딸들에게는 친구처럼 자상한 아빠였다. 주변 아이들이 “우리 아빠도 너희 아빠 같았으면”이라며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딸의 친구들 중 형편이 어려운 애가 있으면 음식이라도 따로 챙겨 보낼 만큼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지인들은 추모했다.

 

마지막 작별의 순간 A씨는 “아직은 작은 딸이 당신과의 이별을 잘 이해하지 못해 가슴 아파”라고 고백했다. 이어 “하지만 당신 빈자리를 느끼지 않도록 씩씩하게 잘 키워낼 테니 하늘에서 걱정하지 말고 잘 지내”라며 “특히 당신이 기증한 눈이 다른 사람의 몸속에서 살아 있을 테니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리를 지켜봐 줄 거라 믿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큰딸은 이젠 다시 볼 수 없는 아빠에게 “내가 그림 열심히 그려서 성공할게”라고 다짐했다. “아빠 얼굴도 이쁘게 잘 그려줄게. 엄마랑 잘 지낼 테니 걱정 말고 잘 지내.”

 

한국장기조직기증원 조원현 원장은 “숭고한 생명 나눔을 실천해주신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이타정신으로 베풀어 주신 선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 생명의 소중함과 더불어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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