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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빚 굴레 벗도록 ‘죽은 채권 부활금지법’필요”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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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2 06:00:00 수정 : 2020-06-21 20: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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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체 채무자’ 살리는 주빌리은행 설은주 대표 / “시민후원… 부실채권 매입 빚 탕감 / 대부업체, 소멸시효 불구 꼼수 연장 / 채무자 이해하고 갱생 기회줘야”
‘빚의 수렁’에 빠진 서민들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는 주빌리은행 설은주 대표는 “요즘 코로나19로 대출이 연체된 소상공인들의 상담이 늘고 있다”며 정부에서 취약 계층을 위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상배 선임기자

“시효가 한참 지났는데 못 갚는 분들은 정말 없어서 못 갚는 거예요. 이분들을 몰아가면 극단적 선택마저 할 수 있어요. 이들이 사회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게 함께 노력해야죠. ‘죽은 채권 부활금지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사무실에서 만난 주빌리은행 설은주 대표는 ‘연체의 늪’에 빠진 채무자들의 사연을 전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음에도 대부업체의 ‘꼼수’로 빚에 쫓기는 채무자들을 위해 ‘죽은 채권 부활금지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빌리은행은 빚의 수렁에 빠진 서민에게 새출발할 기회를 주는 단체다. 암암리에 팔리는 장기 부실 채권을 사들여 깨끗이 소각함으로써 빚의 굴레를 벗도록 돕는다. 2015년 ‘사람을 살리는 착한은행’을 구호로 내걸고 출범했다. 설 대표는 “10, 20년 빚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우리 손을 잡아라, 도와줄 사람들이 있으니 죽지 말고 버티라고 말해주는 단체”라고 소개했다. 재원은 100% 시민 후원으로 조성했다.

지금까지 주빌리은행을 통해 빚에서 벗어난 이들은 5만1182명, 채무 규모는 8058억원에 달한다. 설 대표는 “저희 활동이나 정부 정책을 보고 ‘남의 돈 빌려 썼으면 갚아야지’하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다”며 “채권자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고, 우리 활동이 채권자 재산권과 충돌되지만 어쨌든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변호사인 설 대표도 연체채무자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계약은 지켜야 한다’고 여겼다. 생각이 바뀐 건 2012∼2016년 서울중앙지방법원 외부회생위원으로 일하면서다. 당시 그는 지방법원 파산부에 개인회생을 신청한 이들의 재산·채무 관계 등을 조사했다. 설 대표는 “상담하면서 이분들 인생을 들여다보니 ‘이럴 수밖에 없었구나, 갱생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3억, 4억원 채무가 생긴 보험설계사가 기억에 남아요. 개인회생을 신청할 때 빚을 못 갚았다는 자체를 수치스러워 하시더라고요. 회생에 들어가자 설계사로 일하며 새벽에 목욕탕 알바까지 해서 돈을 갚아나갔어요. 2년간 그러니 몸에 무리가 온 거죠. 그분이 ‘죄송하지만 더는 못하겠다’며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하셨어요. 채무자를 ‘도덕적 해이’라는 편견을 갖고 보는 건 지양해야 해요. 누군들 빚을 안 갚고 싶겠어요.”

그가 법원 외부회생위원으로 일한 경험은 주빌리은행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2016년부터 이곳에서 법률자문으로 일했다. 대표로 취임한 건 지난해 8월. 그 사이 주빌리은행에서는 빚을 탕감받은 이들이 다시 후원자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주빌리은행 유순덕 이사는 “요새 후원자 분들은 거의 저희가 상담했던 사례자들”이라며 “어제도 미국에서 메일로 상담하셨던 분이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이제 두발 뻗고 잔다며 20만원을 보내셨다”고 전했다. 어려운 살림에 부담일 텐데도 자신처럼 다른 이들이 빚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월 5만원씩 후원을 약정하는 이들도 있다.

주빌리은행의 활동과 정부·금융권의 노력 덕분에 부실채권 시장도 개선됐다. 은행 설립 초반에는 소멸 시효가 완성됐음에도 빚 독촉을 하는 악성 채권이 많았으나, 현재는 이런 채권의 상당수가 소각됐다.

그렇다고 불법 사금융이 사라진 건 아니다. 법망을 교묘히 피한 불법 사금융은 피해자들을 악귀처럼 따라다닌다. 사채업자 정모씨는 주빌리은행에서 최근 대응하고 있는 우려 사례 중 하나다. 설 대표는 “20년 전 피해자가 사채업자 정씨에게 100만원을 빌렸는데 아무리 갚아도 빚이 1억으로 불어나 제가 공익소송을 돕고 있다”고 했다. 정씨는 사채를 빌려준 후 피해자들의 신분증명서로 공정증서를 위조한 혐의를 받고 있다. 100만원이 아닌 4000만, 5000만원 등을 빌린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다. 피해자가 터무니없는 빚을 겨우 다 갚으면 정씨는 다른 사람이 채권자로 등재된 새로운 빚을 내밀었다.

‘죽은 채권’도 문제다. 상사 채권·채무관계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그러나 5년이 가까워지면 금융회사가 소송을 제기해 10년 단위로 연장, 재연장한다. 설 대표는 “채무자가 ‘나 시효가 완성돼서 갚을 의무 없어요’ 해야 원고의 청구가 기각되는데, 법원에서 지급명령 결정을 보내도 채무자들이 대응을 못해 결국 무변론으로 원고가 승소한다”고 전했다. 이렇게 10년, 20년씩 늘어난 빚이 채무자들을 괴롭히기에 ‘죽은 채권의 부활’을 금지하는 법을 이제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설 대표는 강조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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