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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먹거리 곤충사육 위해 귀농… 6차산업 선도 꿈 이룰터”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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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20 09:00:00 수정 : 2020-06-19 22: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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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혁 ‘여가벅스’ 굼벵이 농장 대표 / 캐나다 대학에서 마케팅 전공 / 귀국해 부친 제조회사 일 도와 / 삶의 전환점 찾기 위해 시골로 / 농촌 터 잡고 주민들과 어울려 / 처음엔 색안경… 주민 반응 싸늘 / 마을 막내로 온갖 궂은일에 앞장 / 영어 가르치고 소방대·4-H 활동 /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대회 입상 / ‘곤충은 혐오식품’ 편견 탓에 애로 / 창업자금 부족에 알바까지 뛰어 / 제약회사 납품 크기 안맞아 실패 / 갖은 노력 끝에 이젠 도사 다 돼 / 박람회서 장관상… 사육 명인 우뚝 / 전국서 강의 요청… 노하우 전달도 / 협동조합 설립… 진액도 생산판매 / 체험·숙박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
지난 4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 ‘여가벅스’ 굼벵이 농장에서 만난 여진혁 대표가 직접 사육하는 흰 굼벵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옥천=하상윤 기자

최근 곤충이 미래 식량자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징그러운 겉모습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곤충은 풍부한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을 함유해 기존 식량자원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곤충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7월 장수풍뎅이와 흰점박이꽃무지 등 곤충 14종을 축산법에 의한 가축으로 지정했다. 곤충 사육 농가는 취득세·지방교육세 50%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받는다. 곤충산업은 귀농인과 농업 관련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 먹을거리에 뛰어든 30대 청년 귀농인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4일 충북 옥천군 동이면에 있는 ‘여가벅스’ 굼벵이농장에서 여진혁(38) 대표를 만났다. 여 대표는 2975㎡ 규모의 땅에 사육동, 작업동, 발효동, 가공시설을 갖춘 농장을 운영한다. 그가 사육하고 있는 것은 흰점박이꽃무지라고 불리는 굼벵이다. 식용과 약용이 가능해 선택했다. 사육동을 보니 7칸으로 나눈 선반에 플라스틱통이 차곡하게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통 안에는 흰 굼벵이가 꿈틀거렸다. 사육동은 현대화 시설을 갖춘 스마트 팜이다. 온도와 습도, 환기를 PC 등으로 조절할 수 있어 편리하고 위생적인 농장이다. 출하 때마다 굼벵이 50만마리를 출하할 수 있는 규모였다.

 

여 대표는 2016년 4월 귀농을 실행하기 전 서울시농업기술센터에서 운영하는 곤충산업 전문 인력 양성교육을 수료했다. “무작정 농촌으로 내려가서 몸으로 부딪치며 일을 배우는 것보다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는 농업 관련 자료를 찾던 중 앞으로 곤충산업이 뜰 거라는 정보를 접하자마자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바로 이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문가 양성 교육을 마치자마자 농장을 차릴 장소를 찾아 전국을 다니는 등 일사천리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열정이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귀농 과정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다. 귀농을 결심하자 주변에서는 “제정신이냐”며 만류했다. 부모님마저 “서울에서 나고 자란 네가 시골에서 살 수 있겠느냐”며 반대했다. 여 대표는 지금 멈추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귀농행을 밀어붙였다. 그는 아버지 회사 일을 도와주면서 모은 급여 등을 합친 돈으로 땅을 구입하고 귀농창업자금을 지원받아 곤충농장을 지었다.

 

원래 그의 꿈은 제조업체 전문경영인이었다. 캐나다 밴쿠버의 스프로쇼 칼리지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이유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 아버지의 섬유제조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양산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침 캐나다에서 만난 아내가 시골생활을 하고 싶다고 밝히는 데다 여 대표 본인도 새로운 전환점을 찾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일었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귀농으로 이끌었다.

시골에 터를 잡은 그는 우선 동네 주민들과 어울렸다. 당시 34살 청년이 귀농을 하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색안경을 끼고 봤다. ‘좀 있다가 떠나겠지’ 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동네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형님도 스무 살이나 많았다. 자연스럽게 마을의 막내가 돼 궂은일에 가장 먼저 나섰다. 그의 사무실 옷걸이에는 의용소방대 출동복이 걸려 있었다. 동네 의용소방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원이다. 농장 인근 초등학교에서는 마을선생님으로 활동한다. 유학경험을 살려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도자협회는 물론 4-H활동을 했다.

아름다운마을가꾸기 경진대회에 마을 대표로 참가해 1등을 차지해 상금 3000만원을 받고, 충북행복마을경진대회에 참여해 1등을 하는 등 재능을 발휘에 마을발전에 기여하자 동네주민들이 마음을 열었다. 마을을 위해 성심껏 일한 덕분에 텃세를 극복하고 완전하게 동화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노인정으로 출근해 커피 마시며 어르신들과 나누는 대화도 주요 일과다. 급한 일 때문에 노인정을 방문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노인정 어르신들이 전화를 걸어 “굼벵이 아빠 무슨 일 있어? 오늘은 왜 얼굴이 안 보여?”라고 물을 정도다.

 

4년 전 곤충을 사육하겠다고 하자 주변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곤충을 키우겠다고 하자 군청 담당자들도 “왜 벌레를 키울 생각을 했느냐”며 의아해했다. 곤충이 ‘혐오식품’이란 편견 탓에 식용보다는 기능성 약용과 동물 사료용으로 쓰일 때라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는 곤충이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과감하게 곤충산업에 집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창업 직전 노하우를 배우려고 여러 곤충농장을 찾아가면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그는 다른 농장에서 본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면서 자신이 그렸던 형태를 반영해 농장을 건립했다.

“지금이야 웃고 얘기하지만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려웠습니다. 상의할 사람도 없었고 예산도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들어갔어요. 부족한 돈을 마련하려 택배회사와 가구회사에서 아르바이트까지 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농장을 열고 굼벵이 유충 10㎏을 분양받아 곤충을 사육했다. 한 제약회사에 굼벵이 100㎏을 납품할 계획이었지만 크기가 고르지 못해 3.72㎏만 판매하는 실패를 맛봤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1㎏에 15만원을 받기로 해서 목돈을 쥘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반품되자 눈앞이 노래졌다. 톱밥 양에 비해 굼벵이 개체수가 많으면 일정하게 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굼벵이 알을 일일이 손으로 세어 한 통에 150개씩 담았다. 6개월을 세다 보니까 나중에는 눈대중으로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을 만큼 도사가 됐다.

그는 지난해 귀농귀촌청년박람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18년 7월에는 농식품부에서 선정한 전국 귀농귀촌우수사례 20인에 선정됐을 만큼 곤충사육 분야에서는 유명인이다. 전국 농업기술센터에서 요청하는 강의도 꾸준히 하면서 굼벵이 사육과 성공노하우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귀농 5년째인 그는 곤충 사육과 제품판매, 컨설팅 등을 합쳐 한 달 평균 15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곤충사육을 하기 위해 농장을 찾는 방문객에게 유충 10㎏씩을 건넨다. 욕심만 갖고 덤벼들었다가 실패하고 재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를 줄이기 위해서다. 천천히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귀농 선배로서 체감했기 때문이다.

여 대표는 요즘 인근 굼벵이 농가와 힘을 합쳐 충청곤충산업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곤충 사육정보와 마케팅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제품을 생산해 판매한다. 굼벵이 추출액과 대추 등 한약재를 섞어 ‘내 몸 애 꽃벵이’라는 진액을 자체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일회용으로 짜먹을 수 있는 농축스틱의 제맛을 내려고 20여차례 실험한 뒤 제품을 만들었다. 그는 곤충을 활용한 6차 산업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단순히 곤충을 사육하고 가공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체험과 숙박까지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입니다.”

요즘은 곤충 사료를 만드는 것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돼지와 소 등 다른 가축은 사료공장이 있지만 곤충은 사료공장이 없는 상태이다. “제대로 된 곤충사료공장을 만들어 양질의 사료를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곤충산업이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곤충 하면 돈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턱대고 뛰어들면서 판로확보를 못해 실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단다.

“지난해 초 굼벵이를 사육하는 농가가 1500곳에 달했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가 포기한 것으로 압니다.”

여 대표가 곤충산업을 알리는 강연에서 현실과 이상의 차이를 분명히 설명해주는 배경이다.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알려준 뒤 심사숙고해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은퇴한 후 퇴직금으로 곤충사육에 뛰어들겠다고 찾아오면 무조건 뜯어말립니다. ‘우선 창업교육부터 받고 현장에 가서 일을 해 본 뒤 선택해도 늦지 않다’고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물려받을 수 있었던 회사와 도시 생활을 뒤로한 채 시골 농부로 사는 삶에 후회는 없을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굼벵이를 통해 귀농과 부농의 꿈을 이뤄나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굼벵이는 동의보감에 간암, 간경화, 백내장, 당뇨 등을 개선하고 체내의 독성을 배출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블루오션’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실제 주변에서 굼벵이를 먹어 본 사람들은 꾸준히 복용할 만큼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며 굼벵이 사육과 가공식품 생산에 인생을 걸었다.

불모지인 곤충산업을 개척하며 묵묵히 앞길을 가고 있는 젊은이의 자신감이 든든해 보였다.

 

옥천=박연직 선임기자 repo21@segye.com

 

여진혁은...

 

1983년 서울 출생 △캐나다 스프로쇼 칼리지 △서울시농업기술센터 곤충산업 전문인력 양성교육 수료 △2016년 여가벅스 창업 △2017년 옥천군 농업인대학 산업곤충학과 1기 졸업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 우수사례 20인 선정 △2019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표창 수상 △우수 4-H인상 옥천군의장 표창 수상 △충청곤충산업협동조합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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