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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OFF 머릿속도 OFF… 당신은 ‘디지털치매’

입력 : 2020-06-13 18:00:00 수정 : 2020-06-15 14: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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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휴대전화번호가 뭐더라?” / 현대인들 ICT기기에 의존 과도 / 없으면 불안… 인지저하 경험도

“스마트폰이 꺼지니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대기업 과장 박 모(35)씨는 최근 서울 중랑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다가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스마트폰이 꺼져 내비게이션을 보지 못하니 길을 잃은 것이다. 취미생활로 자전거를 타온 박 씨는 12일 “3년 동안 매주 주말마다 다녔던 길인데, 교차로에서 방향이 헷갈려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는 “근처 카페에 들러 스마트폰을 충전한 다음에야 길을 나섰다”며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니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 줄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이지은(24)씨는 얼마 전 택시에서 스마트폰을 잃어버렸다. 택시기사로부터 2시간 만에 스마트폰을 돌려받았으나 손에 쥘 때까지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는 게 이씨의 고백이다. “기다림의 시간은 악몽이었다”는 것이다. 이씨는 “‘뇌정지’(뇌가 정지될 만큼 당황스러운 순간을 표현하는 신조어)가 온 것처럼 뭘 해야 할지 몰랐다”며 “그저 커피숍에서 멍때리고 앉아 택시기사를 기다렸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디지털치매’ 현상을 겪는 사람이 넘쳐난다. 부모님 휴대전화번호를 모르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디지털치매는 2010년대를 넘어 컴퓨터,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등에 둘러싸인 현대인이 정보통신기술(ICT) 기기에 과도하게 의존하면서 치매와 유사한 인지 저하를 경험하는 것을 말한다. 국립국어원은 디지털치매 증후군을 ‘디지털기기의 발달에 힘입어 스스로 뇌를 사용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디지털기기에 의존하게 된 현대인들의 기억력 감퇴 현상’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디지털치매는 약하게는 건망증 수준이나 강하게는 실제 치매 이상의 인지능력 감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고 디지털치매 방지를 위해 스마트폰을 버릴 수는 없다. 스마트폰 없는 삶은 상상이 불가능한 2020년, 디지털치매는 사회적 차원의 접근과 해결이 필요한 난제다.

 

◆시민 2명 중 1명 “나도 디지털치매”

디지털치매는 최근 급증하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달 전국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스마트폰 의존도’와 ‘디지털치매’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51.3%가 스스로 디지털치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2명 중 1명꼴이다. 특히 디지털치매에 대한 우려는 40대(50%), 50대(45%)보다 20대(56%), 30대(60.5%)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나타나고 있다. 10대가 45%인 것이 눈에 띈다. 또 남성(47.6%)보다 여성(55%)에서 우려가 높았다.

 

스마트폰 부재에 따른 불안감과 지장을 호소하는 비율은 대개 높게 나왔다. 디지털치매에 대한 ‘불안감’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의 비율(43.9%)도 높다. 이는 스마트폰 의존도가 높은 최근 현대인들의 생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응답자의 64.2%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스마트폰을 두고 나오면 불안하다’고 응답한 이들의 비율은 61.7%로 나타났다. 좀더 세부적으로는 20∼30대가 스마트폰의 부재에 따른 불안감(20대 68%, 30대 66.5%)이 컸다.

 

조사 대상 10명 중 4명(39.9%)은 스마트폰이 ‘몸 가까이’에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다. 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곁에 두려고 하는 모습과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이나 반경 주변에 스마트폰을 두는 이들의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취침 전에 스마트폰을 손 닿기 쉬운 곳에 두거나, 아예 손에 쥔 채 잠을 자는 이들은 2014년 49.2%에서 2017년 59.1%, 2019년 64.8%로 늘었다. 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가지고 가는 이들도 해가 갈수록 늘었다.

여가시간에 가장 많이 하는 활동도 ‘스마트폰’의 이용(69.7%, 중복응답)이었다. 현대인들의 취미활동 영역이 늘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며 여가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다. 취미활동으로는 TV시청(44.6%)과 컴퓨터 이용(40.1%), 게임(29.5%), 영화감상(26.2%)도 꼽히는데, 이런 활동 역시 요즘에는 스마트폰으로 많이 이뤄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 필요한 디지털치매

 

의학계에선 디지털치매를 별도의 증상으로 분류하곤 있진 않다.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닌 단순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정도다. 기억력 감소 측면에서 증상은 같지만, 실제로 뇌세포가 죽는 치매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도 치매와 달리 디지털치매에 대해서는 별도의 예산과 지원을 마련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기억력 감퇴 등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기에 향후 디지틀치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시민의 78.3%는 ‘디지털치매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뤄져야 하는 문제’로 인식했다. 특히 여성(남성 73.8%, 여성 82.8%)과 중장년층(10대 74%, 20대 76.5%, 30대 74.5%, 40대 86%, 50대 80.5%)이 이같은 견해에 동의했다. ‘디지털치매는 자연스러운 현상’(66.4%)이고, ‘연령과 상관 없이 겪을 수 있는 현상’(88.6%)이라는 생각도 이 같은 문제의식의 발로로 보인다. 이와 달리 ‘디지털치매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이들은 18.8%에 불과했다. ‘건망증’에 가깝다고 치부한 사람은 27.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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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으뜸 트렌드모니터 차장은 “많은 응답자들이 디지털치매를 병으로 인식하고 있고, 스스로 디지털치매에 노출돼 있다고 느끼고 있다”며 “디지털치매는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과 예방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송 차장은 디지털치매 문제 해결을 위해선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개인들의 의존도 줄이기와 더불어 공동체의 관심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디지털기기 과도한 의존 근본 이유부터 찾아야”

 

“디지털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권겸일 순천향대학교 부속 서울병원 신경과 교수(사진)는 12일 디지털치매와 관련해 “단순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과도하게 사용하지 말라는 지침만으로는 진정한 예방이 될 수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권 교수는 사회학적 용어인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과 디지털치매의 상관관계를 강조하며 “강박적인 디지털기기의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놓쳐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란 의미의 FOMO는 디지털기기를 이용한 SNS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 관계, 새로운 경험, 흥미로운 이벤트 등을 놓쳐 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감을 말한다. 결국 이러한 강박증 때문에 과도하게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게 된다는 게 권 교수의 말이다.

 

그는 “디지털기기를 통한 관계나 경험은 허구에 근거하거나 실제적이지 않고 인간관계의 친밀함을 높이는 데 있어 진정한 도움을 주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는 게 중요하다”며 “그러한 자각이 있어야 불필요하거나 강박적인 디지털기기의 사용을 멈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이어 “뇌신경의 퇴행으로 인한 일반적인 치매와 디지털치매와의 관련성이나 그 위험성은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며 “다만, 이론적으로는 젊은 나이에 뇌기능의 감소를 보이는 디지털치매가 지속된다면 향후 장기적으로 뇌신경의 퇴행으로 인한 일반 치매의 발생률이 더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디지털기기 보급률이 세계 최고 수준인 국내 현실을 고려할 때 젊은층의 디지털치매 증상 노출 위험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이는 각종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조사업체 엠브레인 모니터에 따르면 대다수의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기억력 저하를 경험하고, 디지털기기에 의존하는 모습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간단한 더하기와 뺄셈도 계산기를 이용하고 있고, 날짜를 기억해서 알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확인해서 아는 경우가 더 많은 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60∼70%에에 달한다.

 

권 교수는 “디지털치매는 치료나 예방 등의 실제적인 연구가 이루어 지지는 않은 상태”라며 “향후 여러 연구들을 통해 의학적 차원에서 이론 정립과 사회적인 해결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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