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의원에게 4년간의 상임위원회 활동은 다음 총선 생환 여부를 결정짓는 성적표 역할을 한다. 또 4년간 의정활동을 든든하게 받쳐줄 ‘후원금’ 모금도 소속 상임위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의원들은 원하는 상임위 배정을 받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상임위 활동은 크게 전·후반기 2년씩 나뉜다. 전반기에 인기 상임위를 가면 후반기에는 비인기 상임위에서 활동하는 식이다.

국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임위라면 단연 국토교통위원회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산하기관을 관할하는 국토위는 21대 국회에서도 가장 ‘핫’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176명 중 49명이 국토위를 1지망으로 썼다. 2·3지망 쓴 의원으로 하면 배로 는다.
국토위의 높은 인기는 지역사업을 펼치는 데 유리해서다. 교통망 확충 등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기 쉽다. 국토위 소속 의원은 수시로 국토부 장관과 차관, 국·실장급 등과 상의하면서 총선 전 공약한 내용을 조기에 이행하는 데 전력을 쏟는다. 특히 수도권은 지하철 개통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된다. 20대 국회 후반기 국토위원장이었던 미래통합당 박순자 전 의원은 임기 중 지역구 사업인 신안산선 조기 착공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통합당 내에서 돌아가면서 맡기로 했던 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아 당으로부터 징계를 받기도 했다.

겉보기엔 국토위가 ‘알짜’처럼 보이지만 잔뼈가 굵은 국회 관계자들은 기획재정위원회가 실속 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재위를 경험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국가예산은 다 기획재정부가 짠다. 기재위에 소속되면 수시로 기재부 실무자들과 소통하는데 정부예산안에 지역 사업을 포함시켜 국회에 제출하게 하면 된다”며 “국토위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힘들게 지역 예산 밀어넣으려는 것보다 기재위에서 하는 게 훨씬 쏠쏠하다”고 설명했다. 겸직 상임위인 정보위원회도 국가정보원의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인기다.
20대 국회 전반기까지 있었던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지역구 관리 측면에서 선호도가 높은 상임위였다. 하지만 20대 후반기부터 교육위와 문체위로 쪼개지면서 인기가 떨어졌다. 교문위 의원실에서 근무했던 한 보좌관은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동시에 담당하던 교문위는 교육부의 특별교부금을 활용해 지역구의 학교 강당 신축 등 추진하기 좋았고, 문체부로부터는 지역 도서관이나 체육공원 등 생활형 사회간접자본을 여러 개 끌어올 수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교육위와 문체위로 쪼개진 다음에는 그 시너지를 잃게 됐다. 교부금 노리고 교육위를 가자니 교사들은 정치 후원금을 법적으로 못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실익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각종 ‘돈줄’을 쥐고 있는 정무위원회로도 늘 몰린다. 정무위는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관장해 금융권과 대기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 국무조정실과 국무총리비서실까지 감사해서 국정 전반에 대해 질의를 하고 보고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후원금 모금에도 유리하다. 대기업이나 금융권 등 관련 업계에서 정무위 의원들에게 후원금을 보내는 사례가 아직도 많아서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도 같은 이유로 의원들이 선호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벤처기업부 등 이름에서부터 산업 분야와 관련이 높다. 특히 산하 공기업이 많아서 지역구 민원이나 예산 챙기기도 수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하기관에서 나오는 후원금도 의정활동을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후원금 모금과 관련해 숨은 실속 있는 상임위는 환경노동위원회다. 환경부와 고용노동부를 관할하는 이 위원회는 노동 이슈가 터질 때마다 밤샘 회의를 거듭하고 쟁점 사안마다 여야가 부딪쳐 고된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노동조합의 힘은 후원금 모금과 당내 경선을 준비하는 의원에게 큰 힘이 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환노위에서 활동한 민주당 설훈·김태년·한정애 의원은 후원금 한도액인 1억5000만원을 꽉 채우거나 거의 근접했다.
환노위 소속 의원실 출신의 한 보좌관은 “노조의 조직된 힘이 정치에서는 크게 작용할 때가 많다. 노조 총회에서 지도부가 ‘이런 분들이 노동친화적 정책을 펼치시니 힘을 한 번 모읍시다’ 정도의 언급만 하면 노조원들이 각자 그 의원한테 소액이라도 후원을 한다”며 “또 이번 총선에서도 나타났듯 당에선 앞으로 경선 선거인단 모집이 굉장히 중요하다. 노조를 통해 당원을 모집해서 ‘내 편’으로 만들면 경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고 강조했다.

농어촌 출신 의원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를 담당하면서 지역 주민 지원 사업을 펼치기 수월해서다. 농해수위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지역구에 도움이 된다면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때문이다. 이에 농해수위에서 다루는 예산 지원 법안 중 일부는 ‘선심성’이란 지적을 받을 때가 적지 않다.
비인기 상임위에는 파리만 날린다. 격무에 시달리는 법사위도 덜 몰리는 편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최고 비인기 상임위는 국방위원회다. 국방위는 지역구 관리와 후원금 모금 두 가지 차원에서 대부분의 의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늘 찬밥 신세다.

민주당에서도 이번에 지원자는 육군 대장 출신의 영입인재인 김병주 의원이 유일하다. 심지어 해군 군수사령관을 지낸 민주당 윤재갑 의원은 지역구가 전남 해남·완도·진도여서 농해수위를 지망했다. 20대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의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통화에서 “군은 입법·사법·행정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조직이어서 많은 것을 배운다”며 “국방위 소속이라고 지역사업을 못하는 건 아니다. 열심히 하면 다른 상임위에서도 도움을 준다”고 추천했다.
◆ “일하는 국회 되려면 비인기 환노위 등 조정을”
국회 상임위원회 개편 문제는 새로운 국회가 열리거나 국회 후반기 때마다 이슈가 된다. 상임위마다 여러 정부부처가 소속돼 있는데, 경제 구조 및 사회 환경 변화에 따라 상임위 소속 관련 부처를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일부 상임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당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21대 국회는 들어서자마자 법제사법위원회를 체계·자구 수정을 담당하는 법제위원회와 사법기관을 피감하는 사법위원회로의 분할이 논란이 됐다. 법사위뿐 아니라 비인기 상임위인 국방위원회를 정보위원회와 통합하자는 의견도 반복됐지만,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사진)은 페이스북에 “코로나19 이후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 대처하면서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상임위 개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환경노동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상임위를 재조정하는 안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를 합쳐 ‘기재노동위’를 만들고, 환경부는 산업통상자원부와 합치거나 정무위와 붙여놓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의원은 “고용·노동 분야는 최저임금 문제 등이 있기에 경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며 “국회가 보다 포괄적으로 논의 틀을 만들고 사회적 대타협 등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환경부에 대해서는 “환경과 관련된 큰 이슈는 미세먼지, 석탄 화력, 원자력발전소 등이어서 환경부와 산자부를 하나로 묶는 방법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지만 규모가 너무 커져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대신 정무위에서 금융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를 분리하고 국무총리실과 국가보훈처와 함께 ‘정무환경위’로 만드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환경부는 대표적 규제 기관인데 모든 부처를 책임지고 있는 총리실과 합쳐 놓은 정무위에서 일을 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방향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문제도 제기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기에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한 곳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인데 과방위는 ‘(공영)방송’ 문제로 다투느라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며 “기초과학, 산학연 등 문제를 고려해 교육부와 합쳐서 교육과학위를 만들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형창 기자 call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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