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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기사 보도 말 것”… 전두환 정권 ‘보도지침’ 원본 공개

입력 : 2020-06-09 06:00:00 수정 : 2020-06-08 22: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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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 관련 사료 584건 기증 / 표현 등 세부 지침 세워 언론통제 / 정권에 유리한 내용은 부각 설정 / “야만적 정권 실체 국민에 알린 것”

“‘학생의 날’ 앞두고 전국 대학생들 데모 예상. ‘학생의 날’과 관련된 데모 기사 보도하지 말 것.”(1985년 11월2일 보도지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4월 27일 피고인으로 광주지방법원에 출석하고자 법원 청사로 이동하면서 기자들 질문을 받고 있다. 전씨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연합뉴스

6·10 민주항쟁 33주년을 이틀 앞두고 언론 통제의 상징이었던 ‘보도지침’ 원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이 언론 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하달한 기사 작성 지침이다.

 

8일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서울 용산구 옛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에 있는 민주인권기념관에서 기증식을 열고 보도지침 원본 사료 584건을 공개했다. 이 자료들은 1985년 10월19일부터 이듬해 8월8일까지 문화공보부 홍보정책실이 보도 통제를 위한 세부적인 일일지침을 마련해 전화로 각 언론사 편집부 간부에 전달한 보도지침의 원본이다.

김주언 당시 한국일보 기자가 편집국에서 빼내온 보도지침 자료는 고(故) 김태홍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등의 노력으로 1986년 9월 월간 ‘말’을 통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듬해 6·10 항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8일 공개한 1985년 11월2일자 보도지침. ‘학생의 날’과 관련된 데모기사는 보도하지 말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합뉴스

이번에 공개된 보도지침에는 보도 여부를 정하는 가(可), 불가(不可) 등 표현과 함께 보도 방향과 내용, 형식이나 표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포함돼 있다. 예컨대 1986년 7월 검찰의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조사 결과 발표에 대해서는 명칭을 ‘성추행’이 아닌 ‘성 모욕행위’로 표현하고, 사건 성격은 ‘혁명을 위해 성을 도구화’한 것으로 설정하라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반면 정권에 유리할 수 있는 내용의 경우 부각하는 쪽으로 방향 설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986년 4월 19일 ‘대통령 집무실 목민심서가 눈길을 끈다고 쓸 것’을 전달한 것이 그 예다.

 

김 전 기자는 “사건 이후 눈이 가려진 채 이곳 대공분실로 끌려와 40여일 동안 조사받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보도지침을 보고 언론이 정권의 홍보 도구로만 활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보도지침 사건 폭로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신홍범 당시 민언협 실행위원은 “자료를 받은 당시 민언협 간부들은 보도지침이 폭발력이 매우 강한 폭탄이라고 생각했다”며 “야만적인 전두환 정권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도지침 사료는 정리 작업을 거쳐 올해 안에 오픈아카이브(archives.kdemo.or.kr)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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