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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대학가 ‘커닝 소동’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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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6-08 22:13:34 수정 : 2020-06-08 22: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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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강의 못 따라가는 평가 / 기억·암기력 테스트 의미 없어 / 시험방식에도 ‘뉴노멀’ 필요해 / 코로나, 대학에 또 과제물 던져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학생들 답안지에 이모티콘과 함께 그들만의 언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막상 답을 쓰려니 생각이 나질 않는다’며 ㅜㅜ(흑흑) 우는 모습을 그려 넣는 것은 기본이요, 때로는 ‘교수님 예상 문제 적중’이라며 ♡(러브 마크)를 보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곤 했다. 답안지 마지막에 본인 휴대전화 번호를 남기고는 ‘채점하시다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연락주세요’ 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늘어가던 기억도 난다. ‘멘붕’ ‘대박’ ‘갑분싸’ ‘소확행’ 등의 단어가 답안에 섞여 나오는 것에도 이젠 제법 익숙해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非對面)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대학 곳곳에서 학생들이 시험기간 중 ‘커닝’을 시도했다는 기사가 올라오는 걸 보니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온다. 커닝의 영어 표현 ‘cunning’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① 교활한 ② 약삭빠른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험 중 커닝 행위가 발각되면 심각한 부정행위로 간주하여 학칙에 의거해 징계하도록 되어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물론 커닝을 시도한 학생들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 중 들통난(?) 학생들의 커닝 소동 속엔 의외로 신선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온라인 강의에 걸맞은 평가 방식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었어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싶다. 온라인 강의의 장점으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과 더불어 본인의 이해 수준에 맞춰 강의 내용을 반복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이 지목되고 있다. 대신 휴먼 터치의 부재나 학생 통제의 어려움은 단점에 속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커닝은 금물이요 협업도 불허한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문화 지체를 연상시킨다. 물질문명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정신문명이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함으로써 두 문명 사이에 지체(lag)가 발생하듯, 학생들은 온라인 환경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가르치는 쪽에서는 여전히 대면 강의실을 기준으로 지금은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임시방편이라 규정함으로써 발생한 일종의 소동 아니겠는지. 온라인 강의 상황에서는 어차피 기억력이나 암기력 테스트는 의미가 없을 테니, 커닝을 해도 상관없고 협업을 해도 개의치 않을 시험문제를 내는 것이 시험 방식의 “뉴노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앞으로 교실에서 키워야 하는 역량은 영어 단어 C로 시작하는 4가지 능력이라는 유럽의 교육 전문가들 목소리는 우리네 상황에도 적합성이 높은 것 같다. 4가지 C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협력(Cooperation), 창의성(Creativity) 그리고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를 지칭한다. 결국 교실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르쳐주고,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힘도 키워주고, 하나의 정답을 찾아가기보다 자유롭고 유연한 사고를 기반으로 창의력을 연마할 기회를 제공해주고, 판에 박힌 전형적 사고나 다수를 따르는 동조적 사고보다 비판적이고 생산적인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물론 이를 어떻게 실천하고 실행하며 실현할 것이냐는 이제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중지를 모아야 하지만 말이다.

관련해서 학생들의 평가 기준과 관련된 고민도 필요할 것 같다. 평가는 왜 하는지 그 의미를 다시금 정립하고, 온라인 교육 환경에 부응하는 평가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일전에 포항공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당시 김도연 총장으로부터 흥미로운 계획을 준비 중이라 전해 들었다. 포항공대 학생들은 입학 이후 3학기 동안은 모든 과목에 대해 A, B 등급제 대신 ‘통과-탈락’(pass-fail)제를 적용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100세 시대에 20대 초반 대학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평생을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니, 대학 시절에 다양한 전공 분야가 있음을 경험하도록 기회를 주고 싶어서라는 취지였다. 학생들 입장에서 수업의 난이도나 학점 취득 부담 없이 다채로운 과목들을 섭렵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pass-fail제를 도입하되, 20대 초반 성적표에 실패(fail)라는 부정적 단어가 찍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니 이 또한 ‘기록 없음(no-record)’으로 하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앞으로 평가 시스템이 바뀌어 평균 평점이 사라지게 된다면,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는 학생들 실력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 것인지 볼멘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학교 성적은 단지 하나의 능력을 측정하는 지표일 뿐이요, 학교의 우등생이 사회의 우등생은 아닐 수도 있음을.

학생의 발자취가 끊어진 교정을 거닐며 텅 빈 강의실들을 멀리서 바라보자니, 코로나19의 도전 앞에서 대학은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지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넘어 깊은 좌절감이 밀려온다. 어쩌면 이번의 대학가 커닝 소동은 대학을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작은 신호 아닐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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