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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해지는 10대 범죄… “처벌 강화” vs “사회안전망 구축” [뉴스 인사이드 - '촉법소년' 논란 가열]

입력 : 2020-05-30 15:00:00 수정 : 2020-05-30 23: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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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살인사건·무면허 사망사고 등 / 만 14세 미만 강력범죄 해마다 증가 /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에 그쳐 시끌 / ‘엄벌’ 목소리 확산에 13세 미만 추진 / 인권위 “아동발달 특수성 고려” 신중 / 전문가들도 “엄벌해도 효과 없을 것 / 신체·정신적 발달기… 부작용 우려 커” / 해결책으로 교화시스템 등 강화 꼽아

대전에서 나고 자란 조진한(가명·24)씨는 소년원 출신이다. 6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조씨는 길에서 주운 운전면허증으로 렌터카 업체에서 차를 빌렸다. 업체의 신분 검사는 허술했고 비용은 친구들과 나눠 냈다. 조씨는 불법인 줄은 알았지만 걸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당시 경찰은 그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로 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을 쫓고 있었다. 조씨는 유 전 회장을 잡기 위해 전국에서 검문·검색을 강화하던 경찰에게 덜미가 잡혔다.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에게 범행이 발각될 처지에 놓이자 조씨는 이를 무시한 채 가속 페달을 밟았다.

 

경찰의 추격을 받던 조씨는 결국 도로 중앙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나서야 멈춰 섰다. 사고 이후 렌터카 업체, 면허증의 주인과도 합의를 봤지만 조씨는 결국 공무집행방해, 무면허 운전, 공문서부정행사, 점유물 이탈횡령죄 등으로 법원에서 소년원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소년원에서 퇴원한 뒤 조씨는 ‘소년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대학을 진학했고 최근에는 서울을 오가며 임시직·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며 경제적으로도 홀로 설 준비를 하고 있다. 

 

28일 조씨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좌절하고만 있었으면 더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었다”며 “자랑할 기억은 아니지만 그 시기를 견딘 지금은 내가 더 단단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6년 전 조씨가 일으킨 사고처럼 10대의 범죄가 논란이 될 때마다 이들에 대한 처벌이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만 14세 미만의 형사미성년의 연령을 낮추는 등 소년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보다 사회의 안전망을 촘촘히 하고 피해자 지원에 더 많은 자원이 집중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복되는 10대 강력범죄에 처벌 강화 목소리

 

현행 형법과 소년법에 따르면 만 14세 미만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 만 10세 이상부터 14세 미만 형사 미성년자는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으로 처벌을 대신하며, 만 10세 미만은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신체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소년범죄는 처벌 대신 보호·교육으로 다스리자는 취지다.

8살 초등학생을 유괴해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이른바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김모 양과 공범 박모 양. 연합뉴스

최근 청소년이 저지르는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엄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초등학생을 유인해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인천 초등학생 살인사건’, 대전에서 훔친 차를 몰다 대학생 운전자를 숨지게 한 사건, 광주에서 또래 여중생을 집단으로 폭행하고 영상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린 사건 등의 가해자가 모두 10대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형사미성년의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커진 것이다.

 

지난 10년간 청소년의 강력범죄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여성가족부의 ‘2020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2018년 전체 소년범죄자(18세 이하)의 수는 6만6142명으로 2009년의 11만3022명에 비해 41.4%가 줄었다. 하지만 소년범죄 중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5.3%를 차지해 최근 10년간 증가 추세다.

정부도 형사미성년 연령 하향을 추진중이다. 법무부는 2018년 ‘제1차 소년비행 예방 기본계획’을 통해 촉법소년연령을 13세 미만으로 조정하겠다고 밝혔고, 교육부도 올해 초 촉법소년 연령을 만 10세 이상∼만 13세 미만으로 내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처벌 강화는 미봉책이며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처벌 강화가 범죄 줄일까

 

미성년자 처벌 규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2007년에 개정된 소년법은 당시 소년법 적용 상한 연령을 ‘만 20세 미만’에서 ‘만 19세 미만’으로 낮췄다. 19세 범죄자도 보호처분이 아닌 형사처분을 받도록 처벌을 강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개정 취지와는 달리 개정 소년법이 시행된 2009년부터 19세의 형법 범죄자율은 오히려 증가했다. 소년법의 적용을 받는 18세 이하 인구 중 범죄를 저지르는 인구의 비율은 줄었지만 19세의 범죄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서울소년원장을 지냈던 한영선 경기대 교수(경찰행정학과)는 “현재 논의대로 촉법소년 연령이 13세 하향된다고 13세의 아이들이 ‘아 나는 이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하는 애들이 있겠나”라며 “촉법소년의 연령 낮추는 것은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서는 형사책임 최저연령을 12세 이하로 하향하지 말고 더 올리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체적·정신적 발달과정에 있는 청소년에 대한 처벌이 가져올 부작용도 적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소년원 등 보호시설이나 교도소에 머물며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정상적인 교육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소년원에 온 아이 중 대다수가 20세를 전후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산다. 이 비중이 94%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며 “이들이 사회에 좀 더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것이 소년법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이 법을 버리고 성인과 같이 처벌하자는 것은 과거로 회귀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소년법 개정 움직임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소년범죄 예방은 엄벌을 통해 해소되지 않으며 원인과 복잡성, 아동 발달과정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며 형사미성년 기준 하향 안에 대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 안전망 구축과 피해 지원이 근본 해결책

 

전문가들은 대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교화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을 근본적인 방법으로 꼽았다. 최근 ‘소년법강의’를 공동으로 펴낸 현지현 변호사는 “소년범죄는 가정과 사회의 보호가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그 부족이 일시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소년범을 보면 아주 어려서부터 가정의 보호가 미약하다”며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충분한 보호와 양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국가와 사회의 관심,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변호사는 “영유아건강검진비용, 출산·양육수당 등이 최근 들어 지급되고 있지만, 정부가 이외에 미성년자의 양육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며 “프랑스가 담당 공무원을 지정해 가정환경이 아이의 성장에 적합한지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지원하듯 소년들이 필요 최소한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복지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도 “촉법소년의 문제를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은 범죄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는 것”이라며 “교육계에서는 대부분 가정과 학교 교육의 문제이고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본다. 가정에서 발생하는 양육의 공백을 학교나 복지 시스템으로 채워야 한다”고 진단했다.

 

원혜욱 인하대학교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흉악범에 대한 형사처벌은 필요하지만 처벌 강화나 연령 인하는 사회에 적응해서 살 수 있는 청소년들까지 사회에서 배제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또 “청소년들이 에너지를 발산하거나 여가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시설, 프로그램이 있는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한다”며 “사회와 어른이 아이들에게 되레 책임을 지우지 않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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