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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포스트 코로나와 실버타운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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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5 22:26:04 수정 : 2020-05-25 22: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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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고립감·소외감 높이고 / 매일 죽음을 목격하게 만드는 / 실버타운 두고 자성의 목소리 / 노후 공동체 새 모델 준비해야

며칠 전 SNS에서 미국인이 올린 것으로 알려진 가슴 뭉클한 메시지를 보았다. 영문과 한글 번역문이 함께 소개되어 있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만일 코로나바이러스가 노인 대신 어린아이들을 더욱 강하게 공격했더라면, 우리의 엄마와 할머니들은 자녀와 손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뒤로 댓글 행렬이 이어졌는데 ‘우리 젊은이들에게 꼭 읽혔으면 좋겠다’는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 횟수가 꽤 많았던 기억이 난다.

자가 격리나 이동 제한 같은 봉쇄정책 대신 인구의 60% 이상이 면역력을 갖게 되는 것을 목표로 집단면역을 시도했던 스웨덴의 실험이 처참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소식을 접하자니, 코로나19는 노후 부양(扶養) 및 요양(療養)과 관련해서도 보다 새로운 모델의 탐색을 요구하고 있구나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물론 코로나19 이후의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언택트나 비대면(非對面) 등을 완전히 새로운 움직임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은 이들 키워드가 이미 미래의 트렌드로 부상 중이었는데, 코로나19가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예상보다 앞당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돌아보니 노후를 위한 삶의 양식과 관련해서도 선진국에서 시도했던 실버타운 모델이 기대와 달리 이런저런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다양하고도 신선한 대안들이 다각도로 모색 중인 상황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실버타운의 인기가 시들해진 몇몇 이유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무엇보다 실버타운에 입주한 노인들의 고립감과 소외감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실버타운은 공기 맑고 소음이 없는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하다 보니, 처음에는 친지들 방문이 종종 이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찾는 사람의 발길이 확연히 줄어드는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연령대가 비슷비슷한 노인들이 함께 생활하다 보니 실버타운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 일상이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생애주기의 마지막 단계로 갈수록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 가장 큰 스트레스로 작용함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실버타운에 가 봐야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어 가고 싶지 않다”는 고백이 이어지면서, 실버타운의 인기도 함께 하강해 갔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가 하면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자신에게 익숙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친숙한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바람직하다는 전문가 조언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실버타운에 들어가면 낯모르는 이들과 단체생활을 하면서 어색함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도 한계로 지목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에 관한 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실버타운식 모델에 대해서는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례로 노인 대상 복지 서비스의 내용이 지나치게 표준화되어 있거나 때론 획일화되어 있어, 개개인의 유니크한 삶의 자취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로 지목되고 있다. 더불어 국가 차원의 정책 수단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탈상품화’된 영역의 특권이라 할 애정과 친밀성을 주고받는다든가, 이타적 희생과 헌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일정한 한계가 따른다는 점도 반성을 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최근 유럽에서는 노인을 위한 시설을 지을 때 공기 좋고 땅값 싼 곳 대신 교통이 편리한 도심지나 어린이집 가까운 곳을 선택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린이집 가까이 노인 시설을 짓는 배경에는 과거의 ‘세대분절적’ 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세대통합적’ 모델을 추구함으로써, 다양한 세대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딪치며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세대통합 및 세대공존을 지향하는 모델이 환영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일본에서도 노인 집단거주 시설을 지양하고 남녀노소 다양한 배경과 사연을 지닌 이들이 거주공간을 공유하는 셰어하우스가 등장하고 있고, 특별히 간호를 요하는 노인을 위한 소규모의 맞춤형 셰어하우스도 서서히 확산되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 또한 65세가 되면 실버타운으로 입주하는 대신 자신이 살던 집에 계속 머물면서 전문 요양사로부터 간호를 받는 모델이 아직은 시작 단계에 있으나 원하는 노인층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노인들을 위한 집단 주거 양식이나 요양원 모델은 감염에 관한 한 매우 취약한 환경임이 확인되었다. 그럼에도 포스트 코로나19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후 생활양식에 대한 대안적 모델 논의가 상대적으로 희소함은 노인들의 사회적 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바이러스는 대상을 가리지 않은 채 공평하게 공격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세대별 치명률에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 만큼 노년기의 격조 있는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치명적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노후 공동체 모델을 준비할 때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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