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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긴장과 자유로움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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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22 22:07:22 수정 : 2020-05-22 22: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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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피사로의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

이 그림은 카미유 피사로가 파리의 한 호텔에서 내려다본 ‘해질 무렵 몽마르트르 거리’의 모습이다. 차도에는 마차들이 가득하고, 인도에는 사람들이 넘쳐흐른다. 하루 일을 마치고 각자가 다시 바쁜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 서두르는 부산한 모습이다. 싱그러운 가로수의 녹색으로 보아 지금 같은 초여름의 거리 풍경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피사로는 이 모든 것을 나타내는데 어떤 윤곽선이나 원근법적 구도도 사용하지 않았다. 몽마르트르 거리임을 알 수 있는 특징적인 모습들도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의 형태조차도 구분되지 않는다. 해가 질 때 볼 수 있는 빛과 색의 변화와 그때의 분위기만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입체감은 사라졌고, 색 조절로 어렴풋이 나타낸 거리감과 색 간의 뉘앙스가 그림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왜 이런 효과가 나타난 걸까. 모네와 함께 인상주의에 가담했던 피사로는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순색 물감의 붓 자국들이 화면 위에서 동등한 가치를 갖도록 사용했다. 가까이서 보면 색 점들을 나열한 것처럼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색 점들이 혼합해서 형태감을 만들어 내는 ‘색채분할법’이라는 표현방법이다.

이 방법 때문에 그림에서 윤곽선과 형태보다 색채의 효과가 강조됐고, 평평한 표면의 느낌도 가져왔다. 이전 그림들이 입체감을 위해서 어느 부분은 강조하고 다른 부분은 위축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피사로는 시각적 인상을 담기 위해 모든 부분의 색들을 동등하게 다루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랑, 녹색, 주황, 빨강 계통의 색들이 중심을 이루며 색 간의 조화와 뉘앙스가 두드러졌다.

화사한 날씨와 생명이 움트는 자연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봄날은 지나간다. 이번 주부터 고등학생들이 등교를 시작했다. 집에만 있으면서 답답해했던 아이들이 조심스럽게 기지개를 켜고, 각자 바쁜 학교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오래 묶인 생활 속의 긴장과 다시 맞은 자유로움이 조화를 이루며 피사로의 그림처럼 생기 있는 삶의 뉘앙스가 만들어졌으면.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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