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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각 혜택” “오진 가능성”… 원격의료 논의 재부상 [심층기획]

입력 : 2020-05-18 06:00:00 수정 : 2020-05-17 20: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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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도화선… 도입 탄력 붙나 / 현행 의료법상 금지 / 2002년 만성질환자 대상 시범사업 추진 / 의료법 개정안 번번이 국회 통과 실패 / 정부, 감염병 확산 후 다시 추진 힘 실어 / 찬반 논쟁은 여전 / 정부 “소외지역·거동 불편자 진료 유용” / “모니터링 수준 불과… 초기 진단 늦어져 / 대형병원 쏠림” 의료계·시민단체 반발 / 장단점 종합적 분석… 도입 결정 바람직

원격의료는 국내에서 아주 오래된 논쟁이다. 2000년대 시범사업을 시작했으나 수십년 동안 제자리였다. 그러던 것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도입 논의에 탄력이 붙고 있다. 병원을 갔다가 감염병에 걸릴 위험이 커지면서 필요성이 제기됐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과거의 진료체계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산업계에서는 한국의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하면 경쟁력이 있는 분야라며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환자 건강권 침해를 우려하며 반발하는 의료계 목소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전화상담·처방 26만건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의료법상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의료법 34조는 의료인이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먼 곳에 있는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환자와의 소통이 아니다. 2002년 의사-의료인 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2010년, 2014년, 2016년 세 차례 원격의료 허용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통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의료 취약지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 관리를 위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19로 분위기는 달라졌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진료와 처방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수요가 많아졌다. 만에 하나 고령자나 만성질환자가 병원에 갔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면 위험한 상황에 이를 수 있어서다.

정부는 2월24일부터 한시적으로 전화상담을 허용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일까지 전화상담·처방 건수는 26만2121건에 이른다. 1차 의료기관인 동네의원이 10만6215건으로 가장 많다. 강원도 규제자유특구에서 원격의료 시범사업 참여 병원은 지난해 1개에 불과했으나 코로나19 이후 8개로 늘었다. 이들 병원은 이달 말부터 원격의료 실증사업을 진행하게 됐다.

 

원격의료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이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구직자 346명을 대상으로 원격의료에 대한 생각을 조사한 결과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67.3%, 부정적이 32.7%였다.

정부에서는 원격의료 추진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비대면 의료서비스나 온라인 교육 서비스 등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주목받는 분야를 발굴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도 지난 13일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허용한 전화상담진료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10대 산업 분야 규제혁신 방안’에 원격의료가 포함됐다.

◆찬반 주장 평행선

원격의료는 반복적인 처방이 이뤄지는 환자나 이동이 불편한 환자의 진료에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다. 고혈압, 당뇨 등 평생 비슷한 약을 반복적으로 복용하는 경우 환자가 스스로 혈압이나 혈당을 측정하고 의사와 원격으로 상의해 처방하는 식이다. 의료시설이나 인력이 부족한 소외지역도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산업적 측면에서는 원격의료에 필요한 시스템, 기술을 해외 판매한다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성장동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원격의료 도입은 첨단 의료기기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내고 “원격의료는 대면진료를 대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진료의 질을 담보할 수 없어 그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과 건강과대안 등 50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코로나19 사회경제 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원회’도 “안전과 효과가 증명되지 않아 추진되지 못한 대표적인 의료영리화가 원격의료”라며 반대했다.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을 찾은 한 시민이 선별진료소에서 영상·로봇을 통해 상담받고 있다. 명지병원은 병원 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선별진료소에서 지난 2월부터 원격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명지병원 제공

의료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오진 가능성이다. 원격의료는 모니터링 수준에 불과하기에 자칫 초기 진단이 늦어지고 치료 기회를 놓치면 환자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도 불분명하다.

또 일단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시스템은 발전하고 복잡해질 것이다. 결국 자금동원력이 있는 병원과 그렇지 못한 병원 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좋은 원격의료 시설을 갖춘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이 심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환자의 개인정보보호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찬반이 팽팽한 만큼 원격의료 도입은 신중해야 할 문제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김강립 차관은 중대본 브리핑에서 원격의료 도입에 대해 “원격의료를 통한 긍정적인 측면과 우려되는 사항을 종합적으로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앞서 원격의료를 도입한 중국이나 일본도 초기에는 만성관리와 처방을 중심으로 시작해 치료가 필요한 대상으로 확대했다. 홍윤철 서울대병원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토론회에서 “원격의료는 1차의료 강화를 위한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공공의료가 플랫폼을 지역의료에 주고 1차의료기관 등 지역의료기관이 책임 의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선 어떻게

 

해외는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의료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해 프랑스, 독일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도입한 상태다.

 

17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미국의 원격의료시장 규모는 28억7870만유로(약 3조8160억원)에 이른다. 중국이 13억6700만유로, 독일 4억9130만유로, 일본 3억9710만유로, 프랑스 3억5450만유로 등이다.

 

미국은 주별로 원격의료를 순차적으로 도입했고, 연방정부 차원에서 1997년 법이 제정되면서 본격 도입됐다. 일부 항목은 ‘메디케어’를 통해 보험급여를 적용하기도 한다. 전자장치를 통해 환자의 건강정보를 의사에 전달, 환자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살펴보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환자의 의료 정보를 주치의가 전문의에게 보내 논의하기도 한다.

 

한 병원에서 원격으로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일본은 20여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원격의료를 확대해왔다. 1997년 특정 질환과 지역을 대상으로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를 처음 허용했다. 2015년 지역 제한을 없앴고, 재진환자로 원격의료 허용대상을 확대했다. 2018년에는 건강보험 적용을 시작했다.

 

중국은 일본보다 앞선 2014년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했다. 지역별로 의료기관이 불균형하게 분포해 있고, 의료 인력은 부족한 상황 등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환자는 지역 보건소 또는 약국에서 화상으로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처방을 받을 수 있다. 중국 최대 온라인 헬스케어 플랫폼 핑안굿닥터는 지난해 가입자 수 3억명을 넘었고, 코로나19 사태 후 11억1000명으로 증가했다. 의사 수백명을 포함한 자체 의료진 1000여명과 인터넷병원 2개, 3000여개 협력 병원 등과 연계해 온라인상담, 원격진료, 처방, 병원 예약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에는 이외에도 알리헬스, 위닥터 등 원격진료 플랫폼이 운영되고 있다.

 

유럽국 중 프랑스는 공중위생법에 근거, 원격의료를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의료행위로 규정하면서, 원격진료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부족한 의사 수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원격의료 범위는 진찰, 만성질환 감시 등 질병의 진단에 한정돼 있다. 프랑스는 올해 모든 복지시설과 의사 부족을 겪고 있는 지역에 원격진단 장비를 설치할 계획이다.

 

독일은 주의사협회가 결정하기에 주마다 허용 여부가 다르다. 연방의사협회는 2015년 사전에 대면진료가 있었다면 재진일 경우 원격의료를 허용했다. 2018년 바이에른주 등은 초진도 원격진료를 할 수 있게 했다.

 

유럽국 중 스페인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은 한국처럼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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