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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재택근무와 가사분담의 함수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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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5-11 22:44:55 수정 : 2020-05-11 22: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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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속 집안일은 누가 할까 /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내 가뭄’ / 가족 간 돌봄 가장 중요한 기능 / 책임 나누고 의무는 공유해야

코로나19가 우리네 삶 속에 ‘새로운 표준’(뉴노멀)을 가져오리라는 데 이견(異見)은 거의 없는 듯하다. 이제 재택근무는 언택트(비접촉)와 온라인이 대세로 부상한 상황에서 일상 속으로 빠르게 진입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너도나도 재택근무를 하게 될 경우 집안일은 누가 하고 아이들 돌보는 일은 누가 맡게 될 것인지, 진정 ‘그것이 알고 싶다’.

지금까지의 재택근무 관련 연구를 보면 여성의 경우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일 가정 양립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는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일과 가사 및 육아의 구분이 없어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된다’는 의견도 있고, ‘직장생활의 의미 중에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무시하기 어려운데 고립된 채 혼자서 일하니 소외감을 느낀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성과 평가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인사고과 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불안하다’는 호소도 빈번하게 들려온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반면 남성의 입장에서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상황에 떠밀리기보다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 만큼 일에 대한 자율성과 통제력이 높아진 것 같다’ ‘일과 라이프의 통합 및 조화(blended)가 용이하기에 만족스럽다’는 등 여성에 비해 긍정적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9년 미국 버클리대 사회학과의 앨리 혹실드 교수가 발표한 ‘2교대제’(second shift)는 독자들로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성은 남성과 똑같이 근무한 후 집에 돌아와 다시 2교대제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책의 핵심내용인데, 덕분에 1년이면 13개월을 일하는 셈이 된다는 것이었다.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페미니즘 운동 당시 여성들은 머지않아 여성해방과 양성평등의 실현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일도 해야 하고 가족도 돌보아야 하는 이중역할 부담에 시달리면서 “지연된 혁명”에 머무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27년이 지난 2016년 호주의 정치 평론가 애너벨 크랩의 ‘아내 가뭄’이 발표되었다. 일명 ‘가사노동 불평등 보고서’라 할 이 책은 일하는 여성에겐 남성과 마찬가지로 아내가 절실히 필요함을 흥미진진하게 증언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아내 가뭄을 겪고 있는 여성의 현실 앞에서 ‘호주 여성도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보며 아내 가뭄은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더욱 실망하고 좌절했다’는 의견의 뒤를 이어, ‘성공한 정치 평론가도 아내 가뭄을 겪는 걸 보면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게 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아내 가뭄에 등장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의 가사분담 시간은 부인의 취업 상황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여성의 취업률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동안에도 남성의 가사분담 시간은 거의 제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건 여성의 임금 수준이 높아질수록 가사 참여 시간이 점차 감소하다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다시 올라가는 패턴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여성 스스로 남편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가사에 더욱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애너밸 크랩은 기존의 가사노동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까지는 어느 누구도 남성들에게 앞을 향해 달리라고 채찍질만 했지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는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 생계 부양자라는 부담을 지우기만 했지 그 부담을 나누어도 좋고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엄마 아빠들이 함께 집에 갇혀(?) 있는 동안 아내 가뭄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서구에 비해 가사 참여 시간이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 상황을 반추하고 싶은 마음에 말이다. 먼저 들려온 소식은 배드 뉴스에 가까웠다.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으니 삼시 세끼 차려주느라 고생이다’, ‘식사는 배달로 해결하거나 간편식으로 때울 수 있고, 집안 청소는 청소기에 맡기거나 게으름을 피울 수도 있지만, 육아는 여전히 나 홀로 해야 하니 답이 없는 현실이 너무 우울하다’ ‘지금은 양가 어머님들께 맡길 수도 없고 타인에게 맡기기도 찜찜하고 전업주부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 보다’ 등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물론 배드 뉴스만 들려온 것은 아니었다. ‘오래간만에 집에서 아빠 노릇을 해보니 의외로 보람을 느낀다’ ‘회식이다 야근이다 늘 시간에 쫓기듯 살았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알았다’ ‘위기를 겪고 보니 남는 건 가족뿐. 이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에 더욱 신경을 쓰고 싶다’ 등의 고백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코로나19로 인해 향후 집은 사무실과 학교와 여가 공간의 또 다른 이름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그 집에서는 가족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서로의 돌봄과 보살핌이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 핵심적 기능이 오롯이 여성만의 책임일 수는 없을 터. 엄마와 아빠가, 아내와 남편이 가족 모두를 위해 책임을 나누고 의무를 공유하는 그 집을 기대해 본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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