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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 피해자, 56년만에 재심 청구

입력 : 2020-05-04 23:00:00 수정 : 2020-05-04 19: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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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시도 남성 혀 깨물었다고 억울한 옥살이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가해자 혀를 깨물었다가 중상해죄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의 피해 여성이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다. 

 

4일 부산여성의전화에 따르면 해당 사건의 피해자 최말자(74)씨는 오는 6일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예정이다.

 

최씨는 18살이던 1964년 5월 자신의 집에 놀러온 친구들을 데려다주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당시 21살이던 노모씨를 만났다. 위협을 느낀 최씨는 친구들부터 집에 보내야겠단 생각에 노씨를 다른 길로 가도록 유인했다. 그러자 노씨가 돌연 최씨를 쓰러뜨려 성폭행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최씨는 노씨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 노씨의 혀는 1.5㎝가량 절단됐다.

이듬해 최씨는 부산지법 형사부(재판장 이근성)에서 중상해죄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6개월간 옥살이도 했다.

 

최씨는 당시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를 견디며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반면 가해자인 노씨에게는 강간미수 혐의조차 적용하지 않았다. 노씨는 성폭력을 가한 뒤 최씨의 아버지 집에 침입해 협박한 특수주거침입과 특수협박 혐의만 적용됐다. 노씨는 최씨보다 적은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법정에서도 2차 피해가 이어졌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법원은 최씨에게 “처음부터 피고에게 호감이 있었던 게 아니냐”, “피고와 결혼해서 살 생각은 없는가”라고 되묻는 등 심각한 2차 가해를 했다.

 

최씨는 재판이 끝난 후 서너달동안 집밖에 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방을 구해 혼자 살았고, 계속되는 결혼 권유에 떠밀리듯 결혼한 뒤 곧 이혼했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법원 100년사를 정리하며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됐다. 정당방위를 다툰 대표적인 판례로 형법학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당시 학계에서도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최씨는 2018년 미투 운동이 한창일 때 용기를 얻어 부산여성의전화와 상담했고, 올해 재심청구를 결심했다. 

 

최씨와 변호인단, 부산여성의전화는 6일 재심 청구에 앞서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고순생 부산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당시에는 가부장적 사회 분위기에서 최씨처럼 한을 품고 살아온 여성이 많을 것”이라며 “이런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고 당당하게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최 씨가 56년 만에 재심 청구를 결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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