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일째 잠행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관련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만 말할 수 없다고 재차 밝혀 김 위원장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위원장의 신변이상설에 대한 질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서도 "당장은 이야기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난 모든 게 잘 되길 바랄 뿐"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7일에도 김 위원장의 상태에 대해 "무척 잘 알고 있지만 지금은 얘기할 수 없다"며 관련 소식을 "곧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에 따르면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센터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말 김 위원장의 상태에 대해 뭔가를 알고 있다면, 지금 수준의 언급에 그치지 않고 정책이 나왔을 것"이라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특별한 정보가 없다고 했었는데, 그게 더 중요한 이야기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9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과 관련해 "우리는 (4월 11일후) 그를 보지 못했다"며 "관련 보도에 대해 오늘 특별한 정보가 없으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발언의 방향성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쓰기 보다는 방향성을 봐야하는데, 김 위원장 관련 정보를 알고 있고, 건강하기를 바란다는 부분이 핵심"이라며 "해석에 따라 건강에 문제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 정부는 특이동향이 없다는 입장인데, 정부 판단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한미 간 정보공유를 할텐데 입장의 결이 조금 다른 것은 우려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중은 70년대에도 한반도 관련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최고위급 간 정보공유를 해왔다"며 "이번에도 정보공유가 있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뭔가를 알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내 동향도 김 위원장 신변에 대한 의구심을 더하는 요인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회의를 주재한 모습을 공개한 후 20일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다. 지난 15일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지 않으면서 그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지난주 한·미, 미·일 연합훈련이 전개됐고 '죽음의 백조'로 알려진 B-1B 랜서폭격기가 한반도 주변에서 훈련했는데도 북한의 반응이 없었던 것 역시 이례적이다. 북한은 지난 4·27 판문점선언 직후인 지난 2018년 5월 한·미 공군이 맥스 선더 연합 공중훈련을 실시하자 남북 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했다.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노(牧野愛博) 일본 아사히신문 편집위원은 지난 29일 주간지 겐다이비즈니스 온라인판 칼럼에서 '평양과 연락이 닿는 고위 탈북자'를 인용, "최근 북한 조선노동당과 각 기관에 (김 위원장) 친필이 들어간 '1호 제의서'가 내려오지 않고 있다"며 "김 위원장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일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달 21일 김 위원장이 지방에 머물고 있고, 건강이상설을 뒷받침할 아무런 특이동향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힌 이후, 이날도 북한 내부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재확인했다.
외교부는 지난달 28일 한미북핵수석대표 협의에서 북한 내 특이 동향이 없다는 데 이견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같은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북한 내부에 특이동향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 보도와 맞물려 김 위원장 유고 시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CRS는 지난 29일 북미관계를 업데이트한 보고서에서 "36세의 김 위원장은 수년간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10살 미만의 세 아이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명백한 후계자는 없다"고 밝혔다.
CRS는 "김 위원장이 사망하거나 질병으로 정상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누가 그를 이을지 명확하지 않다"며 김 제1부부장을 가장 가능성이 큰 인물로 꼽은 뒤 "그녀는 정상 외교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러나 분석가들은, 특히 오빠(김 위원장)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받지 못한다면 여성이 지도자가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도 밝혔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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