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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의세상보기] 포스트 코로나19, 가족은 건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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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27 22:42:03 수정 : 2020-04-27 22: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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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겪으며 ‘집콕’ 생활 / 새삼 가족의 의미·가치 되새겨 / ‘가족의 건강성’ 관심 높아질 것 / 이웃·공동체의 중요성도 실감

이제 이틀 후면 5월이다. 앞으로 세상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무성한 가운데, 가족은 과연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변화의 무풍지대로 남게 될 것인지) 진정 궁금하다.

최근 코로나19를 주제로 갤럽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를 받아 보니 가족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점이 눈에 뜨인다. 18개국 성인 1만778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한 결과인데 “자신이나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두렵다”는 항목에 동의하는 비율이 국가별로 무시하기 어려운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특별히 한국은 이 항목에 대해 3월 조사에서 동의율 87%, 4월 조사에서 89%를 보여 인도네시아의 3월 90%, 4월 93%의 뒤를 이어 2위를 기록했다. 3월 조사에서 28개국 평균이 67%요 4월 조사에서 18개국 평균이 75%임을 고려할 때 월등하게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코로나19의 가족 감염을 두려워하는 비율이 높은 국가로는, 인도네시아 한국 이외에 필리핀, 아르헨티나, 태국이 포함되어 있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디지털 테크놀로지 혁명 등을 위시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주장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가족이 변화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를 지지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이 충돌하거나, 왠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었음을 고려할 때, 코로나19 이후 가족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것 또한 만만한 작업은 아닐 것이다.

가족이 계속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는 주장은 가족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전통가족과 비교해 볼 때 오늘날은 가족 및 친족의 범위가 축소되었고, 가장의 특권 및 권위가 약화되었으며, 부계 혈연중심주의도 퇴색하고 있고, 번화했던 가족의례도 간소화 내지 생략의 길을 걷고 있다.

가족의 쇠퇴를 야기시킨 원인으로는 무늬만 남은 가부장제가 지목되기도 하고, 남녀를 불문하고 자기 이해관계에 충실한 경제행위자로 환원시키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주범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런가 하면 가족의 쇠퇴를 오히려 긍정적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는 입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금까지 가족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고 성장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는 점에서 가족의 쇠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은 흔히 사회질서의 근간이자 마지막 보루라고 인식되어 왔지만, 가족이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질서가 과연 정의롭고 공정하며 사람 냄새로 가득한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계급 및 성별 불평등을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주체가 가족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하리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유럽 복지국가에서 실천 중인 ‘공공가족’(public family:국가가 사회복지기능을 통해 가족 안의 약자를 돌보는 시스템)은 새로운 가족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이 또한 2% 부족하다는 점에서 보완이 필히 요구됨은 물론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집콕’ 혹은 ‘방콕’ 생활을 하는 동안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나 당연시해 왔던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빈번히 전해 들었다.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거품을 거두어내고 내게 정말 의미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리가 되었다’ ‘새삼 가족의 의미와 부부, 부모자녀의 가치를 되새겨보게 되었다’ 등등.

이렇게 보면 가족은 코로나19 위기 이후에도 건재할 것 같다. 단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만큼 가족의 건강성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일찍이 가족의 건강성에 주목했던 학자들은 건강한 가족의 특징으로 구성원 간의 원활한 소통, 자녀와 노인을 위한 세심한 돌봄과 배려, 위기 극복 및 문제 해결 능력, 다양하고 폭넓은 사회적 지원망 등을 들고 있다.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조직을 빼닮은 듯하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건강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역량을 키우고 실천하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건강한 가족이란 갈등이 없는 가족이 아니라 갈등을 잘 해결하는 가족’이라는 전문가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하다고 해서 우리 가족만 안전지대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 가족의 노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 또한 아님을 코로나19는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처음에는 무력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야말로 이웃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된 만큼, 가족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담을 높이 쌓은 채 고립되기보다 이웃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서로 의지하는 것이 보다 현명한 전략이 될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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