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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팬데믹 시대 공연 무대의 새로운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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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24 22:03:51 수정 : 2020-04-24 22:0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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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 온라인 콘서트 ‘원 월드’ / 슈퍼스타들 화려한 조명도 없이 / 가정에서의 수수한 모습 그대로 / 공연 패러다임 바꾼 시작 아닐까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첼리스트 야노스 슈타커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이 거장은 이천 석에 가까운 커다란 무대 위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서, 첼로 한 대만으로 관객들을 경이로운 예술의 세계로 안내했다. 당시 프로그램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었는데, 첼로 한 대만으로 그 넓은 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 걱정도 있었지만, 막상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선율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첼로 소리만 빼자면 정적에 가까운 순간이지만, 그 사이를 연주자의 심호흡 소리, 연주자의 발 구르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알르망드에서 쿠랑트로 넘어가는 사이,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관객석에서는 조심스레 그새 참았던 기침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기침 소리?

황우창 음악평론가

코로나19가 열어놓은 팬데믹 시대에서는 상상을 할 수 없는 일이다. 무대와 객석이 교감하는 문제가 아니라, 폐쇄된 공간 속 객석에 모인 관객들이 서로를 경계하며 기침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공연이라는 예술 행위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밀폐된 공간이 협소할수록, 사람들이 밀집한 상태에서 많이 모일수록 더욱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계 각지에서 실시하고 있는 지역 봉쇄와 국경 폐쇄,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조치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당분간 기대할 수 없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문화계 역시, 관객들과 아티스트들이 소통하는 공연 현장은 당분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연주 또는 퍼포먼스란 얼굴을 맞대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무대 위의 연주자와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들이 소리를 통해 교감하고 공감하는 행위로 완성된다.

1985년 라이브 에이드를 다시 보자. 아니면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마지막 30분을 찾아봐도 좋다. 무대 위의 가수가 관객들의 합창을 유도하는 장관은 클래식 공연장에서 볼 수 없는 대중음악 무대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 장면을 더 이상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른바 비대면 시대에서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문화일까.

우리나라 시각으로 지난 19일 오전 9시, ‘원 월드: 투게더 앳 홈’이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콘서트가 진행되었다. 코로나19 때문에 포기했어야 할 공연 문화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지, 어쩌면 팬데믹 시대 속 공연 문화에 관한 해법 가운데 많은 화두를 던진 이벤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던 ‘라이브 에이드’가 에이즈 퇴치 기금 마련 자선 콘서트이자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가수들과 연주자들이 한데 모인 자선 행사였다면, 원 월드 투게더 앳 홈 콘서트는 코로나19를 이겨내기 위한 세계 각지의 가수들과 연주자들, 그리고 대중문화 스타들이 온라인으로 모인 기금 모금 콘서트였다. 그전까지 스트리밍을 통해 공연을 중계하는 시도는 간간이 존재했지만, 이번 원 월드 투게더 앳 홈 콘서트처럼 대규모로 진행된 적은 없었다. 보는 관점에 따라 각자의 집에서 온라인으로 인사하고 노래하는 것으로 진행된 쇼였으니 콘서트로 보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팬데믹 시대에 가수들과 대중문화 스타들이 제안한 또 다른 문화 플랫폼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무엇보다도 화려한 조명과 의상, 관객들의 함성 등 우리가 대중문화 공연장에서 기대하거나 익숙했던 모습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일반 대중들과 똑같이 코로나19를 맞이하는 슈퍼스타들의 수수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들도 우리와 똑같이 팬데믹 시대를 이겨내기 위한 글로벌 이웃들이라는 사실. 분장도 의상도 없이 자택 앞마당에서, 작업실 안에서, 거실에서 노래하던 가수들은 어쩌면 공연 문화라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또 다른 시작이 아닐까. 물론 인류가 대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뭉쳤다는 숭고한 의도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사실이다. 가장 단순한 구조를 지니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생명체인 바이러스가, 인류 예술 행위의 최첨단 플랫폼 실행에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도 잊지 못할 역설로 보인다.

 

황우창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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