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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돌봄 안되는 ‘온종일돌봄’… 맞벌이부부는 퇴사 고민중

입력 : 2020-04-04 18:00:00 수정 : 2020-04-04 23: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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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 드러난 정부 돌봄정책 / 2019년 기준 6117개 초교 돌봄교실 운영 / 대개 운영시간 학기 중 오후 5시 한정 / 돌봄 ‘사각지대’ 해소 학부모에 떠넘겨 / 코로나 이후 이용 신청 2.2%에 그쳐 / 공적돌봄 관련 학교 역할 합의 불분명 / 교사단체 “돌봄 지자체로 이관” 주장

“저도 퇴사를 고민하고 있어요. 이게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5세 자녀를 둔 직장인 A(31)씨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유치원 휴업이 한 달이 넘으면서 주변에서 직장을 그만뒀다는 엄마가 꽤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10일까지 쓸 수 있는 가족돌봄휴가도 이미 다 쓴 상태였다. A씨는 “2차 개학 연기로 예정됐던 지난달 23일에 맞춰 가족돌봄휴가를 썼는데 또 추가로 2주 연기되고 최근 4차 휴업으로 무기한 연기까지 되면서 답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유치원생과 함께 돌봄이 필요한 초등 1∼2학년 또한 현재 오는 20일까지 개학이 미뤄진 상태다.

사실 A씨는 1차 개학 연기 이후 유치원이 운영하는 긴급돌봄을 이용하려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올해 입학한 A씨 자녀가 적응을 어려워한 데다 유치원 측이 긴급돌봄을 오후 5시30분에 종료한다고 안내한 사정이 있었다. A씨는 “아무리 늦어도 오후 6시까지는 하원시켜야 된다고 하는데, 저희 부부 모두 일을 하는 터라 맞추기가 어려웠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3월 초 긴급돌봄을 오후 7시까지 운영하는 걸 원칙이라 밝혔지만 현장에선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퇴사를 고민하는 A씨 모습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드러낸 우리 정부 돌봄정책의 ‘민낯’을 보여준다. 그간 문재인정부가 ‘온종일돌봄’이란 구호 아래 공적돌봄 공급량을 매해 늘려왔지만 정작 맞벌이 부모가 받아든 건 ‘한시적돌봄’에 지나지 않았단 사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이다.

◆돌봄 공급 늘어도 ‘사각지대’ 여전

현재 정부는 2022년까지 이용 아동 53만명을 목표로 공적돌봄 공급을 늘리고 있다. 정부가 추정하는 맞벌이 돌봄 수요는 최대 64만명이다. 3일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공적돌봄 중 60∼70% 비중을 차지하는 초등돌봄교실의 경우 2016년 4월 말 기준 운영 학교 수가 5998개교에서 지난해 6117개교로, 돌봄교실 수도 같은 기간 1만1920실에서 1만3910실로 증가했다. 자연스레 이용 학생 수도 늘어 지난해 30만명 가까이가 됐다.

이렇게 커가는 돌봄 역량이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학교 장기휴업 앞에선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교육부가 긴급돌봄 운영시간을 연장한 뒤 진행한 수요조사에서 초등학교 신청인원은 6만490명으로 전체 인원 대비 2.2%에 그쳤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13세 미만 자녀가 있는 근로자 5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휴업 중 돌봄 방법으로 ‘조부모·친척’이라 답한 비율이 42.6%, ‘부모 직접’ 또한 36.4%인 반면 긴급돌봄은 14.6%에 불과했다. 돌봄교실을 통한 집단감염 우려가 이런 저조한 신청률의 배경이란 게 교육부 측 입장이지만 부모들 사이에선 다른 의견이 나온다. 인천에 사는 초등학생 1학년생 학부모 B(37)씨는 “맞벌이를 하는데 학교에서 저녁까지 남는 아이는 거의 없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길래 긴급돌봄을 이용하고 있지 않다”며 “이제 오전에만 친정에 맡기고 오후에는 학원을 보낸다”고 말했다.

휴업이 종료되면 그나마 연장됐던 돌봄교실 운영시간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대개 초등학교 운영시간이 학기 중 오후 5시, 방학 중 오후 1∼3시까지다. 이 경우 맞벌이 부모 퇴근시간까지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정부는 ‘다함께돌봄’(지역 내 공공시설을 이용한 돌봄) 등 ‘학교 밖 돌봄’을 연계해 보완한다는 구상이지만, 실제 부모들은 그 번거로움을 피해 하교도우미·학원 등 사적 돌봄에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알고 있지만 ‘학교 안 돌봄’으로 모든 수요에 대응할 순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일부 지역이 아파트 단지 내 공간에서 돌봄을 제공하는 등 좋은 사례도 하나씩 나오고 있다”며 “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가 평상시 오후 7시까지 돌봄교실을 운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걸 알지만 인력, 공간 등 부족에 따른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학교 역할에 대한 합의 부재

학교 안 돌봄이 제한적으로 운용되는 건 단지 물리적 여건 때문만은 아니다. 공적돌봄 관련 학교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불분명한 현 상황이 그 근본 배경에 있다. 정부는 공적돌봄을 확대한다는 차원에서 초등돌봄교실 이용 대상을 1∼2학년 위주에서 전 학년으로 확대하는 등 학교 역할을 강화하려 하지만 많은 학교, 교사들은 이런 움직임에 반대한다. 학교의 핵심 기능은 ‘교육’이지 ‘돌봄’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교사단체 대부분이 기본적으로 “보육활동인 돌봄은 장기적으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전교조 관계자는 “지금 같은 비상상황 중 긴급돌봄 운영에 교사들이 동참하는 건 분명 필요한 일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온종일돌봄 정책에 대해선 반대하는 입장인데, 왜냐하면 그 정책 내용이 결국 학교 내 돌봄을 확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 내 돌봄 기능이 커지면 결국 학교가 책임져야 할 부분 또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제한된 자원이 돌봄 쪽으로 분산돼 본래 기능인 교육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광주 서구 광천초등학교 돌봄교실에서 초등학생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뉴시스

학교 내 돌봄에 대한 법적 근거 또한 현재 불분명하다. 돌봄교실의 경우 유아교육법이나 초·중등교육법에서 그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방과후학교 사업 중 하나로 교육부 고시인 초·중등교육과정총론 중 ‘학교는 학생·학부모 요구로 방과후 학교 또는 방학 중 프로그램을 개설할 수 있다’는 내용에 근거할 뿐이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관할 돌봄사업의 경우 각각 아동복지법, 청소년기본법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6년 관련 조항을 신설해 ‘초등학교의 경우 돌봄활동 위주의 프로그램을 포함한다’는 내용을 명시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최근 긴급돌봄 관련 운영시간, 중식 제공 여부 등 학교 현장 혼선 배경으로 법적 근거 부재를 꼽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전교조 대전지부는 성명을 통해 “현행 돌봄교실은 그 어디에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사실상 ‘전 교직원의 협력으로 긴급 돌봄을 운영하라’는 교육부 공문에 의존해 시행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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