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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우리가 기억해야 할 日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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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02 23:33:24 수정 : 2020-04-03 00: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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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자랑에 열을 올리는 박물관 관계자를 만난 적이 있다. 워낙에 유명한 미술품이니 그럴 만도 하다 싶기는 했으나 자랑이 길어지면서 살짝 빈정이 상해 석굴암 본존불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계 최고의 예술성을 자랑하는 우리의 불상을 내세운 나름의 ‘맞불’이었다. 그런데 이 이탈리아인의 반응은 ‘그런 게 있냐’는 것이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불상인 데다 상대가 문화재 전문가이니 당연히 알겠거니 했던 내 착각이었다. 당시엔 ‘전문가라는 자가 석굴암 본존불을 몰라’ 싶었으나 나중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가 1121점이다. 관심이 있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세계유산까지 구체적으로 알기란 힘들다.

몇 년 전의 이 일을 이야기하는 하는 건 우리의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일본의 세계유산이 있어서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지난달 31일 일본 정부는 도쿄에 ‘산업유산정보센터’를 개관했다. 일본이 2015년 7월 세계유산에 등재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 철강, 조선 및 탄광’(이하 ‘근대산업시설’)을 연구하고, 홍보하는 곳이다. 19세기 중반∼20세기 초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23개의 철강·조선·탄광시설로 구성된 근대산업시설에는 한국인, 중국인 등 수만명이 강제로 끌려가 참혹한 환경에서 노역을 한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야하타제철소, 나가사키조선소 등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이런 사실에는 눈감은 채 근대산업시설을 “서양의 산업혁명 물결을 수용하고 공업입국의 토대를 쌓은” 시설로만 선전하는 중이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정보센터는 강제노역을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는 내용의 증언, 급여봉투 등을 전시 중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만한 수단이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유네스코는 근대산업시설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해석전략’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지만 강제성이 없는 말 그대로 권고일 뿐이다. 등재를 취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면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근대산업시설은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일본과 세계의 역사’로 홍보될 것이고, 강제노역의 실상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일본의 세계유산인 근대산업시설을 제대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과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포로 등도 강제노역의 피해를 보긴 했으나 이 문제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근대산업시설에 깃든 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주변국에 저지른 만행 등을 제대로 기억할 주체는 사실상 우리뿐이기도 하다.

2017년 공개된 한 자료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 등에서 강제노역을 한 한국인은 약 3만3400명에 달한다. 중국인은 4184명, 연합군 포로는 5140명으로 파악됐다. 사망자 수는 알려진 것만 해도 160여 명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때 입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고,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근대산업시설의 실상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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