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사방’을 만든 장본인 조주빈(25)씨의 신상공개를 두고 최 위원장은 “성폭력특별법에 의한 사상 첫 신상공개는 우리 사회가 이번 사건을 엄중하게 바라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이런 범죄가 피해자들에게는 삶과 존재 자체를 뿌리째 앗아가는 것과 같다는 걸 사회가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민적 공분에 의한 신상공개로 그치지 말고, 이번 기회에 가벼운 양형 문제나 더 나아가 이러한 범죄를 용인해온 우리 사회의 문화까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코로나19로 파생된 인권 문제에 대해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지만 가려져 있던, 가리고 싶었던, 애써 직면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전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진단했다. 취임 일성으로 ‘혐오와 차별 해소’를 강조했던 그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혐오와 차별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최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주범인 조씨 외에도 ‘n번방’ 관람자 등 공범의 신상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번 ‘n번방’ 범죄는 어느 개인이 저지른 문제로 봐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그동안 이 같은 범죄를 방치해 왔다는 사실에 다 같이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신상공개는 이런 범죄가 피해자들에겐 삶 자체를 앗아가는 것과도 같다는 걸 사회가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접근해야 한다.”
―‘n번방’ 관련 인권위 대응은?
“인권위 아동청소년인권과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하겠다. 그 밖에는 수사 진행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피해자에 대한 인권 침해를 막고자 노력하겠다.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범죄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인권위는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 피해자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고, 무엇을 묻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혐오 대신 인류애와 연대로 사회적 재난에 대처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진단하나.
“초기에 온라인을 중심으로 중국동포나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글이 퍼졌다. 특히 이번 사태로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과 혐오를 직접 겪으며 많은 사람이 더욱더 혐오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됐다고 본다. 여러 분야에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만큼 혐오와 차별에 대응하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나.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지만 가려져 있던, 가리고 싶었던, 애써 직면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전부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 계기가 됐다. 청도대남병원 집단감염을 시작으로 인권위는 기초조사를 통해 폐쇄병동 입원환자의 과도한 장기입원, 다인실 구조, 건강관리 소홀, 채광과 환기가 원활하지 않은 시설환경 등의 개선 필요성을 확인했다. 콜센터·배송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코로나19와 관련 인권위의 역할은.
“인권위에 코로나19 관련 진정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예컨대 코로나19 관련 특정 지역이나 외국인임을 이유로 한 차별 진정사건이 이미 접수되어 현재 조사 중이다. 이처럼 진정을 통해 코로나19가 가져온 인권문제에 대한 전방위 실태조사를 펼쳐 하반기 중 발표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는 정신병원 및 장애인거주시설 내 인권 침해 실태를 파악해 인권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집단감염 등 사회적 재난에 취약한 노동환경 사각지대를 발굴해 이들이 건강한 근무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노동인권과 환경 개선에 앞장설 예정이다.”
―인권위 혐오차별대응기획단을 평가한다면.
“취임할 때 첫 번째 책무로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 해소를 공언하고 정면대응을 선언했다. 기획단 출범은 반차별과 평등권에 대한 사회의 민감도를 높이는 시도였고, 지난 1년 동안 기획단은 혐오차별 문제에 대한 대국민 공론화와 사회적 공감대 조성 등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공론화와 마중물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지난해 10월에는 기획단에서 국가기관 최초로 혐오표현 리포트를 발간했는데, 포털사이트에서 이를 참조해 혐오차별 자율규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국민청원 인권위 이첩 과정에서 인권위 독립 문제가 다시 제기됐다. 현재 인권위 독립성을 과거와 비교한다면.
“인권위 초기에는 국회나 정부 관계자들과 대화할 때 ‘인권위는 정부기구다’,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위헌단체다’라는 이야기를 지겹게 들었다. 만약 그 당시 청원이 이첩되었다면 사람들은 문제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많은 사람이 인권위의 독립성 침해를 우려했다. 이번 상황은 인권위의 독립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진전이 있었다는 것과 인권위 독립의 필요성 재확인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권위 독립성을 보다 확고하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인권위법 개정을 하려고 한다. 인권위 업무는 독립적으로 하지만, 업무의 토대가 되는 인력과 예산에 대한 권한은 행안부와 기재부가 각각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분의 독립성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앞으로 인권위는 사회 구성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조사와 권고를 계속해 나가는 한편 인권위법 개정 등에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지난 1월 활동기한이 1년 더 연장된 북한인권특위에 대한 실효성 지적이 여전하다.
“북한인권특위는 위원회의 북한인권 대응방향이나 업무계획 등을 논의하고 심의하기 위하여 인권위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다. 특위 위원들은 북한 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이슈와 정책 대안을 다루는 ‘북한인권포럼’에 참석해 학계·법조계·언론계·시민단체 등의 전문가 의견을 수렴한다. 북한인권특위는 위원회의 북한인권 접근 방향 설정을 위해 실효적으로 기능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올해에도 실질적인 북한 인권 개선을 이끌 수 있도록 우리 위원회의 역할에 대한 활발한 심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인권위 권고는 중요한 의미를 띠지만 법적 강제력은 없다. 따라서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기도 하고, 이에 인권위도 권고 이행을 재차 촉구하는 모습도 종종 보이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불이행 사례가 있나.
“인권위 정책권고는 우리 사회 인권증진을 위한 실질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수용률도 86%에 이른다. 하지만 아쉬운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인권위는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에 위험의 외주화 문제 해결을 위해 간접고용 관련 제도개선을 권고했지만, 도급금지 작업의 범위 확대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등 주요 권고사항에 대해 불수용했다. 향후 사회적 약자의 인권이 신장할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정책과제를 발굴해 권고하고, 정부 등 국가기관에 의한 권고수용률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앞으로 임기 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두 가지다. 하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다. 그 이름이 평등기본법이든, 차별금지법이든 우리 사회가 인권 분야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법적 근거를 만드는 일을 꼭 하고 싶다. 또 다른 하나는 앞서 말했던 인권위법 개정이다. 제가 2001년 인권위 설립 당시 초대 사무총장이었고, 벌써 인권위와 함께한지 20년이다. 어떤 정부가 와도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과 인권기구의 역할을 다 할 수 있는 체계를 잡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대담=이천종 사회부장, 정리=유지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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