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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추상조각, 전통과의 거리 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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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3-27 23:28:25 수정 : 2020-03-27 23: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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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라는 말이 유행이다. 친구들과 만남이 줄고, 외식보다 배달음식을 먹으며, 강의도 온라인으로 해야 하는 등 익숙지 않은 삶의 패턴이 다소 당황스럽다. 미술에서는 전시대 양식과 거리두기로 새로운 미술이 나타났다. 추상미술도 마찬가지인데, 삶의 내용의 사실적 재현에서 생략과 축약의 과정을 거쳐 추상회화가 나타났다. 조각에서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파리에서 평생을 보냈던 콘스탄틴 브랑쿠시가 추상조각의 길을 열었다.

콘스탄틴 브랑쿠시 ‘뮤즈’

그의 작품 ‘뮤즈’는 대리석으로 만든 예술의 여신 뮤즈의 얼굴 모습이다. 사실적인 얼굴 형태보다 대리석 덩어리의 양감이나 흰 표면 질감과 색감이 두드러진다. 브랑쿠시는 얼굴과 상반신 일부분으로 짐작되는 흔적만을 나타내서 새로운 조각의 개념을 제시했다.

하나는 전통적인 조각이 부분들을 결합해서 긴장과 대비 같은 갈등의 요소를 보였다면 그것을 제거하려 한 점이다. 브랑쿠시는 구분되지 않는 단일한 형태로 모든 물체의 근원적인 형태를 보이려 했고, 그 안에 생명성과 정신성을 표현하려 했다. 뮤즈의 계란형 형태, 단일체로 된 인간의 몸통, 새나 물고기의 움직임을 단순화한 유선형 형태 등을 강조했다.

다른 하나는 사용하는 재료 자체에 비중을 두고, 내용보다 작품 자체의 형식을 강조하려 한 점이다. 돌은 돌답게, 나무는 나무답게, 쇠는 쇠답게 나타내고 그렇게 보이도록 해야만 한다는 것이 브랑쿠시의 생각이었다. 전통적인 조각이 재료 자체 이상의 무엇으로 보이기 위해서 꾸미고 다듬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켰다고 보았다. 조각의 목적은 각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형태를 창조하는 것이어야만 한다고 브랑쿠시는 주장했다. 기교에 물든 과거의 조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재료 자체의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표면을 고르게 갈아서 매끄러운 질감과 반짝이며 반사되는 빛의 효과도 덧붙였다.

브랑쿠시의 거리두기가 새로운 조각의 길을 만든 것처럼 우리의 거리두기로 잃는 것도 많지만 지금까지 무심했던 새로운 삶의 패턴이 나타날 수 있을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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