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가 장기화하면서 시민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이 미치고 있다. 시민의 불안은 일상화됐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같은 신경정신과적 질환이 악화하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불안을 받아들이되 공포감에 매몰되지 않는 ‘균형’이 필요하다”고 당부한다.
17일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1월29일부터 이달 3일까지 약 한 달 동안 트라우마센터와 전국 각 지역 정신건강복지센터에는 확진자와 자가격리자는 물론 일반인들의 코로나19와 관련한 정신적 스트레스 등 심리적 문제 상담이 줄을 잇고 있다. 같은 기간 전국의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자가격리자와 일반인의 요청을 받아 진행한 코로나19 관련 심리상담은 1만8060건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감염병에 대한 불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는 만큼 자신의 감정을 돌볼 수 있는 ‘심리적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달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펴낸 ‘마음건강지침’은 불안의 순기능을 강조했다. 감염에 대한 불안은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자주 씻는 등의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경각심을 갖지 않으면 감염에 대비하지 않거나 자가격리자의 경우 수칙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며 “감염병이 확산하는 시기의 불안은 사람들이 스스로 감염의 위험을 줄이고,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이를 바꾸는 에너지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다만 두 달 가까이 지속중인 이번 사태로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이어지면 불면증이나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저하 등 불안의 역기능이 나타나기 쉽다. 백 위원장은 “사태 장기화에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불안의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며 “심리 방역을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됨에 따라 야외활동이 줄고 만남이 줄어드는 것도 우울감이나 무기력을 심화할 수 있다. 홍현주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고립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능하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야외에 나가 산책을 하고 실내 공간에서도 환기하거나 햇볕을 쐬는 등 기분 전환 노력이 필요하다고 홍 교수는 설명한다.
하지현 건국대병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식사를 제때 하는 등 평소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해 생활 리듬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의사소통은 좋지만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 퍼 나르기는 자제하고, 가족이나 지인과 대화를 시도하되 감염병이 아닌 다른 주제를 소재로 삼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던 환자가 코로나19로 인해 증세가 악화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감염 우려에 병원 가기를 꺼리는 환자의 기존 치료가 중단되거나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가 증세를 심화하기 때문이다. 백종우 위원장은 “임의로 치료를 중단하지 않고, 증상이 악화하기 전에 조기에 전문가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가 말했다.
특히 소아·청소년이나 노인, 장애인, 일상에서 밀접 접촉이 잦은 사람들은 감염은 물론 심리적 방역에도 취약한 만큼 이들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사회학자인 오찬호 작가는 집단 감염이 발생한 구로구 콜센터의 한 직원이 녹즙 배달을 병행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아무리 예방 수칙을 잘 지켜도 감염이나 전파의 확률이 높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며 “사태가 장기화할수록 버틸 수 ‘없는 쪽’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생활치료센터 입소자 등의 심리 치료를 담당해온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사업부장도 “감염병에 대한 관리만큼이나 심리 지원이 필수적 요소”라면서 “특히 취약 계층들이 재난 상황으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상담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종민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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