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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청소년, 성차별·억압 벗어나려 자해”

입력 : 2020-03-02 20:40:33 수정 : 2020-03-02 21: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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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솜심리상담센터 연구결과 발표 / 상담건수 지난 3년간 7배나 급증 / 여학생 자해 시도율 남학생 두배 / 부모에 의해 삶 통제당한다 인식 / 자해 행위로 몸 통제권 행사 생각 / “성역할 고정관념 해소 노력해야”
“혼자 방에서 멍하게 있을 때가 많이 있어요. 내가 살아있나 싶고… 그럴 때 (자해를) 하면 쓰리고 아프지만, 그 순간 아, 내가 살아있긴 한가보다 이런 생각이 들긴 해요.”(18세 A양, 4년 전 자해 시작)

“어떻게 해도 안 됐어요. 울기도 하고요… 근데요 이렇게 (자해를) 하니까 겁을 먹어요. 신경도 써주고요. 이상해요 세상이.” (17세 B양, 2년 전 자해 시작)

청소년의 ‘비자살적 자해’ 행위는 자신의 몸을 해치는 동시에 자신을 보존하려는 ‘이중적 전략 행동’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특히 여성청소년의 경우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하는 불합리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이 같은 행동을 한다는 분석도 담겼다. 비자살적 자해란 자살에 대한 의도 없이 자신의 몸을 반복적으로 상해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자해가 계속될 경우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빠른 대응이 요구된다.

2일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2015년 4000건이었던 자해 관련 청소년 상담 건수는 2018년 2만7976건으로 7배 가까이 급증하는 등 청소년 자해 위험성은 매우 커졌다. 특히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청소년건강행태조사’를 살펴보면 자해 및 자살 시도율은 여학생(4%)이 남학생(1.9%)에 비해 배 넘게 높게 나왔다.

 

한국청소년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청소년학연구’ 2020년 제1호에 담긴 이번 연구는 손자영 리솜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이 비자살적 자해를 경험한 여성청소년 7명을 상대로 한 심층면담 결과를 바탕으로 도출됐다. 이번 연구를 위해 지난 1년간 칼로 자신의 몸을 긋는 등의 자해 행동을 5일 이상 반복적으로 한 여성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평균 3회, 회당 약 1시간의 면담이 진행됐다.

이번 연구 결과 자해 여성청소년들에게 이 행동은 자기 몸에 대한 공격인 동시에 자기 몸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몸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부모에 의해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지니도록 통제당한다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이 간섭할 수 없는 자해 행위를 통해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면담에 참여한 17살 C양은 “제 몸은 엄마하고 아버지, 그리고 하나 있는 남동생의 것이었다”며 “자해를 하고 나니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내 몸이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중에서는 몸에 대한 통제권을 확인하는 한편, 자신의 몸을 점점 타자화하는 경향도 함께 보이면서 한번 시작하게 된 자해를 쉽게 끊지 못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이번 면담에 참여한 여성청소년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겪는 ‘취약성’에 대한 일종의 저항으로서 자해를 했다는 답변도 내놨다. 가정과 학교 등에서 받은 차별에 대해 자신의 몸을 담보로 저항에 나섰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신들을 ‘자해러’(자해하는 사람이란 뜻)로 지칭하며, ‘자해 또한 능력’이라는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D양(19)은 “자해도 능력”이라며 “이러다 자살할 수 있는 것도 용기,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자해 집단 내 경쟁 구도로 이어졌고, 이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더 깊이, 더 많이 자해에 나서는 극단적 경향도 파악됐다. 손 센터장은 “자신의 힘든 상태를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정말 힘든 게 맞구나’라는 보편성을 확인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며 “댓글을 통해 위로도 받고, 역설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자해를 막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의 자해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 청소년들이 사회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SNS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 센터장은 “이 청소년들에게 성 역할 고정관념에 얽매인 생각과 태도를 가졌는지 확인하고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며 “‘여자라서 안 된다’는 한계를 가져오는 직업 환경 등의 구조적 부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개선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장점에 대해 인식하고 가치를 긍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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