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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공공개혁을 내걸고 추진한 ‘우정 민영화’ 정책에 야당은 물론 일부 자민당 의원까지 반대하자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선언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우정 민영화에 반발해 탈당한 자민당 ‘반란파’의 지역구에 지명도가 높거나 미모가 뛰어난 여성을 전략공천했다. 일본 언론은 ‘자객 공천’이라는 제목을 썼다. 당 내분 탓에 불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자민당은 압승했다. 4년 뒤엔 ‘만년 야당’ 민주당이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이 공천 역시 대성공을 거둬 자민당 장기집권을 무너뜨렸다.

남의 사주를 받아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게 자객(刺客)이다. 정치 거물에 맞서 젊고 참신한 신인을 맞붙게 하는 자객 공천은 일본에서 효과가 검증됐다. 세대교체와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고, 지더라도 의미 있는 도전이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경기 광명을에 30대 무명 변호사 이언주를 전략공천했다. 상대는 장관 출신이자 내리 3선을 한 전재희 한나라당 후보였다. ‘미녀 자객’ 이언주는 ‘광명의 터줏대감’을 무너뜨려 일약 스타가 됐다.

자객 공천이 늘 성공하는 건 아니다. 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야권 대선주자인 문재인 후보를 겨냥해 27세 손수조 후보를 내세웠으나 실패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탈당해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된 천정배 의원을 응징하려고, 고졸 출신으로 삼성전자 상무까지 오른 양향자 후보를 내세웠으나 무위에 그쳤다. 상대 후보의 텃밭인 데다 후보 경쟁력 차이가 워낙 컸다.

이번 총선에도 자객 공천이 등장했다. 미래통합당은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나선 서울 구로을에 3선 중진 김용태 의원을 내보냈다. 진성준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출마하는 서울 강서을엔 ‘유재수 의혹’ 폭로자인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을 내세웠다. ‘문재인의 남자’에 대한 표적 공천이다. 민주당도 통합당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출전한 광진을에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을 대항마로 보냈다. 총선을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해졌지만, 비민주적이고 후진적인 정치문화여서 뒷맛이 씁쓸하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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