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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필지 모르는 ‘남북 경협의 꽃’… 피해액 1조5000억 추산

입력 : 2020-02-18 06:00:00 수정 : 2020-02-18 10: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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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중단 4년… 머나먼 재개의 길 / 2016년 北 4차 핵실험 등 여파 전면 중단 / 기업들 설비 등 놔두고 쫓기듯 빠져나와 / 문재인정부 들어 재개 기대감 높았지만 / 북핵협상 교착 빠져 논의도 수면밑으로 / 기업 30% 베트남 등 외국으로 공장이전 / 대북제재 국면 걸림돌 많아 미래 불투명

한때 ‘남북경제협력의 꽃’으로 불렸던 개성공단이 가동을 중단한 지 만 4년을 맞았다. 그동안 대북 제재가 더욱 강화된 가운데 북핵 협상도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14년 운영 후 기약 없이 중단

17일 통일부 등에 따르면 개성공단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8월 현대아산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공업지구 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 시작됐다.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을 결합해 남북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다는 취지였다.

비무장지대(DMZ)인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도라산전망대에서 보이는 개성공단의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경기도 개성시 일대 9만3000㎡의 단지가 조성돼 우선 봉제, 신발, 전자부품 등 4개 업종 15개 기업이 입주했다. 이후 기업은 점점 늘어나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까지 85개 기업이 입주했다. 2007년 1월 말 누적 생산액이 1억달러를 돌파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개성공단은 확장세를 멈췄다. 북한의 핵실험 도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 등으로 가동 중단 위기가 여러 번 반복되며 개성공단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됐다.

2010년 3월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개성공단에 대한 신규 투자를 금지하는 ‘5·24 대북제재 조치’가 나왔다.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우리 정부는 북으로의 출경을 차단했고 북한도 개성공단 입출경 채널로 사용하던 남북 간 군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차단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개성공단은 잠시 중단됐다가 재개된 뒤 외국기업 유치 추진 노력도 있었지만, 결국 2016년 초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를 계기로 개성공단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입주 기업은 설비 등을 모두 남겨둔 채 쫓기듯 공단을 빠져나왔다.

2015년 말 기준 개성공단 입주 기업 125개사의 생산액은 약 5억6000만달러(약 6600억원)라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집계했다. 이들 업체의 협력업체는 5000개사, 관련 종사자는 약 10만명, 확인된 피해금액은 7861억원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측은 이후 멈춘 개성공단의 투자자산과 유동자산, 공장 미가동에 따른 피해 등을 합쳐 현재 피해액을 1조5000억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3월 개성공단 입주기업 108곳을 대상으로 경영 환경과 향후 전망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76.9%가 현재 경영 상황에 대해 ‘개성공단 중단 이전보다 악화됐다’고 답했다. 9.3%는 ‘사실상 폐업 상태’라고 밝혔다.

김서진 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는 “개성공단 문을 닫고 나서 약 30개 기업은 베트남 등 외국으로 옮겼다”며 “해외에 투자하려면 사전 조사를 하고 가야 하는데 기존 주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급작스럽게 간 것이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이후 국내 경기까지 안 좋아 기업들이 더 힘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재개 걸림돌 산적

개성공단 중단 4년째를 맞은 지난 10일 10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와 개성공단기업협회는 개성공단을 포함한 남북경제협력 재개를 정부와 미국에 촉구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관리·운영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보내는 서한도 통일부에 전달했다.

다음 날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도 남북 관련 각계 인사 200여 명이 참가하는 ‘개성공단 재개 촉구 대회’를 열고 북측과 개성공단 재개 여건·환경 마련을 위한 실무협의를 공식 제안했다.

사회 각층에서 개성공단 재개 노력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갈수록 기약이 없어질 것이라는 절박한 심정에서다. 문재인정부 들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개성공단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북핵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공단 재개 논의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개성공단에 대한 국내외 여론도 식어가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여론이며 우리의 단순한 경제협력을 뛰어넘어 평화협력, 통일협력이라는 성격을 부여하고 단기적으로도 국민의 일자리 확보, 경제영토 확대라는 의미가 부여된다면 결국 미국과 유엔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며 “북한 비핵화 압박 제재가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남북 간의 협력, 신뢰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성공단 중단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더욱 촘촘해지면서 개성공단 문제는 더욱 꼬인 상태다. 벌크캐시(대량현금)의 북한 유입을 차단하고, 북한에 대한 투자와 합작 사업 신설을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에 위반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개성공단 재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향후 개성공단 재개를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진전이 관건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낮은 단계에서라도 의미 있는 합의가 나올 수 있도록 꾸준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 교수는 “개성공단은 매우 중요한 유엔 제재 합작사업 중 하나로, 재개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적절치 않다”며 “미국 대선이 있는 11월까지는 북·미 간 합의가 힘들어질 것이고, 대북 제재가 완화되려면 북·미 협상 진전과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하면 20~30배 회수… 다시 가길 원해"

 

“개성공단은 ‘퍼주기’가 아니라 압도적인 ‘퍼오기’입니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만난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은 “기업들은 경제적 부가가치 측면에서 개성공단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 가동 당시 기업이 1을 투자하면 20, 30을 가져왔다”며 “한결같이 다시 들어가길 원하는 것은 해외에 그만 한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은 개성공업지구법이 정한 개성공단 관리와 운영 책임기관이다. 14년간 개성에서 북측과 일하면서 인적 유대와 기본 신뢰가 쌓였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김진향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이사장이 12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 사무실에 걸려있는 개성공단 사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소용 기자

전날 김 이사장은 공단 재개 여건과 환경 마련 등을 위한 남북 당국 간 실무협의를 북측 개성공단 관리·운영기관인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에 성명문 발표 형식으로 제안했다.

 

그는 “(중단) 4년 계기로 했는데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진심이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며 “당국의 관계는 단절돼 있지만 모든 것을 끊어선 안 된다. 시민사회 등 당국 외의 사람들이 많이 뛰어주면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이 시작된 2003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관련 업무를 맡고 이후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에서 일하며 남북관계의 진행과정을 지켜봤다.

 

그는 “개성공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맺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옥동자”라며 “개성공단 가동이 재개되는 것은 남북관계의 시금석”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협력을 통해 평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개성공단은 남북이 평화를 구현한 바탕 위에 만든 것이 아니라 군사적 불신, 적대를 넘기 위해 경제협력 방식을 채택했던 것이다. 실제로 해보니 평화도 만들어지고 돈도 벌렸다는 증거가 됐던 것이 개성공단”이라며 “이런 가치들이 국민에게 전달되면 공단이 열리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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