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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칼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열린사회의 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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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2-09 23:30:13 수정 : 2020-02-09 23:3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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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폐쇄적인 사회문화로 ‘비극’ / 근거없는 두려움은 경계할 ‘적’ / 바이러스 이유로 배척은 안 돼 / 모두 더불어 사는 삶 계속돼야

컴퓨터 마우스 클릭 몇 번이면 세계 구석구석 방문하지 못할 곳이 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와 주식매입이 가능한 시대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만 건이 넘는 트윗을 올렸고, 전 세계 사람들은 이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트윗정치’ 현상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글로벌 사회는 갈수록 통합 지향적이고 세계시장은 하나가 되고 있다. ‘트럼피즘’과 같은 주요국의 이기주의가 넘쳐나고 브렉시트가 요란하지만 대략 지난 300여년 동안 거대한 지구공동체를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었고, 지금은 일종의 조정기라고 보는 게 맞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 사회가 진땀을 빼고 있다. 스무 살부터 삼십년이 넘게 대학 근처를 떠나 본 적이 없는 필자에게 바이러스로 인한 개강 연기는 한 마디로 충격적이다. 2월 말 수천 명의 중국 유학생이 돌아올 신촌 지역은 지금 잔뜩 긴장한 상태다.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한국과 중국은 생활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정치 안보적으로는 서로 으르렁대지만 경제사회적 상호 의존성은 도저히 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제는 상식이 되었듯이, 이미 경험한 메르스(MERS)와 사스(SARS)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이고, 앞으로도 새로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얼마든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칼 포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전체주의와 혁명적 변화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양차 대전을 경험한 유럽의 지식인 포퍼에게 나치즘과 공산주의와 같은 획일적 정치문화는 경멸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우리가 마주한 열린사회의 적들은 사뭇 새로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폐쇄적인 사회문화가 ‘우한 폐렴’의 비극을 빚었기에, 개방적이고 투명한 사회적 전통을 가로막는 21세기 전체주의는 열린사회의 한 적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중국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난과 두려움 역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열린사회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요절한 천재 작가 김소진의 소설 중에 “열린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밥풀때기들’은 학생 운동 중에 사망한 대학생의 장례식에 거칠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장례식장을 떠돌며 숙식을 해결하는 ‘밥풀때기’들은 대학생의 장례식을 적당히 넘기려는 기성세대에 맞서지만 그 방법의 미숙함으로 결국 장례 논의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김소진은 밥풀때기들이 결국 무대의 주인공 하나로 오르지는 못하지만, 민주세력에게 연대의 눈짓을 보인 건 분명하다는 점을 강변하고 있다. 중국을 소설 속 인물과 비교하는 건 가당치 않으나, 전 세계 공산품의 생산공장이 된 중국은 아직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익숙하지 않고 자신만의 거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지만, 국제사회와의 공동운명체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연대의 메시지는 발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기 시작한 건 대략 17세기 전후, 서양문명 관점의 국가와 시장이 생겨나고 ‘시민’과 총체적인 개념의 ‘주권’이 생겨났다. 그 이후 많은 사건이 발생했고, 역사라는 이름의 교훈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국가는 시장을 이길 수 없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시장의 흐름을 아주 짧은 순간 막을 수는 있겠지만,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의 방식을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열린사회의 적들을 당당하게 마주하자. 국가 차원의 방역 시스템 강화는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지만, 누군가를 배척하는 마음의 편협함은 결코 환영할 수 없다. 소위 비말(침 혹은 재채기)에 의해 전염되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잦아들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북아라는 마을에서 불필요한 열린사회의 적들을 만드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과학의 힘을 빌려서 해결해야 할 문제, 외교의 힘을 빌려서 해결해야 할 문제, 생활 규칙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마지막으로 마인드의 가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박인휘 이화여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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