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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느낌의 겉치장 속에 도사린 짙은 슬픔 [박상현의 일상 속 미술사]

입력 : 2020-01-22 10:00:00 수정 : 2020-01-21 20: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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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조커의 가면, 우리의 가면 / 항상 웃는 분장의 영화 속 ‘조커’처럼 / 피카소의 초기 작품 ‘곡예사 가족’엔 / 행복함 대신 어두움이 화폭에 가득 / 타인 기쁨 위해 사는 이들의 삶 통해 / 즐거움 이면 속 슬픔·고뇌 끄집어내

지난해 가을 개봉한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Joker)’는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큰 화제를 모은 독특한 작품이다. 특히 미국의 대형 영화관 체인에서 관객들에게 영화 주인공 조커 코스튬을 입고 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어릿광대(clown) 가면을 쓰면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발표할 만큼 미국사회는 이 영화의 개봉에 긴장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 영화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심화하고 있는 부의 편중현상을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어서 모방범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2012년에 있었던 총기난사 사건이다. 당시 배트맨 시리즈인 ‘다크나이트’를 상영하던 콜로라도주의 한 극장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는데, 같은 배트맨 시리즈에 해당하는, 그러나 악당을 더욱 강조하는 ‘조커’에서 모방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 영화와 관련한 범죄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조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뛰어난 작품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지나치게 암울하고 조커 개인의 심리상태만 파고드는 영화라는 불만도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조커’는 어릿광대의 분장으로 항상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악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다.

지구를 정복하거나 세계를 지배하려는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 속 악당들과 달리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대표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커는 그가 저지르는 잔인한 범죄와 폭력과 그가 항상 짓고 있는 표정, 즉 웃음이 대비되는 시각적 충격을 준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분노에 찬 폭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관객들에게는 분노한 얼굴의 악당보다 더 소름 끼치는 사이코패스로 보이는 것이다. ‘행복한 얼굴’, 즉 웃음의 대척점에 있는 분노와 폭력을 한 사람이 모두 보여주는 특이한 인물이다.

 

그런데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이번 조커는 ‘행복한 얼굴’의 반대편에는 분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바로 슬픔이다. 이 영화에서 전반부는 이 인물이 얼마나 비참하고 슬픈 삶을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면서 주인공이 끊임없이 웃는 얼굴의 분장을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즉 이제까지 배트맨 시리즈 속 조커가 웃음과 분노의 대비효과를 노렸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웃음과 분노 외에도, 웃음과 슬픔의 대비효과를 보여준다. 예전과 같은 잔인하기만 한 캐릭터를 기대하고 간 관객 중에는 기대와 달리 슬픈 영화를 보게 되어서 불만이었을 수 있지만, 영화는 이 두 가지 대비를 아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자신의 감정과 상관없이 계속해서 웃는 얼굴로 있어야 하는 상황으로 그가 가진 슬픔을 오히려 극대화하는 것은 조커라는 악당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지만, 그런 대비가 이번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인 1905년에 피카소가 그걸 했다.

현대화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파블로 피카소는 입체파 화가로 유명하지만, 그가 젊은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사실적이고 정서적으로 아주 깊은 감정을 담고 있다. 흔히 ‘청색시대’로 알려진 그의 20대 초기의 그림들이 가난과 질병, 죽음들을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청색시대가 끝난 직후 이어진 ‘장미시대’ 역시 가난과 외로움, 절망 등을 묘사한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피카소의 장미시대는 그 이름이 보여주듯 붉은색과 오렌지색, 핑크색, 그리고 다양한 붉은 톤의 흙색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이때 피가소가 즐겨 사용하던 소재가 바로 어릿광대와 할리퀸, 즉 서커스 곡예사 같은 엔터테이너들이다.

'곡예사 가족’ (1905).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20대 중반 ‘장미시대’에 그린 그림으로, 남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며 돈을 버는 엔터테이너들의 애환에 자신의 처지를 담은 작품이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1905년도 작품 ‘곡예사 가족’이다. 당시 서커스에서 일하던 단원들이 그랬듯 이들은 위험한 육체노동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회의 하층계급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다른 노동자계급 사람들과 다른 게 있었다면, 손님들에게 웃음을 선사해야 하는 일종의 감정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입는 울긋불긋한 옷은 사람들에게 축제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도록 디자인되었지만, 이 그림 속 가족들은 관객들 앞에 있지 않다.

배경이 거의 생략되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등장인물들이 들고 있는 짐을 보면 어디론가 이동 중인 것으로 보인다. 마을축제나 공연할 장소를 찾아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이들은 공연 중에는 박수를 받는 행복한 모습이지만 관객이 없을 때는 그저 먹고살아야 하는 평범한 하층민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의 지친 얼굴, 어두운 표정은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옷과 대비를 이루어 강조된다.

피카소는 이들을 소재로 삼아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의 청색시대는 그의 친구의 자살로 시작되었고, 그림에서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을 자주 보여주었다면, 장미시대에 등장하는 어릿광대, 곡예사와 같은 엔터테이너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었다. 특히 그림 가장 왼쪽에 등장하는 다이아몬드 무늬의 옷을 입은 할리퀸은 피카소 자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부유한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면서도 가난한 계급에 속한 곡예사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새뮤얼 재너스는 코미디언들의 심리상태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유명하고 성공한 코미디언 69명을 상대로 지능 및 심리검사를 시행해 본 결과, 많은 코미디언이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분노와 불안, 우울증세를 보였고, 특히 어렵고 고독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가난한 집에서 자랐고, 어릴 때 엄한 어머니와 자상한 아버지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결국 그들의 유머감각은 어려운 환경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발전했을 가능이 높다고 재너스는 결론 내린다.

‘소문난 가면’ (1883).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1860∼1949)는 벨기에 지역의 축제 때 사람들이 쓰고 놀던 가면을 축제가 아닌 공간에 삽입함으로써 낯선 풍경을 만들고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흥미롭게도 조커 역시 이 프로파일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영화 초반에는 어머니와 아주 친한 것으로 보이지만, 영화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가 발견하게 되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어머니의 모습은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는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비참한 현실을 맞이하는 장면은 벨기에 화가 제임스 앙소르가 그린 ‘소문난 가면’을 떠올리게 한다. ‘가면의 화가’라는 별명이 붙은 앙소르는 이 그림에서 벨기에 지역의 축제 때 사람들이 쓰는 가면을 축제의 공간에서 분리시켜 일상공간에 삽입하면서 낯선 장면을 연출해낸다.

부부로 보이는 이 두 사람은 왜 집에서 축제용 가면을 쓰고 있을까? 마음속에 어떤 슬픔, 혹은 분노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걸까? 보기에 섬뜩한 그림이지만, 여기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서움이나 두려움이라기보다는 함께 살고 있는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소외에서 비롯된 슬픔에 가깝다. 어쩌면 그것이 가면의 효용인 동시에 가면이 가져다주는 비극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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